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정혁준.정윤영 지음 / 꿈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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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아빠와 학생인 딸이 글쓰기 고민을 이야기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낸 책.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의 출간 배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 고민을 한다.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고,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고, 좋은 글이 뭔지 모른다. 주제를 보면 주눅이 들고, 나는 언제 마음대로 글을 써 보나 한숨이 나오고, '글쓰기'란 단어만 들려도 성질이 난단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동생 피셜이다.) 그러니 글쓰기 고민을 이야기하는 책이 보이면 눈길이 간다. 동생과 관련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좋은 팁을 얻을 수 있어서다.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쓰고 싶은 말을 다 쓴 건가? 불필요한 부분은 없나? 글은 매끄럽게 잘 읽히나? 등등. 글을 쓰는 도중에도 이전으로 돌아가 읽고 더 나은 위치를 찾아 문단을 이리저리 옮긴다. 이렇게 글을 다듬는 행동은 쓰다 막혔을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종의 습관같은 거다. 처음엔 다음으로 넘어가는 아이디어를 얻으려 시작했는데 지금은 습관처럼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아무튼 글을 자주 고치다 보니 '필요 없는', '빼야하는', '잘못된' 것들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글쓰기'와 관련된 책은 어마무시하게 많은데 비해 '퇴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쓰는 것과 다듬는 것의 중요도가 비슷한 나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에 복잡하지 않고 내용 자체도 깊지 않지만 글을 쓸 때 쓰지 않거나 빼야 하는, 내가 찾던 방법들이 잔뜩 등장한다.

책의 제목은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지만 이 책은 글쓰기의 A to Z가 아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 용도(매체)에 따른 글쓰기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는단 소리다. 이 책은 '잘못된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 초보든 고수든 쉽게 잘 저지르는 실수들을 차근차근 짚고 있다. 처음부터 영어투와 일본어투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1부 전체에 걸쳐 중복과 모호함과 불필요함을 빼는 방법, 문장이 간결해야 하는 이유와 뜻이 분명해야 함을 이야기하며, 말하듯 읽기 쉬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실제 딸과 함께 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를 쓰지 않는 방법 같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실상 '글쓰기 고민'이라고 뭉뚱그려 놓았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명확한 내용 전달'에 맞춰졌다 보면 된다. 그렇기에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던 내게 참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인상깊었던 부분은 1부의 아빠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이론 부분이다. 실제 딸이 쓴 글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보는 2부도 존재하지만 이 서평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다.)

책에 등장한 영어 투와 일본어 투, 흔히 '번역 투'라 말하는 잘못된 글쓰기 습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명사와 명사 사이를 잇는 '의', 역시 명사와 명사 사이를 이을 때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대한(대해)', 국문에서는 쓸 데 없는데 많이 쓰는 '가지다'(소유격 have 직역), 강조를 위해 써야 하지만 자꾸 남발하게 되는 의존명사 '것'까지. 솔직히 이 네 개는 나도 자주 썼던지라, 제외하고 글을 써야 한다니 생각이 꽤 많아졌다. 이외에도 우리말은 조사를 겹쳐 쓰지 않지만 평소에 자주 쓰여 익숙한 '~와의', '~에의', '~로의', '~로부터', '~에서의' 부터, 일본식 표현 '요하다', '달하다', '다름 아니다', '경우', 영어식 표현 '~을 위하여', '불구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요구된다/요청된다'까지. 잘못 쓰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한 채 엄청 익숙히 사용하고 있었다. 교과서나 공식 문건에서도 아직 사용되고 있으니 우리말 쓰기의갈 길이 멀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외에도 서술어 늘여쓰기가 안 좋은 이유, 문장을 짧고 간결하게 써야 하는 이유,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해야 하는 이유, 엉뚱한 서술어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 목적어와 서술어가 일치해야 하는 이유, 숨겨진 중복 단어를 발견하고 문장을 모호하지 않게 구성하는 방법 등등 글쓰기에 참 도움이 되는 팁들이 실려 있다. 진짜 리스트를 만들어 퇴고할 때 곁에 두고 생각해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그럴 마음 100%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 보다는 나처럼 글을 다듬을 때 팁으로 사용할 사람들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이 글은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 책을 읽고 나서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글이란 한 번에 바로 잘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을 보태고, 다듬고, 쓰고, 다듬고, 쓰고, 다듬고.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게 될 때까지 지루하게 그 과정을 반복해야만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예를 들면 내 동생같은) 사람들은 한 번에 좋은 글을 뚝딱 써내길 바란다. 내가 쓰는 글들이 한 번에 주르륵 뽑혀 나온 줄 안다. '처음부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간단한 명제만 곁에 둔다면 글쓰기 허들이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더불어 이렇게 여러가지 팁을 전해주는 책을 가까이 두며 글을 다듬어 나간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글쓰기 근육이 필요하다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자꾸 글을 써가면서 근육을 키울 필요는 있다. 그리고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는 세밀한 잔근육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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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아트북 : 랜드마크 엽서북 - 손 안에 펼쳐지는 안티 스트레스 북 스티커 아트북 (싸이프레스)
싸이프레스 콘텐츠기획팀 지음 / 싸이프레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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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의 폭염이라던가. 2018년의 여름은 참 더디게 흘러간다. 서울의 한낮 온도가 대구보다 더운 40도에 육박했고 한달 가까이 평균 35도를 넘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온도만큼 열대야도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어진다는 예보다. 건물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홧홧한 기온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건 기본, 이제는 아침 온도가 27도만 돼도 '오늘 아침은 왜 시원하지?' 같은 이상한 소리도 하게 된다. 내일 모레면 '말복이 지나면 찬물에 목욕을 못한다'는 그 말복이지만, 말복이 지나도 당분간 찬물 샤워는 계속될 듯 하다. 

날씨가 이렇다보니 뭔가를 할 의욕이 뚝뚝 떨어진다. (물론 에어컨이 있으니 이 말은 과장이다. 하지만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따져보면 반만 과장이다.) 할 수만 있다면 대나무 돗자리 위에 딱 붙어 누워서 에어컨+선풍기를 틀어놓고, 양쪽 옆구리엔 꽝꽝 얼린 페트병을 끼운채 얼음을 입에 물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파라다이스일테니. 그러나 일상생활을 해야 하기에 이건 꿈같은 일이다. 그러니 움직이면 열이 나고, 열이 나니 자연스레 짜증도 샘솟는다. 덕분에 의욕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의욕을 가지고 하는 놀이가 하나 있다. 바로 <스티커 아트북>의 스티커 놀이다. 




<스티커 아트북>은 말 그대로 스티커를 붙이는 놀이다. 어른들의 힐링 놀이라며 유행하던 컬러링북, 점잇기, 캘리그라피, 커팅북 등등 여러가지 이후에 새로 등장한 놀이인데, 책에 동봉된 스티커를 제 자리에 갖다 붙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스티커북의 주요 골자다. 파워 간단! 더군다나 색연필이나 볼펜 같이 무언가 재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덜렁 책 한 권만 있으면 어디서든 놀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휴대성도 좋다. 그동안 <스티커 아트북>은 여러 시리즈를 내왔었는데, <스티커 아트북-랜드마크 엽서북>은 예전에 한 번 출판했었던 베스트 셀러 랜드마크를 '엽서' 형식으로 재편집한 구성이다. 사이즈가 아담해서 처음부터 호기심이 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스티커 아트북> 시리즈는 폴리곤아트를 차용한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폴리곤 아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작업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방식이다. 그래픽을 다각형으로 쪼개어 입체감을 주는 방식. 그래서 기본 도안 랜드마크들은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산산조각 나 있다. 이곳에 동봉된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당연히 산산조각 나 있는 삼각형과 사각형엔 번호가 적혀 있다. 적게는 100번부터 많게는 230번까지 그 크기와 갯수도 다양하다. 아무래도 도안이 엽서크기라 새끼손톱보다 작은 도형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역시나 이 작은 도형들이 난이도 최상이다. 집중력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려주는 동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10가지의 랜드마크 중에 패기있게 처음부터 9번 모스크바 성 바실리 대성당을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1번이 가장 쉬운 난이도고 10번이 가장 어려운 난이도다. 처음부터 어려운 난이도를 선택했으니, 헤매는 것도 당연지사. 스티커의 1번부터 찾아서 순서대로 붙였다. 도형들의 숫자는 중구난방이다. 그러니 숫자를 찾는 것만도 시간이 꽤 많이 들었다. 그러다 딱히 순서대로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반 정도 붙이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는 눈에 보이는 큰 면적부터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스티커는 생각보다 잘 붙이기도 어려웠고, 중간중간 보이는대로 붙이다보니 서로 겹쳐들어가거나 꽉 들어맞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붙여놓고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3번 광화문을 꺼내들었다. 바실리 대성당보다 조각의 크기들이 커 쉽겠다 생각했지만, 광화문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곳의 조각들 크기가 역시 작아 자리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광화문은 위쪽을 쭈르륵 붙이고, 아래쪽을 쭈르륵 붙인 뒤 복잡한 중간 부분을 나중에 붙였다. 하지만 이도 썩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아 6번 파르테논 신전은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붙였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무래도 직선으로 이루어진 랜드마크라 다른 랜드마크들보다 붙이기는 수월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붙이는 것이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놀이엔 왕도가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 그 뿐. 나는 조금더 완벽한 작품을 위해 핀셋을 꺼내들었다. 조금씩 삐뚤어지는 스티커들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핀셋을 든다고 해서 스티커가 제자리에 꼭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니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스티커 아트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갔다. 여름이 언제 끝나는 거냐고 투정부리다가도 <스티커 아트북>만 잡으면 두 세시간이 금방 휘리릭 지나갔다. 집중하면서 스티커와 씨름하는 사이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간이 날 때면 스티커북을 잡고 있다. 빠른 스피드로 모두 끝내버리겠다!의 느낌이 아니라 조금 더 완벽하고 깔끔하게 붙이기 위해 하나하나 집중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참 안간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 아트북>은 시간을 보내기 참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아직 한참 남은 여름, 나도 <스티커 아트북>과 함께 보내버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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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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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내게 조금 낯설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다.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면 아마 미술은 내게 엄청 친숙했을테고, 아는 것이 많았다면 어디서든 미술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테니까. 얕디 얕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주워들은 상식선에서다. 그래서 미술 관련 책들이 나오면 일단 눈이 갔다. 대충 훑어보고 마음에 들면 한 번쯤 읽어보려고.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지적 호기심. 하지만 문외한이라 해도 될 정도로 미술엔 기초도 없으니 "아주 읽기 쉬운 책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딱 발견했다.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말이다.

사실 내가 막 뒤져가며 열의있게 발견한 것은 아니고, 온라인 서점의 메인화면에서 봤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박스에 소개되어 있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에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책의 색깔이나 책의 방향성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직접 받아본 책은 표지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미술관>은 나처럼 미술 초심자들이 봐도 좋을만큼 쉬운 책이다.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미술을 공부한 사촌언니가 미술 초심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는 느낌. 하나의 작품을 놓고 작가가 이야기해주고 싶은 방향대로 글을 썼다고 보면 된다. (근데 그 글이 잘 읽히고 흥미가 동한다!) 아무래도 그림의 화풍이나 복잡한 기법 등 어려운 내용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그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스르륵 흘려보냈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물론 초등학생 중에 이 책을 좋아할 아이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읽힌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화가의 성장 배경이라든가, 작품을 그릴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화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이라든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그림이라든가. <한밤의 미술관>의 좋은 점은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한다고 그 작품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발전시켜 그에 알맞은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연관지어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어느정도 통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오래 공부하지 않고도 언뜻 흉내는 낼 수 있겠으나 흉내만 내는 비교는 그 깊이를 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밤의 미술관>은 비교들도 훌륭하다.

책 속에 등장한 15개의 주제 작품들 중 내가 아는 작품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알 법한 드가와 고흐의 작품 뿐이었다. 에곤 실레는 영화제목으로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게 익숙한 드가의 그림 이야기를 해 보자. 드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기대에 맞춰 법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앵그르라는 프랑스 거장을 만나 조언을 듣게 되면서 진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다. "자네의 인생과 추억에서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보게." 드가는 움직이는 것에 사로잡혀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또한 시력을 잃게 된 말년에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조각을 했다. 하지만 드가는 사춘기 시절 겪었던 어머니의 외도로 '여성혐오자'라는, 그림만 보면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이에 작가는 '어머니라는 절대적 존재를 계속 사랑할 수도 끝끝내 미워할 수도 없었던, 자기부정과 모순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반복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가엾은 어른이었을 뿐이다'라며 드가의 비하인드를 이야기한다.

드가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것인데, 어떤가. 이 글만 읽어봐도 되게 흥미롭지 않은가? 작가는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 작품과 잘 엮어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한 줄을 마지막에 적기도 한다. <한밤의 미술관>은 이런 이야기들이 15개가 실려 있다. 한꺼번에 후루룩 몰아봐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 날 때마다 하나의 이야기씩 만나기를 권한다. 하나의 이야기 속 그림들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한밤의 미술관>의 또 다른 좋은 점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작품이 있는 미술관의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을 소개할 때는 앞서 작품을 소개할 때와는 다른 톤으로 설명해준다. 이때는 사촌언니의 느낌보다는 미술관 도슨트의 느낌이 강하다. "이 미술관에는 이런 작품이 있구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같은. 글이 확연하게 둘로 나뉘어서 그런지 화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였다면,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뭔가 뒷 이야기와 지식을 함께 전달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우리동네 미술관' 코너는, 한번쯤은 꼭 가봐야지 할만한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을 소개해뒀다. 물론 작가 추천이다. 어디부터 가야할지 망설이는 초보 관람자에게 좋은 팁이 될 듯하다.

작가는 한밤 침대 위에서 책으로나마 짧게 만나는 미술관이길, 언젠가는 한번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갖길 바라면서 책 제목을 <한밤의 미술관>으로 지었던 듯 하다. 작가의 말에 있는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 "너는 미술에 관해 물으면 뭐든 답할 수 있을 거야.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넌 그의 걸작, 정치적 야심, 성적 취향까지도 줄줄 읊어대겠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 거야. 직접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볼 때 벅차오르는 감동도. 넌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처럼, 그리고 작가의 바람처럼, 책으로만 작품을 만나는 것 보다는 그곳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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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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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를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안정적인 가정생활,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여자 무용수가 안무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라고 책소개를 내마음대로 각색해 대충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가볍게 책을 펼쳤지만, 책 한 권을 모두 읽는데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불온한 숨>은 앞에서부터 글을 이끌어가는 여자 주인공 제인과 6장과 7장에서 비밀을 1인칭 시점으로 풀이하는 남자 주인공 텐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맥스와 마리에 관한 이야기다. 텐의 시점에서 그동안의 사건들을 정리하기 전까지,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제인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무언가가 콱 막힌 듯 개운하지 않았다. 제인은 겉으로는 완벽했지만 속은 곪을대로 곪아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이었으니까. "이 보잘것없는 밀실에 몸을 밀어넣을 때에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하루 종일 억눌렸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듯했다. 피부로 숨을 쉬는 양서류들처럼 나는 온종잉 햇빛 아래 피부가 바짝 말라 숨을 쉬지 못하다가 어두운 저수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느낌이었다. 쩍쩍 갈라지던 피부가 미지근한 물에 젖으며 다시 미끈거리기 시작했다.(31쪽)" 집에서조차 아무도 들이지 않는 밀실같은 방 한 칸에서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숨을 쉬는 공간이기도 했다. 

제인의 삶은 '떠밀림'과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보육원에서 영국 여자에게 선택되어 싱가포르로 오게 된 후, 그녀의 죽은 딸 '제인'과 똑같은 삶을 강요받았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제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정석대로의 춤을 완벽히 춰 내는 촉망받는 발레리나였으나, 그녀는 속으로 항상 불안했다. 백조의 발버둥처럼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그러다 제인은 맥스의 춤을 보게 됐다. "맥스의 동작들은 기괴해 보였다. 이제껏 내가 익혀왔던 규칙과 규율들로부터 조금씩 비켜나가고 있는 동작들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긴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그의 동작들이 나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그의 기묘한 춤에 이끌려 그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91쪽)" 규율과 규칙으로 얽매여있던 제인에게 맥스는 신선한 바람 혹은 동경으로 다가왔다.

제인과 맥스의 강사였던 마리는 맥스의 자유분방함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숲에서 자유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몰래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제인이 그 춤에 합류하게 됐다. 셋 만의 비밀이었던 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제인은 거짓말을 했고, 사건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많이 생략한다.) 되돌아보면 결국 제인에게는 자신의 답답함을 알아주는 맥스와 마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삶의 유일한 숨 쉴 구멍이었을 지도 모른다. "너는 늘 완벽에 가깝게 춤을 추고 있었지만 누군가 뜬 주물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지. 나는 이상하게도 너의 숨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어. 너는 숨을 쉬고 싶었을 거야. 너를 결박하고 있는 주물 같은 몸을 깨고 나와 너만의 춤을 추고 싶었을 거야. (139쪽)" 이렇게나 자신을 꿰뚫어보고 같이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룬 것을 놓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로 상황을 외면한다. 그리고 여전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제인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안무가 텐을 만나게 되지만,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그렇게나 숨기고 싶어했던 일을 헤집는다. 손등부터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도 그렇고, 숨기고픈 과거를 마음대로 꺼내놓는 것도 그렇고, 텐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감지하지만 커리어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소설 <불온한 숨>은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했던 제인이 숨을 내쉬던 것이 '불온하다' 규정했다. 그리고 그 불온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인은 선택을 했다. 자신을 잃어버렸던 제인이 겨우 불온한 숨을 내쉬며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으려 했지만, 숨을 내쉰다는 것을 세상에 들키자마자 제인은 다시는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불온한 숨>은 처음부터 제인의 상태와 다르지 않은 싱가포르의 강을 묘사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강의 모습이 제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물은 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강은 사실 맑지 않다. 낮에 내려다본 강물은 녹이 슨 수만 개의 그릇을 씻어낸 뒤인 것처럼 싯누렇다. (중략) 바닷물은 끝없이 강물 속을 헤집으며 진한 모래를 게워낸다. 그래서 강은 맑아질 틈이 없다. 해가 떠오르면 밤새 도시의 불빛 아래 맑아 보이던 강물은 다시금 퇴색될 것이다.(8~9쪽)" 그래서 제인은 불온하지 않은 숨도 채 내뱉지 못한 채, 강물의 본모습을 들킬까 두려운 것처럼 굴었다. 자신은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겠니? 어둠 속에서 추는 춤만이 진정한 춤이라는 걸. 그런 춤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런 춤을 춰야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마. 오직 너의 춤을 춰, 제인. (153쪽)"
"그녀는 내 몸을 결박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나를 결박하고 있는 올가미로부터 나를 풀어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나를 결박하고 있는 로프를 풀어내지 못했다. 좀 더 사력을 다해 어둠을 향해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다 끝내 삶도 죽음도 아닌 곳에 떨어졌다. 나는 죽음으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저 먼지만 자욱이 쌓여 있는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군가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다.(154쪽)"

그러나 <불온한 숨>은 열린 결말이다. 앞으로 제인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는 제인이 자신을 되찾는 노력을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는 채로 사느니, 어쩌면 죽게 되더라도 조금 더 생기있게 날아올라 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 숲에서의 춤이 불온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미스터리하지만 슬프고, 꽤나 답답하지만 처연한 제인의 삶을 속으로 응원해본다. 당신은 이제라도 다시 걸어갈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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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봄
오미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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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분홍한 표지와 <오늘도, 봄>이라는 달달한 제목을 가진 책. 하지만 책의 첫머리에서 작가는 '힘들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하루가 이어지는 삶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에 나는 찰리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렸다. 1부의 부제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조금은 와 닿을 것이다. <오늘도, 봄>은 제목에서 떠오르는 사랑이야기 혹은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책이라는 것이.

'봄'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보다'의 'See'와 사계절 중 '봄'의 'Spring'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해석이 여러개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해석했다. '나의 인생을 보여주고 싶어요. 나를 통해 당신의 인생을 보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봄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띠지에 적힌 말이고, 작가가 <오늘도, 봄>이라는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1부의 주제인 '나'에 대해 책 속 여기저기에 드러냈다. 170이라는 큰 키, 빚쟁이를 피해 섬에서 뭍으로 나오던 세 남매, 단칸방과 다섯 식구, 성추행 합의금 400만원, 고등학교 시절의 도둑 누명, 식당 종업원 엄마, 트럭운전사 아빠 등등.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부의 부제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작가는 자신의 드라마를 담담히 풀어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이 제일 힘든 존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 삶이 당신이 보기에 쉬워 보인다 할지라도 그런 말 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삶 속에서 죽을만큼 힘겹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61쪽)

2부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다. '너'로 지칭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너는 외로움이기도, 사랑했던 과거의 누구이기도 했다. 아주 나쁜 생각 혹은 미련이기도 했고, 오빠나 언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냥 2부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진 곳이다. 주제에 제한이 없어서일까.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간절함이 담긴 두 마디 '제발'이 얼마나 간절하고 처전한지 나는 알아. 하지만 세상은 그 '제발'이라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말은, 다가올 불행을 예견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149-150쪽)
여기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제발'이라는 단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 부분이었는데, 왜인지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설마'와 같은 용법의 '제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일견 공감하기도 하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꽤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3부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부제가 '누군가에게는 천국, 누군가에게는 지옥, 그러나 모두가 살아가야 할 곳'인데, 읽기 전부터 부제에 쓰인 단어들 덕분에 조금은 어두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갔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부분은 세상 살아가기 어려운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살아내기 힘든 게 당신 뿐만은 아니니, 우리 모두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봅시다! 라고 외치는 느낌. 슈퍼 을이라도 행복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 마인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그렇더라.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내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쓰다듬어 주면, 어느덧 나도 따뜻해지더라.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188쪽)

이렇게 총3부로 이루어진 책은 개인적인 일기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편지같기도 했다. 글 속에 드러난 구어체는 그런 느낌을 더 배가 시키면서 읽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당신의 인생은 막장 드라마인가? 그렇더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은 살아내야만 하는 전쟁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발걸음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한다.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도 꽃은 핀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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