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속뜻 사전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5000년의 역사를 지나온 한반도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썼다. 우리의 소리를 표현할 우리만의 문자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우리는 한글보다는 한자를 더 자주 썼다. 사대부의 말도 안되는 억지 덕분이었는데, 뭐 자세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한글이 만들어진 후에도 사용할만큼 오래토록 써 온 한자투는, 완전히 한글로 글을 쓰고 이해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 등으로 남은 일본어의 잔재 또한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호구'라는 단어가 있다. '호구+고객'이라는 합성어 '호갱'이란 단어도 이제는 모르는 이 없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여러가지 변형도 하고 참 익숙한 단어인 '호구'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뉘앙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인이나 혹은 어린 아이들이 뜻을 물어본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찾아보면 우리주변엔 이런 류의 단어들이 많다. 익숙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일상생활에서는 딱히 필요없는 것. 이런 단어들의 속뜻을 알려주는 책이 여기 있다. 바로 <우리말잡학사전>이다. 

위에서 언급한 '호구'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호구(虎口)는 글자 그대로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지만, 그보다는 바둑 용어로 널리 쓰인다. 바둑에서 얘기하는 호구란 상대편 바둑 석 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 형국을 가리킨다. 그 속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말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상대방의 먹잇감이나 이용감이 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쓴다 해도 비어나 속어의 느낌으로 쓰고 있다. (511쪽) (책은 이보다 조금 길지만 서평이니 아주 살짝 요약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호구'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하고 있다. 바둑 용어라는 이야기도 아래쪽에 함께 설명하고 있긴 한데, 사전으로만 뜻을 찾아본 사람들은 호구라는 단어가 바둑 용어에서 유래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결되어 생각하지 않던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 <우리말잡학사전>이 다른 사전들보다 특별하게 갖고 있는 색다른 지점이다.

책 속에는 총 1045개의 단어가 담겨 있다. 본뜻이라는 부분에는 어원을 비롯, 단어의 유래와 바뀌기 전에 쓰였던 뜻을 담았고, 바뀐 뜻에는 현재 쓰이는 통상적 뜻을 담았다. 예시도 2개씩은 적어두어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책은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순우리말부터 합성어, 한자어, 고사성어, 관용구, 일본에서 온 말, 외래어에 은어까지. 찾아보기는 단어를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일단 책을 읽기 전에 찾아보기에서 단어들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순우리말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얼른 단어 옆에 적힌 페이지로 달려가 이유를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대꾸하다, 서울, 스승, 앙갚음, 황소가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한자어와 우리말을 함께 쓰면서 생기는 동어반복 글자(기간이라는 한자와 동안이라는 우리말이 합해진 '기간동안'. '~기간에' 혹은 '~동안' 둘 중 하나만 적어야 한다.)라든지,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자어('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할 때의 '심심'이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심심하다'의 뜻이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가 매우 깊음을 일컫는다.)라든지, 잘못 쓰고 있는 한자어('우이를 잡다'의 경우 어원을 잘 몰라 '우위'로 잘못 쓰이기도 한다.) 등등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뀐 뜻을 설명하면서 함께 적어놓는다. <우리말잡학사전>이 잘못 알았던 말이나 뜻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로 우리 생각을 표현해보자는 희망을 담아' <우리말잡학사전>을 펴냈다. 처음 발간한 지는 햇수로 22년, 3번의 증보판으로 26쇄나 찍었다. 그리고 2018년 4번째 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글을 좀 더 제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책 속에 그득그득 담겨 있다. 1000개가 넘는 단어가 담겨 있는데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몰라도 상관 없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잡학사전> 속 우리말들. 정말 사전처럼 곁에 두고 손때를 잔뜩 묻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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