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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파는 아이들 ㅣ 문학의 즐거움 37
린다 수 박 지음,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4월
평점 :
1. 수단의 눈물
영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나라, 수단.
지독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인해 이웃 부족 간에 물을 차지하고자 수십 년간의 전쟁을 치르는데다 북부와 남부 간 종교 분쟁으로 오랜 기간 내전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불안한 나라.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먼 곳에 있는 물을 길어오느라 하루 온종일을 뙤약볕에 연약한 몸을 맡긴 채 뜨거운 땅을 걸어가야만 하는 건조한 대륙, 아프리카.
그곳에 살바와 니아가 산다.
2. 살바와 니아
(1) 내전으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들'이 된 열한 살의 소년 살바
살바는 남부 수단의 톤즈 카운티에 있는 '룬아리익' 마을에서 태어났으나 이슬람교 중심의 북부 정부와 비이슬람교 중심인 남부 반군의 내전으로 인해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가족과 헤어져 전쟁 난민이 된다.
열한 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갑작스럽게 벌어진 가족과의 이별이나 난민 생활 도중에 만난 친구 마리알의 죽음은 슬픔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갈 방향도 모른 채 배고픔과 싸우며 정부군을 피해 무작정 걸어가야만 했던 머나먼 길, 사자와 모기떼의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했던 괴로움, 한 방울의 물도 아껴가며 나중을 위해 비축해둬야 했던 절박함 속에서도 살바는 결코 희망을 놓지 않고 시련이 만들어낸 또 다른 용기와 의지로 힘겨운 시간을 극복해 나간다.
난민캠프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한 뒤 현재 '수단을 위한 물 사업'에 힘쓰고 있는 살바.
(2) 더위, 시간, 가시밭길의 장애물을 견뎌가며 물을 길어와야 하는 열한 살의 소녀 니아
니아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연못의 물을 길어 오기 위해 하루에 여덟 시간이 넘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갈 때는 그나마 물동이가 비어있어 가볍지만, 돌아오는 길은 무거워진 물동이 때문에 걷는 일이 수월하지 않다.
물을 길러 갈 필요가 없는 호숫가에 살면 좋지만 물을 쟁취하기 위한 부족간 다툼이 많기 때문에 가족을 잃을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어 그 또한 쉽지 않다.
물이라기보다 진흙에 가깝기에 마시면 탈이 나는 줄을 알면서도 이곳 사람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 그 진흙물을 마시고 또 마신다. 그나마도 부족해 몇 시간씩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물 사정.
다행히 수년이 흐른 뒤 나아가 사는 마을에 우물 사업이 진행돼 더 이상 멀리 물을 길러 갈 필요도, 흙탕물을 마실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3)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이름-살바, 니아를 만나다.
니아네 마을에 드디어 우물이 완성되던 날, 니아는 깨끗하고 시원스런 우물물에 대한 감사 인사로 책임자를 찾아간다.
"고맙습니다."
니아가 말하고 용감하게 책임자를 올려다보았다.니아가 다시 말했다.
"물을 끌어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뭐니?"
그가 물었다.
"니아."
"만나서 반갑다, 니아. 내 이름은 살바야."
그가 말했다.
-본문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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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돌아와 조국 수단의 물사업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청년 살바와 더 이상 물을 길러 갈 필요가 없어진 니아의 만남으로 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며 끝을 맺는다.
3. 우물이 아닌 희망을 파는 아이들
우리에게는 그저 가벼운 일상에 불과한 생활이 지구 반대편 수단 아이들에게는 귀하디 귀한 보물이자 혜택 중의 특혜임을 깨우쳐주는 책, <우물파는 아이들>.
이들에게 한 방울의 물은 죽어가는 이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치료요, 어린아이들이 물 긷는 일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은총이기도 하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쓰여진 만큼 소설이라기보다 다큐에 가까운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더더욱 가슴이 아팠던 수단의 현실.
검은색과 갈색의 활자를 교차해가며 살바와 니아의 삶을 소개한 작가의 의도는 두 아이들이 겪은 각각의 절망적인 상황이 하나의 희망으로 합쳐지는 마지막 장에서 확인된다.
우리가 절망이라고 부르는 메마른 땅 아프리카에도 우물이 솟아나고, 학교가 지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한, 절망은 결코 깊게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한 방울의 물이 귀히 여겨지는 이곳에 우물보다 더 큰 희망의 샘물이 솟아날 수 있도록 지구 곳곳의 관심과 지원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