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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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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관련된 책을 보고 있자니, 내가 손편지를 써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해 보게 된다. 요즘에는 손편지의 자리를 이메일이 자리하고 있지만, 손편지와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쯤 아마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손글씨가 보기 어려워진 만큼 손편지 또한 보기 어려워졌다. 예전엔 옆에 앉은 짝꿍과 함께 쪽지를 주고 받기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한 것 같은데, 이제는 손편지를 주고 받을 사람도, 기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드에 적힌 '생일 축하한다'는 짧은 문장에도 감동 받게 되는 요즘에 이렇게나 서로를 위하는 편지를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끼리 주고 받은 편지에 이렇게나 마음이 따스해 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 권정생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서 낸 책이다.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들 가운데서 뽑아 만들었다. 책은 3가지의 시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파트 나눔에 대해서는 '왜' 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약간의 함정이라면 함정. 이오덕은 권정생이 쓴 동화를 참 좋아한 듯 싶다. 그가 많이 아픈 채인 것을 알고 있고, 그의 생활이 많이 곤궁한 것을 알고 있어 이오덕은 그런 권정생을 어떻게든 돕고 싶어한다. 73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많이 와 닿지는 않으나, 돈을 보내는 것도 '인편'으로 보내야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렇게나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선생님의 건강을 항시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건필을 빌고 있습니다. (31쪽 / 권정생  이오덕)

부디 몸 조심하시고 글 너무 쓰지 마시고 쉬시도록 바랍니다. 선생님은 좀 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58쪽 / 이오덕 → 권정생)

 

 

하지만 이들이 서로만을 알뜰히 챙기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자꾸 통속화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동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신진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역시나 같은 생각 (아동문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말이 잘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대가들도 그렇지만 신인들의 창작 자세가 거의 타락 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이준연, 권용철, 장욱순 제씨들의 작품은 시발점에서는 좋았는데, 요즘 와서 거의 통속화되어 버렸어요. 언젠가는 이분들이 부딪힌 벽을 뚫고 자기들의 바른길을 걸어갈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40쪽)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이지요. (58쪽)

 

일본 동요곡을 어엿이 표절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문학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 이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 이름으로 등장되었다 해서 어려워한다니,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72쪽)

 

요즘 저는 아동문학에서 아주 철저하고 과감한 태도로 평을 쓰고 논리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동배, 후진 할 것 없이 친소를 막론하고 쓰고 싶은 것을 써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안일 무사주의와 문단 출세주의로 흐리멍덩하게 되어 있는 우리 아동문학을 일깨워 전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중략)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는 아동문학 작가들보다 일반 문단의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 더 많이 성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84쪽)

 

시골 어린이들 중에 동화책 한 권 못 읽는 것이 90퍼센트도 넘을 것 같아요. 대체 누구를 위해 아동문학을 하고 있는지, 목적 없는 뜀박질을 하고 있는 우리가 아닌지요. (113쪽) 

 

 

하지만 역시나 편지의 대부분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만날 장소를 잡고, 어긋난 만남을 아쉬워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끊임없이 건강은 괜찮은지 묻고, 거기에 끊임없이 답을 한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해서 미안하다고. 만나는 날보다 편지를 주고 받은 날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속에서 서로 지내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구나' 확인을 받는다. 그러면서 서로 안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편지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여실히 드러난다. 감성이 짙어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쓴 편지에 대한 오해를 풀기도 하는 부분에서인데, 왜 새벽에 편지를 쓰고 아침에 읽어보면 이불킥을 하고 싶을만큼 화끈거린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기도 해 꽤 흥미로웠다.

 

 

어찌보면 단조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쁘게 보내야 했던 편지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가득하기도 했고, 어떤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도 많이 적어 두었으나 두서가 없기도 했으며, 간단하게 안부만 물어왔던 편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성은 그런 것이 아닌 듯 하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어떤 존재가 있음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 더군다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다, 마음이 잘 맞아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을 우리에게 굳이 보여주는 것은- 이 책 속에 여실히 담겨 있는 그 마음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전화를 하거나 화상통화를 하면 서로의 상태를 금방 알 수 있고, 또한 길도 많이 편해지고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없는데다, 서로 만나기로 하면 금방 핸드폰을 통해 연락이 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만 볼 수 있던 '혹시나 오셨을까 해서 정류장에 나가 기다렸습니다' 라든가, '몸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계신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라는 이야기들은 퍽 생경했다. 그리고 낯설지만 따뜻함을 느꼈다.

 

 

만나기로 약속했다가도 '아직 나오지 않았으면 오늘 보지 말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불편한 와중에도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서, 현실에서의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둘러보게 된다. 역시 생각이란 것이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모양입니다. (99쪽) 라는 권정생의 말처럼, 생각이 잘 맞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과연 내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관심과 배려, 그리고 위로를 건네는 편지를 꺼내 읽기만 해도 즐거웠을 것만 같은 이 둘의 이야기.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을 담은 몇 장을 제외하곤 따뜻한 책이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한 세상 살다 가면서 이런 사람 하나쯤 만들어 놓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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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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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고르는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단연 제목이다. 그리고 글쓰는 사람의 책은 일단 믿고 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근데 이 책은 '제목'이 <다정한 편견>이고 손홍규 작가가 쓴 책이라고 한다. 어찌 손을 뻗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실 제목부터가 생각이 많아진다. '편견'에 다정함이 속할 수 있는 것일까? 편견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선을 그어버리는 행동인데, 거기에 '다정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니까 되게 그럴싸해지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도대체 다정한 편견이란 것이 무엇일까.

 

책의 절반은 '체험'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장'인데, 저는 전자가 조금 더 좋았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글이다. 이 한 문장만큼 <다정한 편견>이라는 책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는 것 같아 적어보았다. 앞쪽의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과 2부 '선량한 물음'은 작가가 겪었던, 예전의 그 어느 날이 갑작스레 떠오르거나 잔잔하게 떠올라 쓴 글들이 대부분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글대로 작가가 겪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따뜻하다. (2부보다는 1부가 더 따뜻하다) 3부 '바느질 소리'와 4부 '다정한 편견'은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작가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글들이 주를 이뤘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작가의 생각도 있었고, 폭풍공감을 하며 읽었던 나와 비슷한 생각도 있었으며, 읽으면서 별 생각 없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어른'의 시선이 잔뜩 들어간 충고와 조언의 생각들을 마주하면서, 비록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의 생각은 이런거구나'라는 걸 느꼈다고나 해야할까.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꽤 담담하게 꺼내놓고 있는 글이었지만, 그 글 속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은 아직 내가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듯하게 느껴졌다. 글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책은 또 오랜만이었다.

 

 

<다정한 편견>의 1부의 느낌은 구수한 고향집에 잠시 다녀가는 느낌이 드는 글들이다. 대체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시절 살았던 가난하지만 정겨운 시골 고향집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따금씩 정전이 되는지라 촛불을 늘 준비해놓기도 하고, 홍시가 익을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곶감을 만들던 그런 시골 고향. 그 속에는 작가를 위해 흙탕물을 달려오신 어머니가 계시고, 짜파게티 끓이고 난 후 버리는 물도 못내 아까워 소 여물통에 쏟으려다 면발까지 같이 쏟아버린 아버지가 계신다. 작가의 어린시절이 글 하나하나에 조금씩 조각조각 나뉘어 담겨 있는데, 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싸목싸목'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다. 몇몇 울컥했던 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가의 고모가 늘 입에 붙인채 추임새처럼 넣어주던 단어라던, 내게는 꽤 생소한 단어인 '싸목싸목'. 

 

밥 한끼 베푸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대접할 게 없던 그 시절에는 밥상 한번 차려주는 것보다 더한 인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싸목싸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배가 불렀다. 바쁜 일 없으면 싸목싸목 오시게나,라고 해도 배가 불렀고 체할라, 싸목싸목 먹으렴, 이라 해도 배가 불렀다. (33쪽)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도 들어본 말이 아닌데, 작가의 고모님의 정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정이란 것이 생각보다 낯선 내 또래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생경한, 그리고 꽤 부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우산'이라는 제목의 글도 되게 좋은 글로 추천한다.

 

 

2부는 1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체험이다. 길가다가 본 어떤 이주노동자의 눈물로 말미암아 '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언어살해자라고 불리는 영어를 생각하다 말고 '진정한 언어살해는 뜻이 통하지 않는 말,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판돈'이라는 인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농민의 서글픔을 생각하기도 한다. '다음생'이라는 제목의 글은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전생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바로 전생이다. 마찬가지로 미래가 다음 생이다. 오늘 오후가 그렇고 다음날이 그렇고 다음달이 그렇다. 다음 생에서 불안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83쪽)

 

 

3부의 글은 꽤 관념적인 단어들과 관련된 사유들이었고, 4부의 글은 현재의 대한민국 혹은 정치에 대한 사유들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은 앞쪽이었으니 3,4부는 좋은 글 몇 문장을 옮겨 놓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매번 깨달음은 한 걸음씩 늦게 찾아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165쪽)

 

우리는 가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기 위해 무릎을 굽히기도 한다. 삶은 이 멈춤과 침묵 없이 해석될 수 없다. 멈추고도 멈추지 않는 것 흐르고도 흐르지 않는 것.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187쪽)

 

때때로 혹은 자주, 공간은 냄새보다 강렬하게 과거를 환기시킨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거나, 벗들과 정답게 술잔을 기울였거나, 그보다 더 우울했거나 즐거웠거나 사소했거나 상관없다. 우리가 부려놓았던 감정들만큼 공간은 의미가 있다. (247쪽)

 

사실, 책을 받아들자마자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부터 읽어보려했다. 하지만 '다정한 편견'이라는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4부의 제목일 뿐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되게 내 방식대로 생각해 보건대, '다정한'은 1부와 2부를 지칭하고 '편견'은 3부와 4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4부의 제목이라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왜인지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서평의 제목이 '다정한 쪽이 좋다'라고 지은 것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 책 <다정한 편견>은 잘 쓰여진 책이다. 원고지 4.5매의 제약을 뚫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2페이지가 채 안되는 분량의 글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고 그래서 읽는 이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좋은 책- 그래서 나도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을 가져보려고 한다.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이 세상속에 존재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편견들 속에 다정함을 살짝만 넣어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결국엔 '다정한'만이 남게 된다면 내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정한 쪽이 더 좋은 나는, 편견을 다정하게 바꾸어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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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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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자'와 '거주민'에게 와 닿는 것이 다른 법이다. 생각하는 것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한 번 스쳐 지나가야 하는 여행자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간직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 다시 와 볼 지 모르니 한 번 왔을때 무언가라도 남기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서다. 뽕을 빼자!라는 마인드는 차치하더라도.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이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흔한 것들이고, 어떤 마음을 품기엔 생활이 팍팍하다. (왜이렇게 삶은 어디서나 팍팍한 걸까) 그래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차이도 생긴다. 여행자는 볼 수 없는 아주 세세한 것을 거주민은 볼 수 있다는 것. 유명한 곳이 아닌 나만의 장소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길 수도, 또 정말 아무도 모르는 괜찮은 곳을 찾을 수도.

 

그래서 여행자의 에세이와 거주민의 에세이 그것 각자의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의 사적인 도시>는 후자이다. 뉴욕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일기처럼 두서없이 다루고 있지만, 흔하게 봐 왔던 여행서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내게는 좀 신선한 책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녀가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추려서 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서문에 등장한다.) 자귀짚다,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로 서문의 제목을 달았기에 이 말뜻이 뭔가 했더니 짐승을 잡기 위해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뜻이란다.

 

나라는 짐승은 무슨 먹이를 찾아 어떤 발로, 어떻게 걷고 있을까. 어떤 길을 다니고, 어떤 풀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물을 먹으며, 가끔씩은 멀리 보기도 할까. 실제로 원고를 읽어나가니 길고, 암담하고, 눈물나고, 때로 눈앞이 환해지기도 하는 여행이 시작된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스스로 내 발자국을 쫓는 일은 낯익기도, 낯설기도 했다. 내 안에서 이미 체화된 어떤 사실들이 꿈틀거리며 내 몸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순간이 보였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던 무렵 일어났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땅히 생각나야 하는 어떤 사실들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찍은 발자국 사이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보였다. 기억이란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다. (p. 10)

 

불과 어제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려 몇 년전의 이야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쓴 일기같은 글 속에서 그때의 자신들을 떠올렸고, 잃어버린 기억들 사이에서 새로운 길도 발견한 듯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니 그 짐승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발자국을 되짚는 일은 그만두고 이제 앞으로 함께 걸어나가고 싶다. (p. 11)

 

 

 

 

이 책은 그녀가 쓴 아주 사적인 뉴욕의 기록이다. 뉴욕에서 사는 사람, 일명 뉴요커로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아주 단편적이지만 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꼈던 뉴욕에 대한 감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은 둘째로 하고, 그녀의 생각들이 하나같이 생소한 것들이어서 (그러니까 나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들이어서) 재미있었다. 블로그에 그냥 쓴 글이었고, 그것들을 다듬었어도 여전히 연속성은 없는 글들이지만, 하나하나의 글들이 그 길이에 관계없이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거니와, 글쓰는 방식이나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호감으로 다가와서다.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흔적 위에 다시 쓴" 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다. 메모아르memoir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문서- 팰림프세스트와 메모아르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이야기를 했던 글이다. 여기서 메모아르에 내가 꽂힌 것이다.

 

기억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시간을 거쳐 구성된 세계이다. 선택하고, 삭제하고, 지워지고, 다시 프레임하고, 지워졌던 것이 결국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의 구성 과정은 썼다 지우고 다시 쓰는 고대 문서의 형태와 닮았다. (p. 93)

 

고어 비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메모아르까지 넘어간 것인데, 팰림프세스트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문서인데다가 기억과 연관지어 이야기하니까 재미있었다.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이야기들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각자만의 사적인 도시가 있듯이, 작가의 사적인 도시는 뉴욕이었다. 이 책으로 뉴욕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주 사적인 이 기록이 뉴욕을 조금이나마 친근하게 느끼게 해 준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아주 먼 나라가 아닌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게 된 느낌.

 

그녀의 기록을 보니 내 인생도 기록하면 <나의 사적인 서울> 정도의 퀄리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냥 재미도 없고 늘 살아왔던 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 글쎄- 가장 사적인 것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생각한다는 그녀의 글은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읽기 더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뉴욕이 특별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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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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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창훈'이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내 편협한 독서야 신간평가단 13기때부터 줄줄이 읊어왔으니 더 읊을 필요는 없겠고..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알게 되는 작가가 꽤 많은데, 아마도 '한창훈' 작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요즘들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왜인지 그 이유까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분명한 건, 사람들이 글로써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덩달아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책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또한 그런 책들의 종류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글 쓰는 게 좋은지, 어떤 게 좋은 글인지, 그리고 자신이 글쓰는 방법은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책. 하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은 그저 '한창훈'이라는 사람 그 자체였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 책은 작가 그 자체라니 조금은 아이러니 한 듯도 하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의 말에 모두 설명되어 있다.

 

왜 쓰는가, 이런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마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이가 답하는 게 더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p. 6)

 

왜 쓰는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던 작가의 '작가의 말'만 보고 이 사람이 굉장히 내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겨우 한 문단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다니. 이 사람 진짜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무튼. 쪽팔리다 이야기했던 작가가 그래도 자신이 왜 쓰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가장 간단한 이유는 원고료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고, 사실 쓰는 행위가 먼저라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뒤에 생긴다 (p. 7)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가 댄 여러가지 이유들 중에서 '주변의 기록'이라는 그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생은 여러가지 맛이 나는 요리인데, 한 가지 맛만 나면 재미없지 않겠냐며 되묻는 그의 글에서 왜인지 그의 뚝심을 보았다.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크든 작든 어떤 이야기가 생기고, 그것을 글로 차분히 옮겨내면서 사람을 추억한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 스쳐지나갔지만 자신이 만났던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자신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꺼내 놓은 이야기들에선 작가다운 풍모도 보이지만, 그에 비해 인간적인 모습도 더러 출연한다. 작가가 소설가가 되기 전의 모습들도 보이면서 그가 겪었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퍽 재미있다.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그의 성격이나 말투 같은 것들이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인데, <나는 왜 쓰는가> 속 이야기들은 작가의 목소리가 더 입혀진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착각일까.)

 

첫 에피에 등장하는 동네 거지형부터 자신이 교류했던 문인들과의 에피소드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비춰졌던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여실히 드러났달까. 툭 던지는 말투 속에 따스함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특징도 잘 살려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그가 말하는 가족들은 모두 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들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p. 223)

 

그가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음에 들어 가져왔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가볍지가 않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농을 이렇게나 와닿게 비유하다니 말이다.

 

글쎄. 이 책은 작가의 목소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가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들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법한.

 

내가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p. 14)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즐겁다. 그가 가끔씩 자신의 입을 빌려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들려줬음 하는 바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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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심하게 아파본 적이 없다. 환절기때마다 가벼운 감기는 달고 살았을지언정,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큰 교통사고 혹은 수술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다리가 부러지거나 해서 깁스를 한 적도 없다. 유리에 베인 적도, 불에 데인 적도,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입원한 적도 없는 평탄한 삶이없다. 이럴 수 있던 건 엄마가 소녀였던 시절에 다리에 큰 화상을 입은 적이 있어 크면서는 늘 내게 '안전제일' '조심조심'을 상기시켜서인 것 같다. (제일 속상한 건 정작 나한테 조심조심을 상기시키는 엄마는 여기저기 잘 아프다는 일이지만.) 병은 불시에 닥쳐오는 거라지만, 내겐 아직 그런 불시에 닥쳐온 병도 없었다. 이런 내게 파킨슨 병에 걸린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라..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조금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주 살짝 아파본 적도 없는 내가, 저자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일테니까.


잘못된 길이라면 아예 내딛고 싶지 않은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번 실패를 경험한 그녀가 많이 지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 결정을 미룬 채 고민을 더 해 봐야 시간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게 옳은 선택이든 아니든 이제는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 그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가서 경험을 해 봐야 자신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p 6)


프롤로그에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에게 상담을 받던 환자에게 해 줬던 이야야기다. 잘 읽어보면 무언가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책 속에는 비단 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꽤 많은 것을 품는 지혜들도 엿볼 수 있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니 참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기 전에 가늠하기로는 이 책은 병을 이겨내는 저자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예의 자신은 이만큼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는 같잖은 위로의 책 말이다.


실제로 책은 그녀가 겪었던 파킨슨 병을 앓으며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 책은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 사이의 선을 그어 놓고 '내가 이만큼 아팠다'라는 것을 내세우듯 이야기하며 희망을 주려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이 책은, 안 아픈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상황들을 겪으면서 얻은,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그 깨달음은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였고, 간간히 정신과 의사였던 시절에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생각했던 이야기들과 현재를 엮어가며 설명해 주기도 해서 다가오는 느낌이 기존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아, 한 발짝이구나.'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p 24)


물론 아프면서 느꼈던 생각들은 누구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얻는 깨달음도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p 33)'의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이의 생각은 이미 충분히 다른 관점이 아닐까. 고통이 지나가고 아픔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언젠가부터 희망이 되었다는 저자의 생각이 말이다.

 

 


왜 신입을 뽑지 않느냐고 물으면 언제 키워서 사람 만드느냐고 되묻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하니까 신입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초보가 찬밥 신세밖에 안 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초보의 서툶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p 69)


물론 책은 저자가 병과 싸우면서 얻은 이야기만을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면서 느끼고 겪었던 일들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고(충고를 하지 않는 까닭,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 4장 같은 경우는 아들과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고, 마지막 5장 같은 경우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제목 옆에 붙어 있는 파킨슨 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은 아마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절대 깨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이 책에 호감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굳이 그런 부제를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자신있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라. 잠시 멈추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함은 줄어들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 148)


오히려 난 지금이 좋다.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진 나 자신이 좋고,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웬만한 일들은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게 되어 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 또한 세월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p 250)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든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팁이 될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도 많기 때문이다. 인생의 선배가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삶의 비밀'이라는 뒷표지에 적힌 단어가 나를 붙잡는다. 이 책은 '삶의 비밀'이라는 단어가 참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의 생각과 마음들은 모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니 말이다.

 

저자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것이 재미있다 말한다. 버텨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저자는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텨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녀가 지내온 삶의 길 속에서 얻은 이야기들이 내게 얼만큼의 양분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 속에 그녀의 삶 속에 좋은 기운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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