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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나 일본 유명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시골에서 로큰롤> 등을 비롯하여 관심이 가는 신간 에세이가 많았다. 그런데 난데없는 도서정가제 논란으로 인하여 한 달 신간평가단 활동을 쉬게 되어 아쉬울 따름니다. 그나마 이렇게 다시 재개되어 다행이지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하는 것이 도서정가제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 <홋카이도, 여행, 수다> 송인희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내년 여름에는 홋카이도로 휴가를 떠나리라 마음 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사실 홋카이도는 내가 일본에서 좋아하는 장소들 중 하나다. 러시아와 가까운 북쪽에 있어서 여름에 피서 가면 서늘하고 좋고, 자연 풍광도 좋고, 혼슈와 달리 사람이 많거나 붐비지 않아서 좋다. 홋카이도 생활과 여행을 다룬 이 책을 한 번 읽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 <작가가 사랑한 여행> 조경란 외


 


 여행 에세이가 끌린다. 조경란을 비롯한 열 명의 작가들이 러시아, 크로아티아, 일본, 베트남 등 전세계 나라들을 여행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작가와 여행이라는 조합만으로 관심이 가는 책.


3. <김화영의 번역수첩> 김화영




 카뮈, 파트릭 모디아노, 미셸 트루니에 등 프랑스문학의 대가들을 번역해 온 번역가 김화영의 역자후기를 모은 책이라고 한다. 40년간 번역에 종사한 프랑스문학의 대가가 쓴 번역론이라고 생각하니 관심이 간다.


 4. <사랑하는 안드레아> 롱잉타이




 엄마가 열여덟 살 아들에게 쓴 편지를 묶은 책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저자가 "중화권 독자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스트이자 대만 지식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타이완이라는 나라가 궁금해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 타이완 사람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5. <읽다> 김영하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야기, 독서에세이는 특별한 재미를 준다. 김영하는 <보다> <말하다> 산문으로도 정평이 난 작가니 아마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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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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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정수를 본 느낌이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길지 않은 글에서 삶과 죽음, 세상사의 희비,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압도당할 뿐이었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이 나타내듯이 저자는 추상적 관념을 거부하여 구체적 삶의 장면들을 그리고 있다. 저자 자신의 라면을 끓이는 노하우를 논하고, 목수들의 삶에 애정을 표하고, 인간의 손과 발 등 신체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허공에 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일상의 현장에 밀착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귀중하여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여 사용한 문장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건조하고 담담한 문장 속에 유머가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반전을 통해 여운을 남기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밥벌이의 괴로움을 논하다가 마지막에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73)라고 말하는 식이다. 인생의 괴로움을 논하며 어쩔 수 없는 체념과 자조가 섞인 말을 내뱉는 것으로 삶에 작은 위로를 주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절판된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 수록되었던 산문들을 추리고, 그간 새로 쓴 산문들을 추가하여 펴낸 것이라고 한다. 위의 세 책은 2001-2003년 무렵 출판되었고, 이 책에 새로 수록된 세월호 글은 2015년에 쓰인 것이니, 대략 15년여의 간격을 두고 쓰인 산문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세월호 글과 박경리 선생 글 등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해당 산문이 어디에 처음 수록되었는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물론 저자와 출판사가 생각한 것처럼 이 글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읽힐 만한 글들일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전은 밝혀 주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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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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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여행이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가이드북에서 본 사진, TV나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을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곳을 가든 "여기가 타지마할이군" "여기가 그랜드캐니언이군"이라고 별다른 감흥 없이 중얼거리고 돌아온다면 그보다 더 허무한 행위는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실재하는 것 그 자체(the real)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가상을 미리 경험하고, 가상으로서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실재하는 것 그 자체보다 더 큰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저자는 몽골의 관광지 테렐지 국립공원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진과 똑같군,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빠르게 스쳤다. 마치 그림엽서 같아.(중략)
그림엽서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비전 중에서도 가장 초라하고 빈약한 비전에 속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불행이며, 당황스러운 기분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곳은 분명 의심 없이 아름다운데, 놀랍게도 아무런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45,46)

잘 꾸며진 관광지로서의 테렐지 국립공원은 이윽고 저자가 방문하게 되는 유목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는 초원 알타이-투바와 대비를 이룬다. 저자, 그리고 그녀와 함께 알타이 투어에 참가한 유럽인들은 우연히 마주친 오스트리아 관광객들을 보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가 저런 일행에 속한 채 알타이에 오지 않은 것이"(138)라고 생각한다. 즉,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가상과는 다른 실체(the real)를 저자는 경험한 것이다.

몽골, 그 중에서도 알타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낯선 여행지다. 저자는 한국에서 미리 알타이에 대한 여행기를 알아보려고 했었다.

몽골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종류의 책-여행기 혹은 여행 안내서를 한 권 사려고 했다. 몽골 여행기 물이다. (중략)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네팔, 인도, 중국, 실크로드 등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매혹적인 관광지에 비해서 일단 몽골 관련 여행기는 출판물 자체의 종류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었다. 몽골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은 한두 권 찾아낸 것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홉스굴이나 고비 사막 등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를 중심으로 편집이 되어 있으며, 몽골이란 나라 전체를 다룬 책을 처음붜 끝까지 샅샅이 살펴봐도 알타이 지역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내가 가게 될 서북부 지역은 지도조차도 생략되었으며, 몽골 소수민족에 관한 내용에서도 '투바'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35)

그렇기에 투바의 족장 갈잔은 저자에게 "환영한다, 너는 이곳 알타이-투바 땅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다"(72)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알타이라는 지명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랄 알타이어족. 오래 전, 한국어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한국어가 알타이어족 계통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학설이 대다수인 모양이지만, 어쨌든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배웠다.

한국인이 몽고반점이 있는 몽골로이드 인종인 점을 강조하며 허경영처럼 몽골과 통일하자고 주장하거나 황석영처럼 몽골+2코리아연합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아니라 한국어라는 언어가 알타이를 고향으로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몽골을 방문한 저자가 독일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글을 쓰며 독일어로 말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알타이 투어에 동반한 사람들은 일곱 명의 스위스인과 두 명의 오스트리아인, 열 두 명의 독일인들이었고, 저자와 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마리아와 한스였다.(독일에서 만든 투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자는 그들과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번역가 노승영이 "이방인의 이방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때문이다. 생김새는 현지의 유목민들과 비슷하지만,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은 함께 온 유럽인들과 더 비슷했을 저자의 경험은 알타이 생활의 특이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저자가 운명처럼 이끌리듯 알타이로 가게 된 것은 투바 부족의 족장이자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 갈잔 치낙의 소설 <귀향>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알타이에 직접 가서 갈잔을 만난 저자는 독일어로 의사소통한다. 그렇다면 "환영한다, 너는 이곳 알타이-투바 땅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이다"는 말은 저자가 모국어인 한국어의 고향인 알타이로 귀향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갈잔의 소설 제목이 <귀향>이듯이 말이다.

저자가 알타이 초원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발견한 실체(the real)는 언어의 고향에서 부유하는 자기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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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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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르문학이 가진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있던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국의 어느 기차역 9와 4분의3 승강장에는 마법학교로 가는 기차가 있는 것은 아닐까?(<해리포터>) 어쩌면 인간 외에 엘프와 호빗, 오크 같은 종족들이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반지의 제왕>) 어쩌면 로봇들이 인간을 대체하지는 않을까?(<로봇>) 어쩌면 인류가 좀비의 창궐에 의해
멸망하지는 않을까?(<세계전쟁Z>) 등등 장르문학이 제기하는 상상력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에 균열을 만들고 해체시킨다.

추리소설, 혹은 스릴러소설은 우리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처럼 처음부터 독자에게 모든 사실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예외도 있긴 하다.) 추리소설은 마법사나 드래곤, 장풍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일상세계에서 충분히 가능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에 세계에 가장 본질적인 균열을 만들어낸다.

<걸 온 더 트레인>은 어느 여성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다. 레이첼은 직장을 잃고 할일없이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알콜중독자다. 때때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기억을 상실한다. 그녀는 매일 지하철 차창 너머로 이혼당하기 전에 살던 동네를 구경하는데 행복해 보이는 부부에게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차창 너머로 '제스'가 누군가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얼마 후 그 '제스,' 알고 보니 본명은 메건이었던 여자가 실종되었고, 남편인 '제이슨,' 알고 보니 본명은 스콧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게 되고, 사건의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 당일 레이첼 자신이 술에 취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 메건의 실종사건에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본인의 기억상실로 인해 확신을 할 수 없다. 전남편인 톰, 메건의 완벽한 남편처럼 보였던 스콧, 메건의 상담사였던 카말 아브디치 등등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리고 레이첼 본인 역시 의심스럽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두 손에 피를 묻힌 채 굴다리 아래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손에 피를 묻힌 채. 내 손이 확실한가? 내 손일 수밖에 없었다. (107)
"그래서 내가 애나인 줄 알고 메건 히프웰을 해코지했다고요? 그런 얼빠진 얘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난 이렇게 말했지만, 머리에 난 혹이 또 욱신거렸고, 토요일 밤의 모든 것은 여전히 시커먼 암흑 속에 있었다. (124)

자기 자신마저도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러한 가운데 레이첼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진실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균열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레이첼은 알콜중독증 때문에 기억이 불완전한, 따라서 주체의 통합성이 불안정한 인물이다. 이 소설은 레이첼이 메건 실종사건(나중에 살인사건이었음이 밝혀진다)을 파헤치면서 자기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레이첼이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이유가 남성의 가정폭력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레이첼은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불임으로 인해 이혼을 당했고, 메건은 젊은 시절 결혼을 하지 않은 책 아기를 낳았다가 죽게 만든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들의 주체성 확립을 돕는 인물이 보스니아 출신의 정신과의 카말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수자인 카말이 백인 남성의 폭력성을 극복하고 여성의 주체성 회복에 일조하게 된 것이다.
 
이 추리소설은 살인사건을 통해 일상을 전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억압받고 제거되었던 여주인공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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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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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전에 <들개> 감상문에서 중2병 냄새가 난다고 적었는데 <괴물>에서는 중2병을 넘어 흑화해버린 전진철이라는 네크로필리아(요즘 말로 하면 사이코패스가 될 것 같다)의 연쇄살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진철은 <초생성서>라는 내용의 글을 메일로 보내 한국 네크로필리아들의 엽기적 살인행각을 조종한다. 그런데 그 작중에 나오는 <초생성서>의 내용은 중2병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었다.

속생인류는 생명에 속박되어 있는 인류로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생을 거부하며 영생을 갈망하는 속성을 버리지 못하더라. 저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지만 천지간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라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서는 영생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나니 내가 저들을 불쌍히 여겨 태암의 복음을 전파하리라.
네크로필리아를 찬양하라. 이제 세기말이 도래하고 있도다. 나는 태암의 독생자로서 네크로필리아를 찬양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리니 그들은 내가 보내는 텔레파시로 초자연적 능력을 얻어 태암의 사도로 천거되리라. 그들은 속생인류의 시체를 간음함으로써 열반지경에 이르게 되고 속생인류의 시체를 포식함으로써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리라. (144)

한편 속세를 거부하는 여러 기인들이 등장해 기발한 에피소드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는 <황금비늘>을 연상시킨다. <괴물>의 주인공 중 하나인 송을태라는 소년은 <황금비늘>의 주인공 소년 김동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중심인물들인 이필우와 강은채 커플은 현실 속에서 좌절된 꿈과 이상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들개>의 주인공커플들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이 소설에는 전진철을 비롯해 형사 임태열, 범죄심리학자 이필우, 이필우가 머무는 여관집 딸 강은채, 영화감독 출신 사이비종교 교주 도근출과 그 조수 성기태, 무술신동 송을태, 시인 한길서, 중국집 배달부 박경서, 백장 윤현부와 그 부인 김유란, 윤현부의 딸로 황진이 같은 기생을 꿈꾸는 윤나연 등을 중심으로 여러 에피소드들이 뻗어 나간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필우, 송을태, 송길서, 박경서, 한길서, 윤나연 등은 그러한 현대문명에 대해 여러 형태로 저항하는 인물들이다. 반대로 전진철은 그러한 현대문명에 의해 타락하여 연쇄살인을 벌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여튼 등장인물들이 많고 그 인물들의 성장배경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다보니 방대한 내용의 책이 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부터 세기말까지 30여년간의 한국사회를 그려낸 일종의 서사시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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