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고양이
이용한 지음 / 꿈의지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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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지대하지만, 지금 좀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중이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던 고양이에 대한 나쁜 괴소문들과는 상관없이, 이젠 고양이란 동물이 많이 친근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장 큰 이유가 '고양이의 사랑스러움과 엉뚱함을 알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고양이>의 작가인 이용한은 그 알리는 사람 중 1명이고 말이다. 

이전에 서평을 남겼던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를 비롯, 이용한 작가는 여행하면서 만난 우리나라 어느 곳의 길고양이, 해외의 길고양이 등, 길 위에서 어찌보면 위태롭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고양이의 모습을 꾸준히 다뤄왔다. 또한 그의 SNS엔 지금도 길고양이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사실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의 고양이들도 마당고양이었으니 반은 집고양이였지만, 이번 <당신에게 고양이>는 길고양이였다가 완전하게 집고양이가 된 고양이들과의 동거 이야기를 그렸다. 새롭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고양이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책은 캣대디 1년차에 작가가 겪은 '랭보의 간택'부터 시작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며 알게 된 '노란새댁' 고양이의 아깽이들 중 하나인 랭보를 집에 들이게 된 계기를 적어놓았다. 가끔씩 길고양이들이 '널 내 집사로 선택한다!'는 뉘앙스로 사람을 졸졸 따라다닐 때가 있다는데, 이럴 땐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집사가 된다고 한다. 일명 '간택당한다'고 하는 경우인데, 작가도 그러한 경우다. 그렇게 작가의 집에 살게 된 '랭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이나 작가와 함께 살고 있는 할매묘다. 그 뒤로 시작은 탁묘였으나 결국 눌러 살게 된 지금은 고양이별로 떠난 '랭이', 랭보와 랭이 사이에서 태어난 '체'와 '루'(이름 뜻은 '체 게바라'와 릴케와 니체의 연인인 '루 살로메'에서 따왔다), 체와 루 사이에서 태어난(!) '니코'(이번엔 '니코스 카잔차키스'에서 빌려왔다), 생강나무 아래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구조해 온 '생강'이까지. 총 6마리의 고양이와 지지고 볶고 했던 10년의 시간들이 책에 담겨있다.

한번은 아내가 헐레벌떡 나에게 뛰어오더니 랭이가 방금 자기한테 '누나'라고 했다며 볼이 발개져서 말했다. 그러더니 직접 들어보라며 랭이를 불렀다. "봐봐, 방금 누나~아,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냐앙~!'하는 고양이의 일반적인 울음이었다. "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 (69쪽) 

봉지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내가 가스레인지에 물주전자를 올려놓으면 어떻게 알고 물이 끓을 즈음 나한테 와서는 야옹야옹 물이 다 끓었다옹, 하면서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이 하도 신기하고 대견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우리집 고양이 랭보는 커피물이 끓으면 나에게 와서 야옹야옹 알려준다"고 자랑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왜 커피도 타온다고 그러지."라면서 놀리곤 했다. (85쪽)

책 속엔 이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가 부부도 고양이들만큼 귀여워서 읽는 내내 웃음이 삐져 나왔다. 더불어 고양이의 믿지 못할 행동들, 고양이와 박스와의 상관관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등의 작가의 고양이 관찰기(?)도 담겼다. 또한 집 나간 랭이 구출기, 정신없었던 체와 루 탄생기, 어느날의 냥줍, 거실 사파리의 우다다, 소소한 벽지뜯기 등 작가네 여섯 집고양이 이야기(물론 이녀석들이 쳤던 수많은 사고 이야기)도 글 속에 담겼다. 되게 개인적이고 사소하지만 읽고 있자면 즐겁다.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은 이렇게나 정신없고 유쾌하다. (물론 고양이야 언제나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입양 그로인한 유기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책 속엔 예전처럼 고양이 사진들이 가득하다. 사실 이용한 작가는 '고양이 사진'으로도 유명한데,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하는 의아한 사진도 나오는 것이다.(155쪽)"란 작가의 말처럼,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담뿍 담아낸 사진들 속 고양이들은 천진하고 정신없다.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엄마미소를 짓게 된다. 어릴때의 랭보와 랭이,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일으키던 다 큰 랭보와 랭이, 체와 루의 눈도 못 뜨던 생후 며칠 후의 시절, 우다다를 미친듯이 해서 온 집안을 난장판 만들어 놓던 체와 루의 모습들, 니코의 생후 곧바로의 사진은 없지만(작가 부부의 출산과 책 출간마감이 겹쳐 신경쓸 수 없었다 한다.) 조금 자란 후의 노랑노랑한 모습까지. 한 고양이의 어렸을 때부터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를 볼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인데, <당신에게 고양이>에서 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저 고양이가 좋아서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319쪽)
<당신에게 고양이>는 고양이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작가의 이 말들로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이냐 묻는다면 글쎄요,라 답하겠지만, 다시 돌아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할거냐 묻는다면 당연하죠라 답할 고양이주의자가 쓴 책. 고양이의 평생을 지켜봤다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고양이의 평생을 지켜볼 각오가 되어 있는 집사의 책. 이들의 행복한 동거생활을 지켜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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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손그림 - 색연필로 만나는 작고 소소한 일상 일러스트
신은영 지음 / 책밥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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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이 가득한 내 독서활동 중, 그나마 내가 관심을 가지는 취미 분야는 손그림과 손글씨가 유일하다. 원래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손그림과 손글씨는 간단하게 펜과 종이만 있으면 돼서 더 선호한다. 캘리그라피를 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손글씨는 귀여운 편이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력일지라도 무언가를 곧잘 따라 그리는 편이다. 그러니까 웬만큼 하니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고나 할까. 좀 더 슥슥 잘 그렸으면 좋겠고 잘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 내가 책을 보는 이유는 그런 이유다. 

쉽게 그릴 수 있는 것, 작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 아기자기하게 꾸밈을 돕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예쁜 것. 손그림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무엇보다 많은 책들이 '쉽다'에 중점을 두기에 책에 소개된 모든 것들이 전혀 어려워보이지 않지만, 막상 따라해보면 어려워서 스타일이 뭉개져버리기 일쑤. 밸런스가 망가지는 걸 보면서 매번 뼈저리게 느낀다. 아, 역시 센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그림이었지, 하고. 그래도 관심이 가는 분야기에 또다시 책을 들었다.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봐야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일단 책이 예뻤거든.

<1일 1손그림>은 출판사 책밥의 '하루 시리즈' 중 하나다. '일상이 예술이 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드로잉, 스케치, 캘리그라피,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 이어 등장했다. 다른 시리즈들의 준비물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1일 1손그림>은 손그림을 색연필만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지점이 이 지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거창한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어디서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게다가 작가는 밑그림 없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어서 기존의 손그림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선이 없어도 깔끔하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일상생활 속 주변의 여러 물건들의 특징을 잘 잡아내 단순화해 그린다. 단순하지만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아 신기하다. 사물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초보자에겐 어려운 주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마따나 그림이 단순해진다고 멋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색을 쓰지 않아도 세련돼 보일 수 있으니, 손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단순화 작업'은 꼭 필요한 듯 싶었다. 또 밑그림없이 그려 나가면서 선과 면을 함께 사용해 단순한 그림에 느낌을 달리 주는 방법 또한 작가의 스타일 중 하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색을 미리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작가의 아주 작은 팁!

작가의 손그림은 특이하게도, 한 장의 종이에 작은 그림을 여러개 몰아 넣어 그리면 패턴이 된다. 패턴은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손수건, 마스킹 테이프 등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패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중앙부터 그림을 채워나가는 게 작가의 팁이던데,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적힌 책을 보며 '이게 가능한 걸까?'란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그래도 패턴이 여기저기 쓰인 모습을 보니 책 속의 예시를 활용해 패턴을 만들어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손그림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 가능한 일일테지만 말이다.)

작가는 사물을 단순하게 그려내지만, 기본적인 디테일까지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아기자기해 보이고, 그래서 더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부터 작게 시작해봐야지 했는데, 내 성격상 그리다보니 크게크게 그려져서 그리면서도 조금 당황.. 당장 만족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책을 보면서 밑그림 없이 그려본 데 의의를 뒀다. 색연필의 두께가 조금은 얇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색의 조합이 내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걸 깨달았으며, 조금만 연습하면 퍽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려낼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약간 발견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비슷하게 그려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건데, 책 속 순서대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예시와 묘하게 달라졌을 땐, 될대로 되라 싶었다. 빈 틈에 내 나름대로 더 채워넣기를 여러번. 그림 센스가 없으니 이번에도 망쳤나 싶었는데, 또 사진을 찍어보니 괜찮아서 퍽 다행이었다. 왜인지 여러 번 그리다 보면 '내 스타일'도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작가의 밸런스와 아기자기함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한 발 내딛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아기자기함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1일 1손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아기자기한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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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이 사는 집에 사네
박혜수 지음, 전갑배 그림, 한성자 감수 / 마리서사(마리書舍)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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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날씨는 여름의 한 가운데로 접어들면서 더위를 가득 머금었다. 더워도 너무 덥다. 그래서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몸도 빨리 지치는 느낌이다. 몸이 흐르는 땀 양과 비례해서 급속도로 방전되는 느낌. 그런데 지치는 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인가 보다. 평소라면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대수롭지 않은 말들로 치부할 것들이 상처가 되어 내게로 꽂히는 걸 보면 말이다. 예를 들면 날씨가 더우니 나는 행여 말이 뾰족하게 나가진 않을까 많이 신경쓰는데, 상대방쪽에서 무례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짜증을 담아 이야기할 때 같은. 세상살이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마음은 실체가 없다. 다친다는 것도 은유적 표현일 뿐, 직접적으로 상처가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로 더 심하게 앓는다. 더러는 그 상처로 평생을 아파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의지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건 완전한 허상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많은 이들이 마음 때문에 아파할 리 없으니까. <사람은 마음이 사는 집에 사네>는 이제껏 내가 이야기 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의 아이 취급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시간이 흘러 어른의 대열에 끼게 되면 그 시간대에 맞게 성장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스럽고 어지러운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깊숙이 어른의 시간대로 밀려들어 가면서도 사실은 한 번도 어른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늘 당황스럽고 힘들었습니다. (14쪽)


작가는 '들어서며'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어찌저찌 떠밀려 어른의 시간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누구나 마음 속엔 다 자라지 않은 소년 소녀가 살고 있음을 짚어낸 것이다. 그리고 마음과 현실의 괴리로 우울할 때 자신을 일으켜세워준 불경과 시경의 글귀로 사람들 또한 위로 받기를 소망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음이 사는 집에 사네>는 마음위로 시화집이다.

솔직히 나는 그림이 어렵다. 누가 어떻게 이해하면 된다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의미 해석조차 할 수 없다. 책에 실린 전갑배 화백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전 화백이 어떤 의미를 그림에 심어두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책 속의 그 그림들이 내게로 직접 와 닿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 속 따스하게 웃는 이들은 무언가 충만해보이기도 했고, 기울거나 망가진 집들은 누군가의 마음이겠거니 했으며, 유독 집과 관련된 그림이 많은 건 작가가 전 화백의 그림에서 '마음이 사는 집'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랑도 기쁨도 고뇌와 다툼도 모두 마음의 집에 잠시 피었다 사그라지는 한바탕의 춤사위.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마음이 주인이 되어 세상을 움직입니다. -법구비유경 제9 쌍요품 (32쪽)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기 때문.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탐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설대생의경 (74쪽)


책 속에 담긴 글 속엔 오래된 지혜가 담겨 있다. 그러니 누가 읽더라도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읽으면서 '누가 이걸 모르냐?'라고 속으로 되묻다가, 순간 아! 했다. 오래 전부터 사람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는 것. 그 고민은 예전부터 내가 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 고민의 해답은 FM으로 딱 떨어지지 않음에도 딱 떨어지는 해답을 찾고 있다는 것. 결국 그 해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 작가는 오래 전에 마음에 대한 답들을 적어놓으며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은 예전에도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 마음이 사는 집은 얼마나 클까. 그리 크지는 않아도 튼튼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준 상처에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단단한 벽을 가진. 그리고 그 마음집에 사는 나는 슬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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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차의 캘리툰
박솔빛 지음 / 경향BP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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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카툰과 캘리가 만났다니까 쉽게 볼 수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요즘엔 이런 저런 생각 할 필요없이 그냥 가볍게 책을 읽고 싶었다. 밖에 나가지 않는 이상 집안은 더우니까(에어컨은 전기세가 감당 안돼!). 뭐 내가 좋아하지 않고 꼭 녹아버릴 것 같은 그런 계절이 돌아온 탓이다. 그래서 그 가벼움에 어울릴 것 같은 책이라 선택했다. 왜인지 그림체가 낯이 익었고, 그림체가 퍽 귀여웠으며, 캘리그라피까지 함께 있다고 하니 이 어찌 좋지 않으랴.

<비차의 캘리툰>은 '비차'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솔빛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거기엔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작가의 캐릭터, 그 위에 덧붙여진 말풍선, 주변에 쓰여진 캘리그라피,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주욱 연결되는 꽤 긴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참 일상적인 이야기가 적혀 있어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도 든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후배, 채소 그득한 식탁, 모기를 잡아보자, 자신과 닮은 친구, 귀여운 아빠, 졸업, 길치, 좋아하는 노란색, 잘 꺼지는 쥐삼냥육 핸드폰, 수업시간, 기말고사, 시험,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 어렸을 때 키웠던 꼬꼬 이야기 등등 일상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내게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나 자신의 행복'이다. 그러니 바람 빠지는 웃음만을 선사하는 한없이 가벼운 내용들만 있는 건 아니란 소리다. 고등학교때 겪었던 남자학우의 언어폭력을 문득 떠올리면서 했던 생각을 담담히 써내려가며 '그 상처에 지지 않고 지금, 여기, 꿋꿋한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지(85쪽)'라고 이야기 한다. 손목에 잔뜩 상처를 가졌던 옛 친구에게 '너를 아껴. 내가 아끼는 너를 네가 아꼈으면 좋겠어(113쪽)'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수능을 준비하며 틈틈히 우울했던 기억에 대해선 '지금 네 노력이 보잘 것 없다는 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166쪽)'라며 과거의 자신에게 글을 쓰기도 했다. YOLO에 대한 생각이나 촛불을 들었던 이유, 살충제계란이나 생리대 파문 등등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작가가 청춘이니 청춘다운 고민도 들어 있다. 어버이날 선물을 사들고 내려가지 못하면서 전화로 거짓말을 하는 청춘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거짓말이 익숙해진다(15쪽)', 진로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청춘의 고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쏟아내기 두렵다(345쪽)' 같은 것들. 그 사이사이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같이 자신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들도 함께 들어 있다. 비록 무거운 이야기지만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들 사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그리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내내 무거운 느낌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비차의 캘리툰> 속엔 작가 비차의 생각이 가득하다. 그 생각에 동의를 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고민이 누군가의 고민과 비슷하다는 걸 느낄 때 묘한 안심을 하게 되거든. 귀여운 그림들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진중하지만 무겁지 않다. 행복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은 즐겁기도 하면서 현실 속 우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가볍기를 기대했지만 가볍지 않아 좋았던. 비차 작가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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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잡학사전 - 우리말 속뜻 사전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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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의 역사를 지나온 한반도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썼다. 우리의 소리를 표현할 우리만의 문자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우리는 한글보다는 한자를 더 자주 썼다. 사대부의 말도 안되는 억지 덕분이었는데, 뭐 자세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한글이 만들어진 후에도 사용할만큼 오래토록 써 온 한자투는, 완전히 한글로 글을 쓰고 이해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 등으로 남은 일본어의 잔재 또한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호구'라는 단어가 있다. '호구+고객'이라는 합성어 '호갱'이란 단어도 이제는 모르는 이 없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여러가지 변형도 하고 참 익숙한 단어인 '호구'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뉘앙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인이나 혹은 어린 아이들이 뜻을 물어본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찾아보면 우리주변엔 이런 류의 단어들이 많다. 익숙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일상생활에서는 딱히 필요없는 것. 이런 단어들의 속뜻을 알려주는 책이 여기 있다. 바로 <우리말잡학사전>이다. 

위에서 언급한 '호구'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호구(虎口)는 글자 그대로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지만, 그보다는 바둑 용어로 널리 쓰인다. 바둑에서 얘기하는 호구란 상대편 바둑 석 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 형국을 가리킨다. 그 속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말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상대방의 먹잇감이나 이용감이 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쓴다 해도 비어나 속어의 느낌으로 쓰고 있다. (511쪽) (책은 이보다 조금 길지만 서평이니 아주 살짝 요약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호구'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하고 있다. 바둑 용어라는 이야기도 아래쪽에 함께 설명하고 있긴 한데, 사전으로만 뜻을 찾아본 사람들은 호구라는 단어가 바둑 용어에서 유래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결되어 생각하지 않던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 <우리말잡학사전>이 다른 사전들보다 특별하게 갖고 있는 색다른 지점이다.

책 속에는 총 1045개의 단어가 담겨 있다. 본뜻이라는 부분에는 어원을 비롯, 단어의 유래와 바뀌기 전에 쓰였던 뜻을 담았고, 바뀐 뜻에는 현재 쓰이는 통상적 뜻을 담았다. 예시도 2개씩은 적어두어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책은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순우리말부터 합성어, 한자어, 고사성어, 관용구, 일본에서 온 말, 외래어에 은어까지. 찾아보기는 단어를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일단 책을 읽기 전에 찾아보기에서 단어들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순우리말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얼른 단어 옆에 적힌 페이지로 달려가 이유를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대꾸하다, 서울, 스승, 앙갚음, 황소가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한자어와 우리말을 함께 쓰면서 생기는 동어반복 글자(기간이라는 한자와 동안이라는 우리말이 합해진 '기간동안'. '~기간에' 혹은 '~동안' 둘 중 하나만 적어야 한다.)라든지,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자어('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할 때의 '심심'이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심심하다'의 뜻이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가 매우 깊음을 일컫는다.)라든지, 잘못 쓰고 있는 한자어('우이를 잡다'의 경우 어원을 잘 몰라 '우위'로 잘못 쓰이기도 한다.) 등등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뀐 뜻을 설명하면서 함께 적어놓는다. <우리말잡학사전>이 잘못 알았던 말이나 뜻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로 우리 생각을 표현해보자는 희망을 담아' <우리말잡학사전>을 펴냈다. 처음 발간한 지는 햇수로 22년, 3번의 증보판으로 26쇄나 찍었다. 그리고 2018년 4번째 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글을 좀 더 제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책 속에 그득그득 담겨 있다. 1000개가 넘는 단어가 담겨 있는데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몰라도 상관 없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잡학사전> 속 우리말들. 정말 사전처럼 곁에 두고 손때를 잔뜩 묻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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