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날씨 -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반기성 지음 / 꿈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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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소리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TV를 켠다. 아침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의 말소리를 한귀로 흘려버리며 한쪽 구석에 계속 깜빡이는 온도와 날씨모양 아이콘을 확인한다.(전 지역의 날씨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하기에 눈을 제대로 안 뜬 상태에서 확인하면 깜빡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비가 오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네, 아 오늘은 덥겠다, 뭐 벌써부터 영하야? 눈오는데 미끄럽겠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기 전 정신을 깨우면서 오늘의 날씨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은 뭐 입고 가지? 우산을 들고 가야 하나 놓고 가나, 마스크를 챙겨갈까? 귀찮은데 그냥 나갈까? 이런 생각들로 이어진다.

내 아침 시간은 거의 이렇다. 날씨와 기온을 확인하고 핸드폰 날씨 어플에서 초미세먼지 예보까지 확인한다.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으면 잊어먹기 전에 우산부터 가방 옆에 가져다 놓고, 온도에 맞춰 오늘 입을 옷들을 대충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하루의 시작이 '날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나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이렇게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도 날씨에 대해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예보는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정작 날씨에 대해 뭔가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시중에 날씨 관련 교양책을 본 적도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날씨>라는 책을 봤을 때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전문가처럼 많이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얼만큼의 지식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최소한의 날씨>의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이렇게 밝힌다. "기상예보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기과학 외에도 수학, 물리학, 역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과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최고의 과학자를 기상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도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날씨도 과학이라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났다. 대기권과 대류권과 성층권과 열권과 수증기와 공기와 푄바람과 기타 등등. <최소한의 날씨>의 첫번째 파트는 방금 전에 언급했던 지구과학 교과서적 모멘트가 등장한다. 예전에 읽었던 교과서보다 더 쉬운 언어로 쓰여 있는 느낌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함께 실려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있게끔 만든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들의 기본을 다져두는 부분인지라, 대충 읽고 넘어간다면 뒤쪽을 읽을 때 자주 앞으로 되돌아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을 만들기 싫다면 '날씨과학의 비밀'이라 이름 붙여진 첫번째 파트는 빠짐없이 읽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두번째 파트부터는 본격적인 날씨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기후 특징이나 지구 온난화 같이 현재 지구의 기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런 변화가 계속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과거의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놓았다.(물론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들도 하고 있다.) 또한 과거 기후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 기후 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만큼인지 피부로 닿을만큼은 아니지만 확 체감이 되도록 설명해놓았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까지의 파트에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내가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공기의 종말, 에어포칼립스가 다가온다'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부분이었다. 제목이 꽤나 거창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뜨거운 초미세먼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에어포칼립스는 공기(air)와 종말(apocalypse)의 신조어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정의, 미세먼지와 기후와의 관계, 미세먼지로 발생하는 질환 등을 조금이나마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인상깊었다. 내 관심사가 이쪽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6쪽밖에 안되는 분량이어도 퍽 알찼다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최소한의 날씨>는 하나의 파트 아래 대여섯개의 제목으로, 하나의 제목 아래 네다섯개의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제목 하나의 분량은 10쪽 안팎이고, 작은 이야기들의 분량은 채 1쪽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후르륵 읽어내기 편하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라는 시리즈의 모토에 맞춰 최대한 쉽게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날씨, 그러니까 기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들어본 적 없이 생소하거나, 들어본 적 있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책을 읽어가면서 새로운 이슈들을 접하게 되고, 보다 확실히 지식을 습득하는 느낌이 든다. 인류세(1700년대 후반 이후의 지질학적 시대를 뜻하는 단어. 파울 크뤼천 교수)라든가, 애그플레이션(식량 인플레이션)이라든가, 녹색황금(녹조라테라고 이름붙였던 녹조현상의 주범인 미세조류가 에너지 문제 해결책이로 주목받고 있다)이라든가.

<최소한의 날씨>는 기후(날씨)와 관련된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부정적 이야기를 가감없이 실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기후 변화들이 가져올 가장 끔찍한 이야기들을 미리 일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개인이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관련 뉴스나 이슈를 봤을 때 몰라서 스킵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테니 그것으로 조금의 위안을 삼기로 했다. 왜인지 기후 관련 뉴스를 더 열심히 찾아볼 것 같은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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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속 코어 그래머 - 10분 안에 끝내는 초스피드 영문법
김대만.신민영.장진우 지음 / 새로운제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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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인터넷에 부유하는 많은 정보에 접근하기는 쉬워졌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콕 집어내기는 어려워졌다. 그렇게 많이 본 것 같지도 않은데 하루에 눈에 담은 글자 수만 수만자에 달할 때도 있다. (물론 친구들과 하는 시시콜콜 잡담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눈에 너무 많은 글들을 담기 싫어진다. 좀 쉽게 빨리 읽히는 것들을 선호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카드뉴스 같은 것.

카드뉴스는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형태다. 짧은 글과 이미지만 있어 가독성이 좋고 잘 읽힌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에 딱 박히는 강렬한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내가 왜 책 서평에서 카드뉴스에 대해 이야기하냐면, 내가 읽은 <10배속 코어 그래머>란 영어책이 바로 이 카드뉴스를 전격적으로 사용한 책이기 때문이다.

"각 파트는 문법과 예문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만 한 장의 카드로 담는 '카드뉴스' 방식을 띠고 있습니다. 복잡하지 않게 핵심만 반복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저자들이 개발한 공부 노하우입니다." 프롤로그에 적힌 저자들의 책 설명이다. 그러니까 <10배속 코어 그래머>는 카드뉴스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한 페이지엔 카드가 두개씩 등장하고, 하나의 카드엔 하나의 질문만 등장하는 게 룰이다. 가끔은 한 페이지에 하나의 커다란 카드만 등장하기도 한다. 카드엔 번호가 등장하고, 책에는 총 215개의 카드가 존재한다.  모든 설명은 아주 간결한데 기본적으로 알아듣기 어렵지는 않다. (우리는 초중고 12년과 대학교 4년동안 영어공부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것들이 되게 쉽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뜬구름 잡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명사로 예를 들어볼까. 명사란? 사람, 사물, 추상적 개념의 이름. 대명사란? 명사를 대신하는 말. 뭐 이런 식이다. 이거 되게 쉬운데?란 생각이 들 때쯤 아사무사(?)한 부분이 등장한다. part.2가 문장 형식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2형식이란? '~는'의 자리를 동사 뒤에서 '명사'나 '형용사'로 보충 설명해주는 형태. 감각동사 뒤에 오는 품사는? 형용사. 감각동사 뒤에 명사가 오려면? 감각동사 뒤에 like를 붙인다. 분명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로 풀어놓으니 정리가 되는 듯, 오히려 어려운 듯 느껴진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문들이 친절하게 뒤쪽 카드뉴스에 정리되어 있으니, 카드뉴스 하나씩 개념을 잘 정리하면 된다.

쉽다고 느껴지는 건 품사 부분이 고작이다. 문장 형식 다음은 준동사(to 부정사. ~ing, 동사 3단변화, 현재완료p.p가 등장한다), 절과 접속사(that절, when절 등등), 전치사(for, as, by 등등)까지 학교 다닐때 머리 싸맸던 부분들이 연속으로 등장한다. 이 부분을 모두 지나가면 다시 조금 쉬워지는 문장 유형이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책은 끝이 난다. 사실 읽으면서 어? 아는 건데? 근데 뭐였더라? 자꾸 생각하게 됐다. 분명히 알고 있고 알았던 건데 말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니까 명확하게 개념을 이야기할 만큼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확실히 이렇게 개념을 잡아두면 나중에 다시 영어 관련 책을 읽더라도 헤매지 않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학교와 조금 멀어졌다고 요즘 말하기 관련, 조금 더 편하고 쉽게 말하기 위한 영어책들만 읽었었다. 궁금증에 서평단에 신청해 학습 관련 책을 읽으니 그동안 나는 무얼 공부했나 싶고, 이렇게 쉽게 희미해질 공부였나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말하기는 잠시 미뤄두고 <10배속 코어 그래머>를 조금씩 공부하려고 한다. 읽어내는 것은 금방이니, 그 카드들 하나하나를 제대로 각인해 둘때까지 여러번 읽어내야지.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카드들이 통째로 각인되겠지. 쉽게 잊히지만 않아도 성공이다. 최소의 시간을 투자해서 최대의 효과를 본다. 저자들이 밝힌 이 책의 모토다. 나에게도 적용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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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빈 공간 - 영혼의 허기와 삶의 열정을 채우는 조선희의 사진 그리고 글
조선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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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은 여전히 20대다. 언제나 20대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아직 20대인 내가 좋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하나씩 채워가는 일이 좋다. (6쪽)
프롤로그에 적힌 글이다. '사진작가 조선희'라는 내가 가진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문장들이기도 했다. 언제나 파이팅 넘치고, 큰 목소리로 촬영장을 이끌어나가며, 앞에 있는 모델(배우)의 컨디션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일을 함에 있어선 열정적인. 앞으로의 글들도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했다. 자신감 충만하고 자기애 가득한 글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을까. 

결국 찍는 순간에는 혼자다. 세상 일의 대부분이 이렇다. (30쪽)
하지만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그건 내가 가진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을 보여지는 면만으로 판단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면 속 그 사람은 보여지는 것과는 딴 판 일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작가의 이미지를 싹 지워버리기로 했다. 본래 작가를 따져서 읽는 편은 아니라 작가를 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온 적은 없었는데, 본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내 눈을 가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의 빈 공간>이라는 책은 조선희 작가가 직접 찍고 쓴 책이다. 일단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 이야기부터 해 볼까. 지금껏 그녀가 찍어왔던 사진들처럼 색감이 좋고, 구도가 예쁘고, 대상이 오롯하게 찍힌 사진들이 책에 한가득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찍었던 사진들의 찐함을 좋아하는 편인데, 외려허한 느낌이 드는 사진들도 많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국적 느낌이 가득한 사진들은 따로 사진집을 보지 않는 나로서는 뭔가 공부가 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사진은 많이 볼수록 잘 찍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전문적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도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욕심은 갖고 있으니,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막의 광활한 밤하늘이라든가, 자작나무가 가득한 설원이라든가,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묘지라든가, 나와는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어느 누군가의 눈이라든가.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과 사람들, 사물들이 글보다 더 다가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글이 나쁜가하면 그건 또 아니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생각이 담기기도 했고,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얼마나 덜 잃느냐가 문제야. 그 말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덜 잃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얻거나 잃거나, 둘 중 하나. 그런데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덜 한다는 것, 더 한다는 것. 그런 간단한 명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왔네.(172쪽)
에세이 형식으로 주욱 이어 쓴 글도 있었고, 아주 짧은 글도 있었다. 메모를 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짧은 글들에서 와 닿는 내용들이 더 많았다. 그 짧은 와중에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 글들이 그리 길지 않아 읽기 수월했다. 사진과 함께 감상하면 금상첨화이니, 책을 휘리릭 읽어내는 것보다는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이렇게 좋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마른 꽃들이 내게 말을 걸면, 그 시간과 나는 친구가 된다. (93쪽)
생이란 순간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밑바닥에서 가진 것 없었으나 꿈꾸던 나와 너무 많이 가졌으나 불안에 가득 찬 내가. (98쪽)

책을 덮을 때쯤 쓰여있는 이야기에는 어딘가로 또 떠나야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담겨있다. 작가는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려 또 어딘가로 떠난다. 그것이 작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란다. 내 마음 속 빈 공간에는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꾹꾹 눌러담은 <내 마음의 빈 공간>을 보며 나는 내 빈 공간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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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건너다
홍승연 지음 / 달그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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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건너다>라는 제목을 보고 선택했는데, 정작 책을 받아보고 나니 제목 아래 있는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조차 알 수 없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인, 빨간색 표지 위 동그마니 인영 하나. (인영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정확히 인간인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발밑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함께 있지만 왜인지 쓸쓸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책을 한참 바라보고만 있으니 엄마가 묻는다. "오늘은 무슨 책이야?" "오늘? 이거 그림책." 빨갛고 얇은 책이 엄마 눈에도 특이하게 보였나보다. "다 커서 무슨 그림책이야?" "그러게." 나는 이 책을 왜 읽고 싶었더라.




<슬픔을 건너다>라는 다소 무거운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책은, 사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아니다. 세상사에 아직 발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슬픔'을 제대로 인지한다는 건 말도 안되니, 이 그림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까진 이 그림책이 어떤 책인지 감이 잘 잡히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이 따로 없는 책의 특성상, 마지막 페이지 작가 소개란에 적힌 몇 줄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다소 어둡고 깊은 메시지를 담은 <슬픔을 건너다>를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연이어 잃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이 책을 작업했고, 다시 작고 소중한 경험들을 모으며 살고 있습니다."

채 열 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글들이 그림들 사이에 적혀 있었다. 사실 글만 놓고 봤을 땐, 어딘가에서 비슷한 느낌의 글을 읽어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네가, 우리가 겪었던 흔한 아픔과 익숙한 위로. 특별하다기보다는 평범하기 때문에 처음 글만 휘리릭 읽어나갔을 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앞의 그 마음이 깡그리 잊혀졌다. 흔한? 익숙한?아니, 익숙하기는커녕 오히려 특별한 책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바로 그림 때문이다.




앞서 표지에서 이야기 했었던 그 쓸쓸했던 인영. 그 심상찮은 인영이 등장하는 그림들과 함께 했을 때부터 그 흔하다 생각했던 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들은 한 가지의 명확한 목표성을 가졌다기보다는 뭔가 상황이 복합적으로 뭉뚱그려진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림을 보면 여러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면서 옆에 적힌 글을 그림과 함께 읽으면 왜인지 그 짧은 글 속에 또 다른 의미가 담기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적힌 문장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한데, 당연하게도 다른 문장들이 떠오르는. 글도 그림도 추상적이다. 그래서 독자의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다분히 작가의 고의성이 느껴졌다. 그것이 좋았다.

'누구나 말하지 못한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거예요'였던가. 예전 어떤 드라마에서 패러디로 자주 쓰였던 대사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던 기억.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치는데도 계속 늪으로 빠져들었던 순간. 나만 아는 비밀스런 기억들이 작가의 글과 그림과 합쳐져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잊고 있었던 묻어두었던 상처가 불쑥 솟았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불쑥 솟고 해결점이 없었다면 그림책의 제목이 <슬픔을 건너다>가 되지는 않았을 터. 빨간 작은 새가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 




당연하게도 앞부분보다 밝은 색채가 쓰였고, 그 쓸쓸했던 인영도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뾰족뾰족하고 날카롭고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분위기가 빨갛고 푸르고 하얀 배경들과 만나 동글동글해졌다. 뭔가 긴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드는 후반부는 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눈 코 입도 없는 인영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는 건 그저 내 착각만은 아닐테다. 결국 그 인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그 인영 자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결론이다.(이렇게 얘기하면 스포는 아니겠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슬픔을 건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슬픔도 조금씩 무뎌진다. 물론 슬픔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이 없다면 영원히 그 곳에 침잠하겠지만,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 해도 예전만큼의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림책은 그것을 알려준다. 그래도 슬픔에 빠졌던 그때와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뭔가 조금 더 단단해지지는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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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 - 필사로 완성하는 글쓰기 감각
유나경 지음 / 모들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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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나의 글쓰기>라는 글쓰기 책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달에도 글쓰기 관련 책을 읽었었다. (물론 내게는 퇴고 쪽으로 아이디어를 많이 준 책이지만) 누군가는 "또 읽어?"라며 내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응. 또 읽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겠지.

큰 책방이 아니라 작은 동네 책방에서도 글쓰기 책은 쉽게 눈에 띈다. 그리고 비슷한 주제의 책이 굉장히 많을 땐 한 권의 책을 깊게 파기보다는 여러 책을 읽고 두루 참고하는 편이 좋다. 저자마다 지닌 장점과 개인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책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이니 중요도를 알기에도 좋다. 적어도 내 경우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노하우를 얻는 편이 효율이 좋았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자주 읽는 듯 하다.

이번에 읽은 <나의 글쓰기>라는 글쓰기 책은 기존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일단 필사책과 글쓰기 책의 결합이란 점이 기존 책과는 다른 부분이다. 책이라기보다는 워크북 개념이 강한데, 저자는 '필사 노트'라고 표현했다. '글쓰기 책을 읽고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보여주고 직접 따라 쓰게 구성되어'(4쪽) 있는 필사노트다.

세상 처음보는 구성이었다. 이런 구성은 예전 영문 캘리그라피 워크북에서나 본 적이 있지, 일반적인 글쓰기 책에서는 본 적이 없는 구성이라 신선했다. 적혀 있는 문장을 따라서 아래쪽 빈칸에 똑같이 채워나가면 된다. 예문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방식들을 카피하다보면 문장 구성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생각 없이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고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손으로 쓰는 필사 방법을 사용할 때 깨달음이 커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저자는 자주 문제를 낸다. 앞에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줬으니, 예시를 생각하며 문장을 만들어봐라! 라고 말이다. (이럴땐 덜렁 한 문장만 주어진다.) 거의 모든 예시 뒤엔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뒤쪽에 따로 답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 문장을 예시처럼 만들어 가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적은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누군가 판단해 줄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로 문장을 만들어보면서 예시와 비교해보면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처음 문장을 만들다보면 내 마음처럼 잘 다듬어지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같은 문장으로 다시 문장을 만들면 처음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르게 문장을 만들려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문장이 모이면 그 문장들을 보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찾는 훈련도 할 수 있다. (시간을 들이는만큼 실력은 좋아질 테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단순한 필사노트인가 싶은데, 사실 <나의 글쓰기>는 글쓰기 책의 기본적 내용을 전부 짚고 있다. 문장을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이라든지, 표현을 풍성하게 집어넣고 빼고 응용하는 법이라든지, 생략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법이라든지, 문장을 구성할 때 넣지 말아야 하는 것들(단어 반복, 너무 긴 문장)이나 문장을 고치는 방법이라든지. 기본기를 위한 챕터가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어휘의 사용과 감각적인 표현력을 위한 챕터들이 등장한다. 어떤 글이 매력적인지 설명하기도 하고, 주제를 나타내기 위한 사색이라든가 사물을 색다르게 보기 등 글을 쓸때 도움이 될만한 팁들도 여럿 적어두었다. 또한 직접 그런 글을 써 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나의 글쓰기>에 아주 깊은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고 하면 거짓말일테다. 고작 200쪽 남짓한, 빈 공간이 많은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용이 빈약한가 묻는다면 그건 또 절대 아니다. 기본적으로 담아야 할 것들을 충실히 담고 있어서다. 오히려 이 책이 원하는 방향대로 따라가다보면 조금 더 나은 글쓰기 실력을 갖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글쓰기>가 좋은 길라잡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필사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을 하고 나만의 글을 직접 써 보는 것. 이 책으로 조금 더 나은 글쓰기 실력을 갖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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