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구한 개 - 버림받은 그레이하운드가 나를 구하다
스티븐 D. 울프.리넷 파드와 지음, 이혁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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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림받은 자들의 동병상련이 빚어내는 담담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늑대를 구한 개>는 한때는 승자였다가 현재는 패자가 된 실직 변호사와 폐기처분되듯 버려진 경주용 개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힐링이 되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는 실화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동물이 단순히 애완용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이 있음을 감정의 과잉됨 없이 진솔한 고백으로 들려준다.

 

때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으나 만성 척추통증으로 인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데다 직장도 잃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게 된 울프(저자 이름)’는 크레이트(철창)에 갇힌 채 경주용 개로 훈련돼 앞으로만 달릴 뿐 계단도 잘 못 올라가는 개 카밋(comet)’을 운명처럼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상황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개를 입양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에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울프는 이내 상업논리에 따라 쉽게 버려지는 경주용 개로 키워진 그레이하운드 종 카밋에게 이끌려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인다.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더 깊고 애틋했던 것일까? 울프와 카밋은 사람과 동물의 주종 관계, 상하 관계를 뛰어넘어 깊은 정을 나누는 교감의 대상으로 발전해나간다.

 

러나 정상적인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울프의 불안감은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물론 주변과의 사회성에도 균열이 생기게 되자 자기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가두는 삶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학적 생각에 빠져 강박증 환자처럼 구는 울프에게 지칠 대로 지친 아내는 결국 이별을 통보한 후 떠나버리고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한없이 추락하는 울프 곁에는 오로지 카밋만이 여전한 친구로 남는다.

 

로 남은 상황에서 카밋과의 관계를 통해 부부관계에서의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울프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그리고 실업자로 살아가야한다는 연약한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새로운 삶의 기회마저 고마워할 줄 모르고 과거에 발목이 묶인 채 나약한,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강인한 자기 최면에 빠져 있었던 자신을 아무런 대가나 요구 없이 그의 곁에서 손발이 돼주고 있는 카밋을 보며 자신의 진짜 문제는 허리통증에서 오는 장애가 아닌 믿음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카밋이야말로 날 때부터 인간에게 지독한 학대를 받고 급기야 버림까지 받은 상황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한 눈으로 그들 곁에 다가와 용서의 눈길을 보내고 있음을 마음으로 읽었다고 할까?

 

이 멋진 개가 날 선택한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카밋은 경견장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그런데도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그 마음의 깊이를 결코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카밋은 사랑, 우정, 그리고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과 같은 영원불멸의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애써왔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날 위해 애써왔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p281)

 

 

후 울프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화해를 하고 관계를 회복한다. 그리고 비록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가혹한 시련의 나날들이지만 남은 날들을 신세진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시간으로 보낸다. 무료법률상담은 물론 그레이 하운드 구조 단체의 모금 활동과 행사를 돕기도 한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들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밋은 학대받는 그레이하운드 경견용 개의 대명사가 되어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2010년에는 네브래스카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올해의 보조견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책 출간 이후 노골적인 경견 학대에 대한 묘사로 경건업계 종사자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하니 책의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 짐작해볼 만하다. 다행히도 이후로는 은퇴한 경주견들의 상당수가 보호소에 보내지거나 추후에라도 가족에 입양될 수 있도록 다른 개나 사람과 어울릴 수 있도록 신경써준다고 한다. 그레이하운드 종이 지닌 조용하고도 강인한 특성을 살려 경주견 대신 보조견이나 치료견으로 훈련되기도 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의 원제목이 <comet’s tale : 카밋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나 국내 번역 제목이 <늑대를 구한 개>인 것을 감안해볼 때 이 책의 주인공은 저자라기보다는 저자와 함께 인생의 후반부를 함께 보낸 개 카밋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그만큼 카밋이 저자의 삶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한 것으로 이후 그의 삶의 태도를 바꿔 놓게 했으며, 더 나아가 경주용 개에 대한 끔찍한 동물학대에 대해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이끌어 냈으니 말이다. 결국 울프와 카밋의 불완전한 만남은 서로에게 치유와 안정으로, 완전한 성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 둘이 들려주는 이 아름다운 말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인생이란 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빗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거죠.(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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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인문학 - 인문학으로 키우는 내 자녀
송태인 지음 / 미디어숲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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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텔링이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새롭게 개정된 교과서 중 ‘수학’ 과목은 딱딱한 수와 식의 개념을 재미있는 이야기식으로 풀어내 학습의 효과를 높이고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의 선두주자라 볼 수 있다. 요즘은 마케팅 분야에서도 생활 속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있다 하니 과히 스토리텔링의 전성시대라 말할 법도 하다.

 

래서일까? 미디어숲에서 출간된 <스토리텔링 인문학>은 인문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온 저자가 자녀에게 꼭 들려주어야 할 참된 인생의 방향을 인문학에 초점을 두고 조분조분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인문교육서이다. 최근 인문학이 유행이고 대세라지만 일반 독자에게 인문학은 여전히 어렵고 딱딱한 전문영역으로 느껴지는 만큼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현명하게 적용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고전의 경구를 쉽게 풀이해준다. 또한 단순히 고전 읽기의 방법론에 주력하기보다 인문고전을 활용한 자녀교육이라는 적용론에 초점을 두고 전개하고 있는 만큼 주된 독자층은 인문학으로 자녀를 키우고자 하는 부모라 하겠다. 

 

을 쓴 동기 또한 시류와 영합한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불투명한 곳으로 안내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만큼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내 아이가 뒤처진다는 생각으로 심리적 조바심에 휩싸인 부모들에게 ‘빠르게’가 아닌, ‘바르게’의 가치를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 하여 ‘나’의 중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인문고전이 방향키가 될 수 있음에 착안하여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고 가르쳐야 할 참된 삶의 가치를 제시하도록 돕는다.

 

책은 자녀 교육에 필요한 핵심 키워드를 ‘인성, 학습, 진로’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밑바탕에 동서고금의 다양한 인문고전을 소개해가며 부모로서 잊고 있었던 본래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하나둘 깨닫게 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때때로 마음은 그러한데 행동은 그렇지 못한 충돌의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라면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자녀 교육에 대한 이율배반적 행동, 그것의 시작은 ‘사랑’이었지만 과정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참담한 ‘소유’로 진행되는 부모 욕심. 말로는 자녀의 행복을 운운하지만 이면에는 부모의 자존심이 깔려 있는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 등등.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부모의 심리 상태를 오늘날의 사회구조와 연관지어 짚어주며 귀할수록 바른 인성을 갖춘, 공부의 참맛을 아는, 자신의 진로를 적성에 맞게 계획할 수 있는 자녀로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부모의 그릇 채우기에 인문학적인 해법을 제시해준다.

 

천하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천하는 신성하고 귀중한 그릇이기에 억지로 무엇인가를 할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다. 억지로 한다면 무너지고 집착하면 잃어버린다. 무릇 이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앞서 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있다.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다.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다. 올라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것도 있다.(p43)

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위 구절은 자녀를 소유하려는 것은 천하를 차지하려는 것보다 더 큰 집착임을 깨닫게 한다. 노자는 사람마다 ‘때’가 다르고 ‘힘’이 다르므로 각자가 지닌 고유한 길을 존중해주되 ‘지나침, 모자람, 교만함’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핵심이므로 경계해야 함을 전한다. 선행학습이 필수 코스처럼 돼버린 지금의 교육 풍토에 내 자녀가 뒤처지지 않도록 자녀를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 심리의 밑바탕에는 앞서 가는 것이야말로 성공에 먼저 도달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자녀에게도 각자의 능력과 속도가 있음을 인정하고 조용히 지지하며 기다려주는 순리가 필요하다는 말인 듯 싶다. 

 

자 또한 그의 사상을 담은 책 『맹자』에서 귀나 눈으로 접촉하여 외부 상황에 끌려 다니는 것은 소인이 되는 길이며 마음의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대인이 되는 길이라 말하고 있다. 자녀를 위해 최신 정보를 얻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녀에 대한 고려나 검증도 없이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적용하는 부모야말로 소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의 이치를 깨달아 부모의 자존심이 아닌 자녀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둔 가르침이 필요하리라 본다. 자녀의 행복을 운운하지만 내면에는 부모의 자존심이 깔려 있는 것처럼 자녀 역시 자신의 정체성보다 나로 인하여 부모님의 자존심이 올라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풍토야말로 소인으로서의 대물림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한민국이 교육공화국이 된 오늘날의 시점에서 사람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학습’ 편은 부모보다 학부모에 치중하고 있는 이 시대의 부모역할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학습이 자녀의 자기 본성을 살리는 데 목적을 둔다면 공부는 성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즐거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수가 잊고 있기에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는 구절이다. 저자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범위에서 자신의 의지를 계량화(수치화)하는 작업인 ‘목표 동기’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외적 동기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세계를 선택하는 ‘목적 동기’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개인의 자발성에 의존하는 내적 동기라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1등이라는 외적 목표에 치중해 자녀들을 경쟁 사회로 내몰았다면, 이제는 ‘나’의 가치를 찾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주도학습인 ‘목적 동기’로 교육의 풍토가 이동해야 할 때다. 

 

로’에 관한 접근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적성 검사며 직업 탐색 교육이 조기부터 이뤄지고 있어 자신의 적성을 고려한 직업 선택의 신중함과 적합성이 일찍부터 계발되는 장점이 있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그만큼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지표로도 볼 수 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경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 부모는 내 자녀가 수입이 안정되고 생활이 보장되는 직업을 얻기를 원한다.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재물관에 대한 바른 교육없이 돈과 명예가 뒤따르는 직업관을 주입시키는 부모의 태도가 직업 세계에도 학창시절의 일등주의의 연장선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꿈과 진로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자녀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되, 부모 역시 과감하게 자녀를 마음에서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워서 남 주냐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배워서 남 줄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다. 경쟁과 순위보다는 배려와 나눔의 가치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은 결국 올바른 가르침이며, 가르치기 위한 교재는 인문고전이 되는 셈이다. 부모보다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교육에 인문고전이 과연 ‘초심’이 되고 ‘중심’이 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의아한 질문은 책을 덮는 순간 ‘그렇다’라는 끄덕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인문학의 광범위한 영역과 깨달음은 다만 학문적 지식에 머물지 않는 생활 속 지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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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 좋은 습관의 힘
조이스 마이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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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는 파스칼의 말은 생활 속에 나타나는 습관의 파괴력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말이다. 좋은 습관이라면야 상관없지만 자신의 이미지는 물론 일상생활마저 위협하는 나쁜 습관은 누구나가 버리고 싶은, 고치고 싶은, 잘라내고 싶은 보이지 않는 통증이다. 처음에는 그저 염증에 불과했던 작은 습관도 방치의 시간에 따라 생명을 위협하는 암덩어리로 번질 수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손을 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수긍하는 당연지사이다. 다만 이 습관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고약한 힘줄로 변해있는 만큼 일순간에 싹둑! 잘라버릴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참 게으른 편이다. 급하지 않는 한 다음으로 미루는 일이 많다 보니 기한에 임박해서야 일에 착수하는 일이 생활 속에서 다반사로 나타난다. 서두르는 것 없이 느긋하게 지내다 보면 막바지에 가서 두세 배로 힘들어지는 데다 심리적 압박감으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또한 늘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고 한 가지 일을 집중해서 끝내지 못하는 것도 오래도록 내 안에서 형성된 잘못된 습관 중 하나이다. 결국 해야 할 일이 늘 산적해있는 무거움 속에 우선 순위와 차선 순위를 혼동한 채 무질서하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랄까? 이 책을 덥석 펼쳐보게 된 것도 개인적 독서취향이라기보다는 평소의 이런 악습관을 바꿔보고 싶은 바람과 기대에서 비롯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디 절박한 소망이 강인한 의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의 저자인 조이스 마이어는 미국의 유력 시사 주간지인 타임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리더 25으로 선정되기도(2005) 한 인물이다. 저자의 약력이나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이 책은 실생활에서 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위력을 좋은 습관의 힘을 통해 생활화하자는 취지에서 씌어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두란노역시 국내에서는 양서의 기독교 서적 출판으로 이름난 곳인 만큼 이 책에는 신앙적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기 위한 올바른 습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다수 등장한다. 그러나 신앙이 있고 없고와 관계없이 이 책은 현재의 삶 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아 만족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천적인 방법을 제안해주는 보편적 기능에 더욱 충실한 책이다. 그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라기보다는 독자 개개인의 맞춤형 습관 보정책이라는 목적성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다면 자신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약함을 강건함으로 바꿔갈 수 있을 듯 싶다.

획 의도가 그러한 만큼 책의 앞부분에는 이 버릇만큼은 꼭 고치고 싶다라는 코너를 마련해 자신이 고치고 싶은 습관을 항목별로 체크해봄으로써 적극적인 독서의 자세를 마련한다. 좀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위해 마음 속 편견이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심리적 습관,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에서 오는 관계의 습관, 일상생활에서 몸에 배어버린 생활 속 습관, 인간적 연약함에서 비롯된 영적 습관 등 습관의 유형을 세분화해 자신이 특히 어느 부분에서 강한 습관성을 보이는지를 점검하도록 이끈다. 개인적으로는 생활 습관 면에서 상당히 취약한 나 자신을 발견해본 기회가 되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생활 습관 못지않게 영적 습관 면에서도 같은 성향이 유사한 상황으로 발현됨을 알고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령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생활습관은 기도와 성경 공부를 내일로, 다음 기회로 미루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초반에 불타오르다 이내 푹 꺼져버리는 나약한 의지는 성경일독 계획을 끝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채로 항상 진행형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결국 한 가지 작은 습관은 변형된 여러 유형으로 생활 깊숙한 곳에 침투해 커다란 습관 유형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래선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습관의 다양한 유형 중 기독교인으로서 특히나 가슴에 와 닿은 내용은 아무래도 영적 습관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이라면, 내가 매일 반복하는 행동이 나의 영성이 되는 법이므로 자신이 매일 행하는 영적 습관을 점검하는 것은 예배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히‘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고 습관적으로 고백을 하면서도 하루 단 5분이라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그러나 필요할 때만 찾는 자식처럼 다급할 때만 찾는 하나님 역시 하나님 입장에서는 어떠할지 반성해볼 일이다. 쓸 돈을 먼저 떼어놓고 난 후 남는 돈으로 저축하겠다는 것이 결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없듯 세상적인 스케줄을 먼저 짠 후 하나님을 내 스케줄에 끼워 넣는다는 것도 사실상은 빈말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순위와 차선 순위를 내 입맛에 맞게 조절해 왔던 습관은 신앙 생활에서도 연약한 흔들림으로 작용해 하나님을 뒤로 밀쳐냈던 경험이 많았음을 고백하게 한다.

렇다면 과연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며 묵상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작심삼일로 그치지 않고 몸에 밴 습관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모두가 바라는 일이요, 궁금해 할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무척이나 현명한 답을 제시해준다.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 시간을 재면 교만에 빠질 우려가 있다. 또한 반대로도 하나님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교만이든 죄책감이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매일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하나님과 시간을 보낸다. (p64)

 

지지 않은가? 통쾌한 정리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이 제안에 그동안 의지박약을 탓하며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무성한 계획 속에 지키지 못한 찝찝함으로 죄책감이 크게 들던 내게 '매일 아침 20분 성경 묵상'이라는 굳어진 목표보다는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과 은밀한 장소를 찾아 5분씩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작은 실천이야말로 교만과 죄책감 중 어느 한 쪽에 빠지지 않고 영적 습관을 길들이기 위한 자유로운 시작이 될 것 같다. 

 

나쁜 습관은 편안한 침대와도 같다.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기는 쉽지만 거기서 나오기는 어렵다.(p29)”

이제 그만 침대에서 나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면, 매일 후회하는 삶에서 매일 만족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욕구가 인다면 내일부터가 아닌 오늘부터 습관 바꾸기에 도전해 볼일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 3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아래 명언을 참고한다면 도움이 되려나?

"하루만에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습관은 창 밖으로 내던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슬려 한 번에 한 계단씩 내려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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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콘서트 - 지루할 틈 없이 즐기는 인문학
이윤재.이종준 지음 / 페르소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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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 듯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삶의 깊이와 진정성이 담긴 말 한마디는 때로 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아세피린보다 잘 듣는 진통제가 되기도,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도 한다. 때로 화려한 업적보다 그가 남긴 소박한 말 한 마디가 후대 사람들에게 더 인상적인 이미지로 기억되거나 회자되기도 할 만큼 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 책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 분야에서 내로라할 만한 유명인들의 사물을 꿰뚫는 날카로운 화법 속 유쾌한 재치나 유머 속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말들을 풍성하게 소개한다.

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인 리파티(repartee)-재치즉답 또는 현답모음집인 <말 콘서트>는 제목 그대로 각양각색의 재치있고 유머있는 말을 독자 앞에 볼거리 풍성한 콘서트 양식으로 보여주는 재치현답과 같은 책이다. 단순히 유명인이 남긴 명언이라고 하기엔 톡! 쏘는 뒷맛에 뭔가가 부족하고, ‘유머라고 제한하기엔 가볍지만은 않은 진중함이 느껴져 그것 또한 부적합하게 느껴지는 말들의 향연이랄까? 저자가 특별히 리파티라는 말을 사용해 쾌활한 위트나 지적인 유머라는 뜻으로 달리 표현한 것도 이와 같은 경계선의 필요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때문에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리파티는 그 말이 출생하기까지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문화적, 생활적 배경으로서의 상황을 폭넓게 들여다볼 때라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책은 1부 대문호예술가철학자성직자 편을 시작으로 2부 영웅편, 3부 대통령총리주석 등의 유명정치인이 남긴 경세지세의 말, 4부 한 시대를 빛낸 세기의 여배우여가수 편, 5부 인생처세지혜 등 현대인에게 유용한 처세담을 지나 6부 세련된 입담인 익살과 7부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역설과 모순어법에 이르기까지 출판사 소개 그대로 어디를 펼쳐 봐도 순서와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발자크, 헤밍웨이,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 볼테르, 김수환 추기경, 춘성 스님 등 세계적 대문호와 철학자들이 남긴 1부가 삶의 깊이와 통찰이 느껴져서인지 가장 읽을 만했고 재미있었다. 수록된 내용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몇편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발자크는 나폴레옹이 칼로 이루었던 모든 일을 나는 펜으로 이루리라.”는 말을 통해 문학의 나폴레옹이 되고자 했던 열망을 드러낸다. 여담이지만 그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 40여 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커다란 감정이 커다란 단어에서 나오는가?라는 헤밍웨이의 이 말은 헤밍웨이는 사전을 찾아봐야 독자가 알 수 있는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포크너의 말을 전해 듣고 한 말이라 한다. 헤밍웨이의 문장이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간결한 반면, 포크너는 어려운 단어로 긴 문장을 쓴 것으로 유명했다는 것이 말의 탄생을 실감나게 뒷받침해준다.

내 천부적 재능 말고는 신고할 게 없소.” <행복한 왕자>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이 말은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세관원이 질문한 신고할 게 있습니까?”라는 말에 대한 대답이라 한다. 스스로를 천재로 여겼을 만큼 문학적 자부심이 뛰어났던 그는 영어권에서는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재치있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버나드 쇼의 이 말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원 문장은 나는 알았지. 무덤 주변에서 머무를 만큼 머물다 보면(=오래 살다보면) 이렇게 무덤에 들어갈 줄을.’이라고 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앞 문장이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못지않게 재미있는 원효대사의 일화 중 한 토막. 어느 날 원효대사가 절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가서는 , 이놈아. 너 태어날 때부터 죽을 줄 알았다.”라고 했다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실로 도의 경지에서 집약해낸 명언이 아닌가?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고 있는 동안에 거짓은 지구의 반을 갈 수 있다.”는 말로 진실과 상관이 없는 온갖 루머나 비방, 과장과 허위의 말들이 지닌 허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담배를 끊는 것은 내가 해본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나는 그것을 천 번 해보았기 때문에 잘 안다.”는 그의 말은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특유의 유머 감각을 통해 반어적으로 보여준 말이기도 하다.

세익스피어는 우리 행성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오.” 카잔차키스는 인간의 말을 그처럼 힘차고 부드럽게, 그처럼 감미롭게, 신비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사람은 세익스피어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극찬의 말로 존경을 표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옹호한다."는 볼테르의 말은 이후 언론의 자유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종종 입에 오르내릴 만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다름을 주장하는 멋진 표현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 말이기도 하다.

 철살인이나 정문일침과도 같은 한 마디의 위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책을 읽다보니 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여기저기 밑줄을 긋다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내고는 탄성을 질러댔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이 남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능한 적은 수효의 낱말로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틀림없이 대충 훑어볼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알기 쉬운 말로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오해할 것이다." 이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이 또 있을까? 말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볼 때 결국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어떻게 이해하느냐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앞으로의 언어생활에 상당한 힌트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뿌듯한 수확이기도 하다.

자가 영어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만큼 언어만이 아닌 생활문화까지 짚어가며 말의 탄생과 유전을 풀어주고 있어서일까? 책이 단순한 말모음집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배경까지 돋보이게 하는 풀이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말 한마디로 압축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으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여기저기 흘리는 말들은 자기 삶의 가치관과 정서를 드러내는 조각들임을 볼 때, 이 책은 동서고금의 수많은 영웅들과 유명인들을 편하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는 스타다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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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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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기와 혼란기였던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에 중국 사상과 학문의 기초요, 동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위대한 사상이 가장 활발하게 출현했다는 것은 모순일까? 순리일까? 이 책을 펼쳐든 순간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이러한 아이러니였다. 흔히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이 어지러운 때일수록 그것을 바로잡거나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려는 움직임 또한 평화로운 안정기에 비해 더욱 강렬하고 적극적인 다양성으로 나타나므로 일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합쳐 역사상 550여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난세는 여러 영웅들을 불러냈을 것이고, 영웅의 활약상에 시대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역사관이나 세계관을 부여할 사상의 필요성까지 대두됐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지녔던 아이러니한 상황은 모순이 아닌 마땅한 순리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자백가의 출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 나라의 봉건제가 약화됨에 따라 각 지방의 제후들은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혈연 중심의 가족적 봉건제에 의해 세습되던 주() 왕조의 권력구조에 비해 뛰어난 지략과 능력을 겸비한 다수의 영웅들이 난무하는 춘추전국시대의 패권 다툼은 초야에 묻힌 실력 있는 인재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며, 나아가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한 차별화된 사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게 됐을 것이다. 제자백가의 출현은 이러한 사회적 혼란기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시대적 부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상으로 이후 오늘날 중국문화의 사상적 토대요, 동양사상의 기초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칭에서도 알 수 있듯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다양한 사상의 학파와 학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제자(諸子)는 여러 학자를, 백가(百家)는 수많은 학파를 뜻하는데, 이는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가진 학자들이 수많은 학파를 구성하여 자유롭게 학문을 닦았던 당시의 상황을 드러낸다. 제자백가 학파의 종류에는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한 유가, 엄격한 법으로서의 통치를 강조한 법가, 도덕과 법률의 인위적 잣대보다 자연 그대로를 본받아 살아가는 삶을 강조한 도가, 사랑과 평화의 삶을 강조한 묵가, 논리학파로도 불리는 명가, 군사론을 펼친 병가, 군주의 외교책을 논한 종횡가, 농업생산에 의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주장한 농가, 음양5행을 조합하여 하나의 철학 체계로 만든 음양가, 제자백가의 다양한 이론과 주장을 절충한 잡가 등이 있다. 이들은 정치사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중에서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유가를 창시하여 중국은 물론이요, 이후 조선의 이념적 통치사상의 축을 이루는 성리학으로 발전해 나간다. 유가 사상을 담은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 및 당대의 인물들이 서로 주고 받은 대담을 엮은 언행록으로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편찬한 책이며 이후 동양 고전의 핵심을 이룬다. 장자는 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공자 사후 100년 뒤 탄생했으며 노장사상을 구체화하여 도가의 중심을 이룬다. 이어 전국 시대에는 맹자가 그 체계를 확립한 유가와 묵자를 중심으로 한 묵가학파에 노자 학설을 구체화시킨 장자의 노장사상이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사상을 내세우기 위해 반대 학파(다른 사상)를 공격하기도 한다. 

 

 

히 묵자는 공자가 말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백성은 백성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에 신분 차이와 계급 의식이 숨어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공자가 말한 인이나 충, 효는 결국 상하질서를 아무런 불평 없이 순순히 따르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지배계층이 하층민을 부려먹기 좋게 길들이려는 사상임에 틀림없다. 결국 공자는 겉으로는 어짊이란 그럴듯한 사탕발림을 하고 통치자, 지배자에게 빌붙어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백성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인의와 예악이라는 깃발을 흔들고 다녔던 위선자인 것이다.(p535)”

 

라며 공자의 상하질서를 전제로 한 사랑을 별애(別愛)로 치부해버린다.

 

 

 

자는 전국시대 초기에 활약한 묵가학파의 시조로 맹자와는 동시대 사람이다. ‘겸애교리(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두루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함)’, 반전론(反戰論), 박애와 만민평등, 절용 등 민생과 직결된 사상을 펼쳤으나 봉건 시대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담은 <<묵자>>는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 시대에는 금서로 낙인찍힐 정도였다 하니 정치이념과의 이해관계가 사상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대략 짐작할 만하다. 어쩌면 묵자가 주장한 인본주의적 평등과 나눔의 철학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더욱 필요한 사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가 직설적인 화법으로 공자를 비판했다면, 장자는 좀더 우의적인 화법으로 비현실적인 유가의 이상론을 비꼬거나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공자의 표리부동함을 비난하면서 반대로 도가가 추구하는 무위의 다스림을 옹호하기도 한다. 공자가 자신을 알아줄 군주를 찾아 10여 년간 유랑한 것과 달리 장자는 초나라에서 제의한 재상자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만 보더라도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사상의 가치 요소가 외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 만하다. 공자 사후에 수많은 군주들이 앞다투어 ()’을 바탕에 둔 유가의 덕치주의를 정치이념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 또한 지배층과 권력층에게 유가 사상이 얼마나 덕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사상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 호접몽은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본래는 나비인데 나비가 인간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인간은 본시 하나로 겉모습이 나비나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철학적 경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환을 거듭하는 자연이나 우주의 시공 속에서 인간의 편협과 아집, 집착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p48)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고 저자는 해석해 준다. 고전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독자의 이해도에 명쾌한 도움을 주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 필자의 관심도에서 멀었던, 아니 무지했던 <열자> 편은 내가 이 책에서 만난 가장 낯설고도 반가운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정나라 출생으로 노자의 후배이며 장자보다 조금 앞선 시대, 즉 공자와 맹자의 중간쯤에 생존한 인물인 열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을 동일시 여기는 물아일체와 무위자연 사상을 우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열자가 바람을 타고 다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허공을 밟고 바람을 타다편에서는 내가 바람을 타는 건지 바람이 나를 타는 건지 모를 지경’(p204)이라며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 속 시비와 이해득실을 없애야 하고 그것이 소멸된 단계를 지나면 무심, 망아,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때 드디어 물아일체와 자연합일을 이룩할 수 있다’(p205)고 전한다. 전개 방식의 흐름만 보면 노자보다 장자에 가까운 사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 삼서로 널리 읽히는 <열자>는 고전에 대한 압축적 교육만을 받고 자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기도 하나 심오한 사상의 경지는 노자, 장자에 못지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미로운 인물 중에는 법가 사상의 체계를 이룬 한비자도 독서의 중심에 있다. 한비자는 전국 시대 말 한나라 귀족 출신으로 선천적인 말더듬이인지라 변론에는 서툴렀으나 저술에는 뛰어났던 인물이다. 한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임금에게 간언하는 글을 올렸으나 한왕이 이를 외면하여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지 못하자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사상을 담은 <한비자>를 짓게 되었다(p272)고 한다. 한왕과 달리 진시황은 <한비자>를 읽고 감탄한 나머지 한비자를 신하로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 마침내 그의 법치사상을 바탕으로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위대한 영웅의 자질 중 하나는 인재를 귀히 여기는 태도, 시대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 수록된 화씨의 보석편 역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어 위정자의 경솔함과 나태함에 대해 자질론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중국 고전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익히 들어온 수많은 고사성어들을 그 유래와 함께 발생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 하에서의 본래 의도대로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조삼모사, 우공이산, 순망치한, 대기만성, 호가호위, 어부지리, 가정맹어호, 풍수지탄, 당랑거철, 백아절현, 새옹지마 등 친숙한 고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시대적 상황에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보편적 상황에서의 의미가 남아있는 오늘날의 통용되는 뜻과는 달리 각 고사성어가 품고 있는 우의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뜻은 당대 사람들을 감탄케 하기도, 뜨끔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중 나무의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의 수주대토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요행만 바란다는 뜻과는 달리 원래는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가 옛 성현들의 치국 이념을 그대로 따르려는 고지식한 유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히들 소문난 맛집에 가짓수만 많을 뿐 정작 먹을 게 없다지만, 이 책은 정갈하게 잘 차려진 한식 상차림처럼 중국 고전 10편에 대한 각각의 소개가 담백한 글 읽기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이야기체로 술술 읽혀지는 데다 소개된 각 편마다 작가의 해설이 뒤따르는 고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30여 년간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쳐온 저자의 약력이 고전 해석의 깊이를 뒷받침해주듯 단편적 일화 소개에 그치지 않고 고전이 우리 삶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변형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자가 유독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공자><맹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자><열자>, <한비자> 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저자 개인의 선호도에 따른 편중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독자 입장에서 짐작하기로는 그간 역사 속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 특정 사상의 중요도보다 시대 흐름 속에서 재조명해봐야 할 다양성에 초점을 둔 편집량의 선택이 아니었을까?라는 추측도 해 본다. 개인적으로도 그간 접해볼 기회가 부족했던 <열자><한비자> 편이 가장 재미있고 유용했다. 이름이나 책제목 정도로만 들어왔던 <여씨춘추>, <회남자> 역시 소제목 그대로 격동의 시대를 평정한 사상의 완결판이라는 문구가 전혀 근거없는 말이 아님을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즈음은 인문학이 대세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여전히 대부분의 독자에게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옛사람의 사상의 흔적을 쫓아가기란 시공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는 압박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옛날에 쓰여진 오래된 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공감과 교훈을 자아내는 영향력을 지닌 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비록 어렵더라도 접근해볼 가치가 있으며, 바쁘더라도 시간을 낼 필요성이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의 핵심인 10편의 고전을 한 권으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러나 내용이 가볍지는 않은 입문서와도 같다. 10편의 고전 중 저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추려내 구성한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중국 고전 전반에 걸친 이해를 돕기 위한 출발서로는 꽤 매력있는 책이다. 쉽고 재미있고 의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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