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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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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교양인이자 독서가로 유명한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의 정원>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인생의 책 100권을 선정한 적이 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은 다치바나 다카시답게 <2중나선>부터 시작하여 <만들어진 신> <성경><코란> <논리철학논고> <직업으로서의 정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리엘> <황무지>까지 동서고금의 명저들이 망라된 목록에서 나는 신기한 책 제목을 발견했다. 바로 99번째 책이 사노 요코의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였던 것이다(참고로 100번째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일본의 동화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사노 요코의 이름을 그렇게 알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라는 에세이가 번역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알라딘신간평가단 에세이 분야에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가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16기 알라딘신간평가단에서 선정된 에세이들 중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와 더불어 가장 에세이다운 에세이였던 것 같다(아니, <세컨드 핸드 타임>이랑 <내 심장을 향해 쏴라>가 논픽션이지 어떻게 에세이란 말인가).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는 <라면의 끓이며>와 비슷하지만, 김훈이 글이 힘이 잔뜩 실린 에세이라면, 사노 요코의 이 책은 훨씬 가볍게 쓰인 느낌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라니, '뭘 그렇게 진지하게 살아?(Why so serious?) 어깨 힘 빼고 편하게 되는 대로 살아'라는 느낌이다. 투병 중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 쿨하게 세상의 진지함을 특유의 힘 빠지는 유머 섞인 문체로 웃어넘긴다. 그런데도 그런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에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류의 에세이에서 돋보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 빛나는 인간 통찰의 깊이와 번뜩이는 재치다. "인쇄된 글로 된 것을 의심해라"라고 말하던 아버지, 아프면 "내가 죽으면 말이지"하고  앓는 소리를 하던 어머니, 일주일에 한 번 한 아름이나 되는 꽃을 사면서 남편에게는 구멍난 양말을 꿰매어 신게 하는 동생, <미운 오리 새끼>의 오리는 그냥 오리로 살면 안 되냐고 묻는 아들, 비정상적으로 짧은 다리와 긴 몸통이 처량해 보이는 애완견, 회사 중역 기요시와의 불륜을 끝낼지 말지 전화로 물어오는 친구 마리코, 술에 취하면 문의 매트를 0.1mm의 오차도 없이 직각으로 고쳐놓는 다미야 군 등등 저자 주변의 흥미로운 인간군상들의 묘사를 보면 꼭 좋은 일들만 가득하지는 않은 우리의 일상이 저자처럼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풀이로 읽기 때문에 활자는 그저 배경 음악처럼 흘러갈 뿐, 교양으로도 지성으로도 남지 않는다. 오락이니까 그냥 시간을 때우면 되는 거다. 내 안에 축적되어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 같은 건 없다. (중략)

독서는 그처럼 나에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때때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거나 분노에 떨거나 하는 것을 몹시 싼 값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은 좋다.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로, 눈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마음속에서 꺄아 꺄아 기뻐하고 싶은 거다. (318-320)

 

저자는 이렇게 말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영화나 책에 대한 교양과 지성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노 요코의 이 책은 에세이로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으로 생각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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