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동맹 - 한미관계 60년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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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경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핵무장을 용인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한미 양국을 포함하여 동북아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는 뉴스를 들었다. 트럼프다운 과격하고도 파격적인 주장인데, 과연 헛소리로만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이승만정부부터 이명박정부까지의 한미동맹의 역사를 조망한 <갈등하는 동맹>을 읽다 보면,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감축 카드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이 휴전한 이후, 미국은 한미동맹과 그에 따른 주한미군 주둔을 부담스럽게 느꼈다. 아이젠하워는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사령부에 귀속시켰다(24).


케네디정부와 존슨정부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감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43), 이에 반대한 박정희정부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5만의 한국군을 파병하였다. 한국군 파병은 주한미군 감축 논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지만, 존슨에 뒤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결국 "한국군 현대화 지원을 조건으로 1971년 6월까지 주한미군 지상군 1개 사단의 병력 약 2만 명을 철수시켰다(75)." 이때 미국은 "박정희 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에 강력히 반발하고, 또 미국으로 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려고만 한다는"(75,76)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박정희 정부는 1968년 있었던 북한 게릴라의 청와대 습격 사건 등에 강한 위기감을 표하고 있었다.


인권문제를 유난히 중시했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자 한미갈등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카터 대통령은 대선에서 박정희 정부의 국내적 억압을 비판했다. 로비스트 박동선이 박정희 정부의 후원으로 미국의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공여한 '코리아게이트'가 발각되면서 미국 내 여론은 악화되었다. 카터는 1982년까지 한국에서 육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고, 공군과 해군만을 남겨둔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주한미군 철수 정책은 미국 국내에서도 반대여론에 봉착했고, 1979년 방한한 카터는 박정희와 정상회담을 가지고,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사건부터 부마사태에 이르기까지 카터 행정부는 "대사 소환, 대통령의 친서 전달, 공개적 비판, 원조 중단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박정희 정부에 압력을 가했(88)"고, 이는 간접적으로 10.26을 유발했다고 한다.


흔히 미국이 패권주의 때문에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고 이해하는데,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기의 한미동맹을 보면, 미국은 어떻게든 한국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반면, 한국은 미군을 한국에 붙들어매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여러 반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군의 한국 주둔은 결코 미국 입장에서 수지 맞는 장사도 아니었다. 한국전쟁에서 54000여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상식적으로 이러한 희생을 치르면서 미국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고 싶어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한미관계에 변화가 나타난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는 한국이 대북강경책을 주장하며, 북한의 위협을 지렛대로 삼아(전두환 시대 이후에는 시민사회의 반미감정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90년대에는 한국이 북한에 대해 온건해지고, 미국이 강경책을 선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대중, 노무현과 부시정부 사이의 갈등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제1차 북핵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으나 막상 클린턴 정부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나서자 당황하여 서둘러 북핵위기를 봉합하려 했다.


이렇듯 한미동맹의 지난 역사는 박명림 교수의 말대로 "순응과 도전, 적응과 저항"을 거듭한 갈등속의 동맹이었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한미동맹에 또 한 번의 위기가 다가오려 하고 있다. 미국 대선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후보,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샌더스는 외교문제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트럼프가 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와 한국/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한 것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트럼프와 샌더스가 보이고 있는 것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에서 보통국가로서의 미국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관계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더욱 발전된 한미동맹을 향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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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도 알라딘신간평가단 추천 페이퍼를 쓰려고 보니, 어느덧 이번 달이 마지막 달이다. 한 달에 한 번 책 다섯 권을 추천하고, 두 권을 받아 리뷰로 쓰는 일.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 어째서인지 내 삶 속에 알라딘신간평가단 활동이 큰 자리를 잡아, 매달 1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알라딘신간평가단에 추천할 책, 선정된 책, 읽고 리뷰 써야 할 책 생각만을 하게 되는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달은 마지막 달이라서 그런지 여느 때보다도 추천하고픈 책이 많았다. 그래서 폴 오스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소설가들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선정해 보았다.


1.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곽정은




몇 달 전에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이 고민상담을 접수해 책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보고 직접 내 사연을 써서 보내볼까 고민하다가 내 고민 따위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게 벌써 책으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곽정은 칼럼니스트의 연애상담 책, 읽고 싶다.


2. <디어 존, 디어 폴> 폴 오스터, J.M. 쿳시




폴 오스터와 J.M. 쿳시라고 하면 현재 생존해 있는 영미문학 작가들 중 최고의 대가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서로 주고 받은 서간집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렌다.


3. <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폴 오스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일단 추천하고 본다.


4. <백미진수> 단 가즈오




1950 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단 가즈오는 미식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식가의 음식에세이라면 당연히 기대되는데, 봄나물부터 멧돼지, 말고기, 아귀 등을 일본 문단의 대가들과 세계사적 문맥 속에서 논하고 있다니 흥미가 생긴다.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


5.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 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 하면 역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 그 상은 당연히 <나생문> 등을 쓴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고 있는데, 그만큼 아쿠타가와는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그가 1921년 중국의 상해, 강남, 북경을 주유하고 쓴 기행문이 출판되었다.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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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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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위대한 개츠비>를 먼저 읽어보기로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별 감흥이 없었고, 그저 그런 소설로 기억되었다. 내심 왜 이 소설이 위대한 소설들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5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위대한 개츠비>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빠져들었고, 묘한 감동과 흥분에 휩싸여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미국 문학의 180쪽짜리 시스티나 성당"(16)이라는 찬사가 과히 거짓은 아니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읽은 것과 같은 번역자의 같은 판본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같은 개츠비 연구서들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읽은 것도 아니었고, 내 인생에서 적어도 연애에 관련된 큰 변화는 없었는데 책을 읽은 감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고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의 저자 모린 코리건은 "고등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읽으며 왜 위대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11)지만, 현재는 매년 대학 신입생들에게 <위대한 개츠비>를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수강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의 겹겹이 쌓인 의미를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16)다고 한다. 고전, 혹은 위대한 명작들의 공통점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과 <위대한 개츠비>의 탄생비화, 소설 <개츠비>가 걸어온 궤적 등을 다루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부인이었던 젤다와 딸 스코티와의 관계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헤밍웨이와의 관계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에게 "당신의 간은 프린스턴 박물관에, 심장은 플라자 호텔에 뿌립시다"(46) 운운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니, 라이벌보다는 악플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개츠비> 안에 나타난 유대인이나 이민자의 문제, 1920년대 뉴욕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개츠비>의 하드보일드 소설적 요소 등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어느 맑은 아침에"라는 표현 다음에 오는 "터무니없이 긴 줄표가 개츠비가 소유한 선착장 끄트머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64) 운운하는 비평가의 지나친 의미부여는 다소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소설만 읽고는 알 수 없었던 여러 사실들도 나와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발표 직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겨우 2쇄를 찍은 후 서점에서 사라졌던, 그래서 피츠제럴드 본인이 출판사에 선물로 주문한 게 유일한 판매고였던 <위대한 개츠비>가 1940년 피츠제럴드의 사후, 미국문학의 금자탑으로 급격히 부활한 과정이 흥미로웠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대량의 문고판 책들을 인쇄하여 참전 중인 군인들에게 배부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15만 부 이상 미군들에게 읽혔고, 이는 1950년대 <위대한 개츠비>의 대중적 부활의 선구가 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부흥이 미군의 진중문고 보급이 1차적 계기였듯이, 국립예술기금이 시작한 '빅리드' 캠페인은 평소 대학에서 <개츠비> 강의를 하던 모린 코리건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나보다. 2004년 국립예술기금은 여가시간에 문학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보고서를 접하고, '마을마다 책 한 권' 캠페인을 전개하는데, 이때 국립예술기금이 <화씨 451> <몰타의 매><앵무새 죽이기> 등과 함께 선정한 소설들 중 하나가 <위대한 개츠비>였던 것이다. 저자는 <개츠비> 강연을 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으며 그동안 내가 많은 책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가지는 않았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통해 <위대한 개츠비>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위대한 개츠비>가 "살면서 적어도 두 번, 또는 5년에 한 번씩은 읽을 가치가 있는 미국 소설"(18)이라고 말한다. 아마 내게도 <위대한 개츠비>가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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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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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굿바이, 레닌>(2003)이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1989년 베를린의 벽이 무너질 당시, 혼수상태에 빠진 주인공의 어머니가 6개월만에 깨어나는데,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에게 차마 동독이 망하고 통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아직 동독이 망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코미디 영화다. 통일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는데, 동독 시절 어머니가 즐겨먹던 통조림을 찾기 위해(통일 이후에는 브랜드가 없어져 구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쓰레기장을 뒤지던 주인공을 보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혀를 차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고, 이제는 청년이 쓰레기장까지 뒤지네. 동독시절에 이런 일은 없었는데..."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이 성립된 것은 기껏해야 1949년이지만, 소련은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4년간 존속했다. 소련이 멸망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소련 이전의 러시아를 기억하지 못했고, 소련이 그들의 조국이었다. <굿바이, 레닌>의 주인공 어머니는 영화 마지막에 숨을 거두지만, 많은 소련인들은 1991년 이후에도 러시아인(혹은 벨라루시인, 아르메니아인, 타지크인, 체첸인 등등)으로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실제로 소련인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마르가리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냥, 없어진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내려다 보니 어느새 다른 국가의 국기가 걸려 있었던 거예요.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 거죠. 남의 나라에서요.(140)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도입으로 소련은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파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조직하여 1991년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감금하는데, 이에 반항한 수십만의 소련 시민들이 모스크바의 의사당로 몰려들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를 계기로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연방 등으로 분열된 것이다.


그러나 10년뒤,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어땠을 거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랬다면 위대한 나라를 보존했겠지요."

"공산당이 아직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을 한번 보세요. 지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에요."

"조국을 배신한 대가로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심판했겠죠."(중략)

"전 그날 의사당에 모였던 사람들 중 하나에요. 지금 느끼는 기분은 '속았다'에요. (35, 36)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는 결코 고르바초프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섰던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같은 장밋빛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일부 사람들이 부호가 되어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떤 사람은 소련 붕괴 이후의 90년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끔찍한 시절이었거든요. 머릿속에서 180도 회전이 일어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변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도 허다했어요. 정신병원이 환자들로 북적거렸죠. (중략) 거리에선 총소리가 줄곧 들렸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매일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죠. 뭔가를 더 가져 가려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가져야 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던 거예요. 어떤 사람은 파산했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갔어요. (40)


 

알렉시예비치는 소련 붕괴 후 20여년간 정신없이 뛰어들어 흩어지는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온갖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주워담았다.


"옐친과 그 일당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훔쳐갔소! '술을 마셔요! 부자 되세요!'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나려는지....."(중략)

"나 같으면 저 빌어먹을 부르주아들을 탱크로 싹 밀어버릴 텐데!"

"공산주의는 유대인 칼 마르크스가 만들어낸 거야."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사람은 스탈린 동지뿐이야. 이틀만 스탈린이 되돌아와서 모두를 쏴 죽였다면.... 그런 뒤에 얼마든지 다시 흙으로 돌아가 누워도 되잖아."

"주여,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 모든 성인을 섬길 거에요!"

"이 스탈린의 개들아! 너희 손에 묻은 피가 채 식지도 않았다, 이놈들아! 황제 일족은 왜 죽인 거냐, 이 나쁜 놈들아! 네놈들은 아이들마저 잔인하게 도륙했잖아!"

"위대한 스탈린 없이 위대한 러시아 를 만들 수는 없어." (46, 47)


그 과정에서 스탈린체제와 제2차세계대전부터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 붕괴, 그 이후에 대한 사람들의 갖가지 기억들을 모은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며 국민들이 가진 하나의 단일한 서사를 해체시킨다. 예를 들어 히틀러와 싸워 이긴 소련의 위대한 영웅들의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세계대전에 대해 다른 목소리들, 다른 기억들을 복원해낸다. 나치 독일의 학살로부터 도망쳐 빨치산에 참가했지만 오히려 소련 빨치산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유대인의 기억, 소련의 통치보다 독일 점령군의 통치가 나았다며 독일 앞잡이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어느 여인의 기억, 전쟁이 끝난 후 먹을 것을 구걸하던 독일군 포로에 관한 기억, 스파이로 몰려 수용소로 보내진 어느 아이의 기억...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을 건져 올림으로써 평범한 서민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완성해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쟁세대는 소련 붕괴 이후의 변화가 익숙치 않고, 신러시아를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 손자들이었다면 아마 '위대한 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가리킴)에서 패했을 거야. 요새 애들에겐 사상도 원대한 포부도 없어." (중략)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 애들은 옛날이야기 취급을 해버리지. 그러곤 이런 질문들을 해. '왜 군인들이 연대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죽었던 거예요? 다시 새로운 깃발을 만들면 됐잖아요.' 날 보고 대체 누굴 위해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였느냐고 묻는다니까. '스탈린을 위해서 하셨어요? ' 어이구, 이 철없는 것들아! 너희들을 위해서다, 너희들!

"항복을 하고 독일놈들의 군화를 핥았어야 했나 봐......(262)


청년세대는 노년세대의 성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년세대는 그런 청년세대에 울분을 토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세대갈등과도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인터뷰이들 중 몇 명은 스탈린 체제 당시에 자신의 가족, 혹은 자기자신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 시절 부인의 가족이 폴란드에 남았다는 이유로 잡혀가 감옥에 수감되었던 바실리 노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국 스파이, 일본 스파이들, 가방 끈이 짧았던 어떤 시골 영감은 마구간을 방화했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왔고, 어떤 대학생은 유머를 잘못 말해서 잡혀 왔었지. (중략) 그 유머 때문에 학생은 '일체의 연락이 불가능한 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어. 스탈린과 닮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운전수도 있었어. (246)


바실리 노인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명예회복을 위해 전쟁에 참가했고, 당원자격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이미 죽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옐친의 러시아를 혐오했으며, "난 공산주의자로 죽고 싶어.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256)라고 말했고, 실제로 자신의 유산인 아파트를 공산당에게 남기고 죽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것일까? 한국에서도 청년세대가 박정희를 비판하면 "그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라고 역정을 내는 노인들이 있다고 하는데, 소련과 스탈린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인 것일까?


전쟁, 수용소, 감시와 밀고, 빈곤, 혁명, 학살, 테러, 이민, 사랑, 자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은 참 불행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상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하죠. (중략)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 폐허 위에 앉아 있어요. (중략)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바로 고통의 언어에요. (52)


러시아인들만큼 고통과 절망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아니다. 이 책에 묘사된 고통과 절망의 이야기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모습은 약간씩 바뀌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며 한국을 떠올렸다.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이 일어났고, 스탈린 숭배자들도 나타났다. 19세에서 30세까지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탈린을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꼽고 있다. (중략)

구시대적 발상들, 다름 아닌 '위대한 제국', '철의 손', '러시아만의 고유한 길' 등의 사상들이 부활하고 있다. 소련의 국가가 다시 불리고, '나쉬'라는 이름이로 불리는 콤소몰도 활동하고 있다. 공산당을 재현한 것 같은 집권당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공산당 총서기장의 절대적 권력과 같다.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정교회가 대체하고 있다. (19)


시민혁명으로 독재체제를 무너뜨렸으나 그 결과 찾아온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부격차에 실망하고 과거의 독재를 그리워하는 나라, 역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위대했던 시절의 독재자를 닮은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나라, 과거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는 나라, 자신의 나라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다른 나라로 이민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혐오하는 나라,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서는 영웅들은 찬양하면서도 딸의 의심스러운 자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경찰이 잡아가는 나라. 물론 구소련이나 러시아보다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임은 틀림없지만, 어쩐지 우리나라도 러시아와 같은 모순 가득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번역상의 문제가 눈에 띈다. 일단 "공산당 매니페스토(정권 공약)"(406)라고 되어 있는 단어는 문맥상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맞을 듯 싶다. "별장"이라고 번역하면 될 단어를 굳이 "다차"라고 러시아어 단어로 표기하는 것 또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문화에 관한 역자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대부분 넘어간다. "아는 지인"(452)이라는 잘못된 표현도 또한 나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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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우화 179편을 모은 우화집이다.


삶의 지혜를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신이 등장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가치있는 삶을 살자는 것이 대략적인 주제인 것 같은데, 힐링과 자기계발을 버무린 종교에세이 느낌이 난다. 내가 속세의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은 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에 곁들어진 황중환의 일러스트는 좋은데 말이다.


예를 들어 144번 우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곡예사가 광장 한가운데에 꼼짝 않고 서 있다가, 갑자기 오렌지 세 개를 손에 쥐더니 공중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면서 그의 훌륭한 솜씨와 우아한 몸짓에 감탄했다. (중략)

"우리네 인생도 저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렌지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양손에 오렌지 한 개씩을 쥐고 있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세 번째 오렌지입니다. 아무리 솜씨 좋고 능숙하게 던져봐야 소용없어요. 오렌지는 자기 고유의 길을 따라가니까요. 저 곡예사처럼 우리도 세상 속으로 우리의 꿈을 던지지만, 그 꿈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꿈을 신의 뜻에 맡기고, 그 꿈이 자신의 길을 위엄 있게 완수하는지, 때가 되었을 때 우리의 뜻대로 실현될지 여쭈어야 합니다." (255)


이 글을 읽고 무슨 소리인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오른다. 비유의 핵심을 이루는 "곡예사의 오렌지=우리의 꿈=신의 뜻에 맡겨야 함"이라는 논리구조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이 이렇게 납득이 안 가는 비유들만 실려 있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도 있긴 있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저는 수년 동안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곧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해서 생활비를 버느냐?"

"아직 생활비를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부양하시죠.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스승이 말했다.

"다음 단계는 삼십초 동안 해를 쳐다보는 것이다."

제자는 스승님 말대로 했다.

이윽고 스승은 제자에게 주위의 모습을 묘사해보라고 했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주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진리만 추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절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해만 계속 쳐다보는 사람이 결국엔 눈이 멀 듯이 말이다." (26,27)


이 이야기를 읽고 생활비도 못 버는 대학원생인 내 처지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서 처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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