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이야기 성서 -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록
오정희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경은 애초에 독창적인 변형이 불가능한 책이다. 인간의 손끝에서 기술되었을 뿐, 인간의 순수 창작물이라기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서이기 때문이다. 단어는 물론이거니와 조사나 어미 하나를 잘못 건드려도 전혀 다른 의미 구조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가령 '믿다'와 '믿어지다'의 능동과 피동의 차이처럼) 신학자나 성직자들조차도 성경을 대할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경건함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대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인 소설가 오정희 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반 이의 제기가 없는 듯 책의 서두에서 "애초에 독창성이나 새로움이 가능하지 않은 글이고 스스로 그러한 기대나 의지도 없었다.(p.5)"고 밝혔듯이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는 작가적 상상력과 통찰력을 가능한 한 배제한 채 저자의 고백 그대로 '성서에 대한 지식도 믿음도 보잘 것 없는, 혹은 갈망은 있으되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은 물음이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사람들을 향해 함께 읽고자(p.5)'하는 동기에서 출발한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로 풀어낸 성경의 일부이다.

책에서는 성경66권 중(천주교의 경우 72권) 구약의 창세기, 출애굽기와 신약의 마태복음을 다루고 있으며, Part 1에서는 하나님이 최초 인류인 아담의 창조부터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까지의 여정을 '최초의 계약(옛언약)'으로, Part 2에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사역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 부활하시기까지의 과정을 '새로운 약속(새언약)'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방대한 분량을 '옛언약-새언약'의 기준으로 간략하게 풀어내고 있다고나 할까? 독자로서는 그림자로서의 계시를 보여준 구약의 언약이 예수님이 실체가 된 사랑의 언약이 되어 부활에서 마침이 아닌, 재림에 대한 약속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음이 다소 아쉽다. 저자가 신구약의 순서대로 앞부분만 펼쳐나간 게 아니라 일정한 기준(옛언약-새언약)을 두고 파트를 나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고로 기독교(=그리스도교) 중 개신교(=프로테스탄)에 속하는 독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생소한 명칭들이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예를 들면 하느님(하나님), 이사악(이삭), 레베카(리브로), 에사우(에서), 야훼(여호와), 바리사이(바리새인), 카파르나움(가버나움), 자캐오(삭개오) 등등. 괄호 안에 개신교 성경으로 번역된 명칭을 함께 제시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자 입장으로서보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 입장에서 보자면 '하느님'이라는 명칭은 그 대상이 설령 같은 하나님일지라도 '하늘님= 하느님'으로서의 의미를 먼저 연상시키는 데에다 애국가의 한 구절인 '하느님이 보우하사~'에도 등장하고 각종 여러 종교에서도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으로(=모든 자연현상의 주권자) 보편화돼있으므로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창조주이자 구원주인 동시에 심판자로서 유일신이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감소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솔직히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마 개신교에 속한 나와 같은 독자라면 스토리 전개에 앞서 '하느님'이라는 낯선 명칭에서부터 어리둥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쨌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라는 수식어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개신교와 천주교의 통칭)에게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암호처럼 난해하고 술술 읽어내려가기가 만만치 않은 책이다. 게다가 독서의 일반적인 기능(감동, 즐거움, 정서적 교감, 순화, 정보습득 등등)과 달리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서인 동시에 언약백성으로서의 생활 방침을 다루고 있는 지시서인 특성상 일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땅에서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요구하고 있으므로 저자가 지적한 그대로 '읽기'보다 '만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좀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 볼 수 있다.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짜임새 있는 이야기처럼 술술 읽히는 성서로 재탄생해 믿음의 발판인 말씀의 진리를 좀더 바르게 알아가는 데 일조하는 책으로서의 기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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