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전에 <들개> 감상문에서 중2병 냄새가 난다고 적었는데 <괴물>에서는 중2병을 넘어 흑화해버린 전진철이라는 네크로필리아(요즘 말로 하면 사이코패스가 될 것 같다)의 연쇄살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진철은 <초생성서>라는 내용의 글을 메일로 보내 한국 네크로필리아들의 엽기적 살인행각을 조종한다. 그런데 그 작중에 나오는 <초생성서>의 내용은 중2병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었다.

속생인류는 생명에 속박되어 있는 인류로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생을 거부하며 영생을 갈망하는 속성을 버리지 못하더라. 저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지만 천지간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라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서는 영생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나니 내가 저들을 불쌍히 여겨 태암의 복음을 전파하리라.
네크로필리아를 찬양하라. 이제 세기말이 도래하고 있도다. 나는 태암의 독생자로서 네크로필리아를 찬양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주리니 그들은 내가 보내는 텔레파시로 초자연적 능력을 얻어 태암의 사도로 천거되리라. 그들은 속생인류의 시체를 간음함으로써 열반지경에 이르게 되고 속생인류의 시체를 포식함으로써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리라. (144)

한편 속세를 거부하는 여러 기인들이 등장해 기발한 에피소드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는 <황금비늘>을 연상시킨다. <괴물>의 주인공 중 하나인 송을태라는 소년은 <황금비늘>의 주인공 소년 김동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중심인물들인 이필우와 강은채 커플은 현실 속에서 좌절된 꿈과 이상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들개>의 주인공커플들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이 소설에는 전진철을 비롯해 형사 임태열, 범죄심리학자 이필우, 이필우가 머무는 여관집 딸 강은채, 영화감독 출신 사이비종교 교주 도근출과 그 조수 성기태, 무술신동 송을태, 시인 한길서, 중국집 배달부 박경서, 백장 윤현부와 그 부인 김유란, 윤현부의 딸로 황진이 같은 기생을 꿈꾸는 윤나연 등을 중심으로 여러 에피소드들이 뻗어 나간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필우, 송을태, 송길서, 박경서, 한길서, 윤나연 등은 그러한 현대문명에 대해 여러 형태로 저항하는 인물들이다. 반대로 전진철은 그러한 현대문명에 의해 타락하여 연쇄살인을 벌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여튼 등장인물들이 많고 그 인물들의 성장배경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다보니 방대한 내용의 책이 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부터 세기말까지 30여년간의 한국사회를 그려낸 일종의 서사시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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