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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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선진국인 우리나라. 그리고 인터넷이란 공간에서의 시민(이른바 네티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고는하는 인터넷에서 또 하나의 삶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인터넷에서의 삶을 펼치고 꾸려나가는 공간으로 자신의 집과 같은 ’블로그’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블로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블로거가 되는 것이다.

블로그란 자신의 공간을 오늘도 제각각 꾸려가는 수많은 블로거들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고유한 닉네임으로 사이버사회에서 유명인이 된 네티즌들이 또한 적지 않다. 나름의 색깔과 분위기로 실제의 모습이나 삶이야 어떻든 또 하나의 자신을 살고 있는 네티즌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네티즌이자 블로거로 블로그들 사이에 유명인이 된 ’로쟈’의 글을 담고 있다. 모 인터넷서점의 서재 한 켠에 차곡차곡 채워가던 그의 서재가 블로거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가상의 공간이 아닌 실체인 ’책’을 당당히 우리곁에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서재의 주인장이라 할 수 있는 ’로쟈’는 물론이거니와 수 많은 블로거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밀려온다.

몇 년째 차곡차곡 그의 서재에 쌓인 그의 작품들이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되어 담겨있는 두께도 내용도 묵직한 실체를 받아들고 한동안 부러움에 선뜻 책장을 펼치지 못했다.

노어노문학 전공, 노어노문학 강사로 또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의 이력때문인지 ’곁다리 인문학자’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분야를 공부한 내게는 그의 다섯 서재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가볍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서재인 ’문학 노트’부터 예사롭지 않게 펼쳐지는 그의 앎에의 전개와 주관적인 시선에 순수하게 호기심과 흥미로움에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고자 했던 나의 시도가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다.

인문학적 아니 순수학문적 깊이나 주관이 전혀없는 내게는 새로운 묵직함을 던져주는 로쟈의 서재. 오기로라도 그의 서재 구석구석을 파헤치고픈 욕심이 끈기로 모습을 바꾸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우선 그의 첫 번째 서재인 ’문학 노트’와 조금은 부담이 적은 듯한 두 번째 서재 "예술 리뷰’ 그리고 그가 장래에 쓰고자 한다는 지젝에 대한 네 번째 서재와 다섯 번째 ’번역 비평’을 욕심과 오기로 읽고 말았다. 읽었다는 것의 의미는 이해했다기 보다는 그저 활자를 읽어낸 것이다. 솔직히 내게, 몇 번을 곱씹어 읽어도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으며 그저 흥미로 재미로 책을 읽고 느끼는 나의 독서에 대한 일차원적인 생각이 어쩌면 그만큼 아는 것이 없음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밀려온다.

뒷표지의 ’우리 시대의 대중지성 로쟈, 훔치고 싶은 그의 서재’라는 문구에 문득 그의 삐딱함을 부려본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의 서재가 마땅(?)한 것이라고.......

로쟈의 서재는 놀라움과 질투심을 일게하지만, 그의 앎과 주관에 대해서는 감탄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문득 학문에의 욕구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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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집
리비 맥도날드 지음, 박산호 옮김, 임종한 감수 / 시공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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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집'이라는 제목과 함께 방독면을 쓴 두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나의 시선과 심장을 떨리게 하는 책이다.  그 어느 곳보다 편안한 휴식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집'이 '위험'하다니..... 그 내막이 궁금하여 서둘러 책장을 펼쳤는데 앞부분의 추천사와 '진실을 폭로하다'라는 제목의 머리글을 읽으려니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해 결국엔 휘리릭~ 읽게 되었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또 아이들을 위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는 자신의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환경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 백 배인 대목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는 물론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내용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온갖 오염과 공해 그리고 위험물질로 어느 것 하나 안전한 것이 없을 지경이다. 먹는 것에서부터 바르고 입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산업화와 현대화로 인한 눈부신 발전과 끊임없는 개발의 어쩔 수 없는 산물임을 또한 알려준다. 과연 발달이나 발전, 개발같은 것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자연상태로 안전하게 살고있을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인간사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전에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앞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악세사리에 납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납중독까지 우려된다는 기사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은 '납'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닌가보다.  

수은과 관련한 어패류의 섭취를 꺼려하는 이야기 역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플라스틱 용기를 가능한 사용자제를 권장하는 일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님을......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우리의 가슴을 한두어 번쯤은 쓸어내렸을 법한 것이었음에도 글을 읽는 내내 다시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옴을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해로운 물질들이 가장 활발하게 우리에게 접촉되고 흡수되는 곳이 다름아닌 '집'이라는 공간이라는 것에 더욱더 마음이 불편해졌다.  여태까지 여기저기에서 한두 번쯤 들었음직한 불편한 내용들, 외면하고픈 현실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내용. 무엇보다 주부로서 엄마로서 대부분의 일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수행하고 있다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들. 

미국에서는 1978년 이전에 지어진 집에 사는 것이 무척이나 해로운 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유인 즉 당시의 건축용 페인트에 다량으로 함유된 납 성분때문이었다. 납에 노출된(중독이 아닌) 아이들의 증상은 지능 지수 하락, 독서 장애, 발육 부진, 청력 손상, 주의력 결핍 등 부모로서 입에 올리기 조차 꺼려지는 내용들이다.  

그밖에 다루고 있는 수은, 플라스틱, 발암물질과 대기오염, 살충제까지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항력이나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손상이나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본문에서 저자가 만난 각계의 전문가들가의 대화와 조언을 통해 위험물질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저자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나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내 아이가 납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부터 제대로 알고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조사자체도 일반적이지 않다고 하니 가슴 답답해져 왔다.

정말 외면하고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우리는 언제까지 눈 감고 귀 막고 있을지 막막해져 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외면하지도 피하지도 못할 진실이라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실 아니 어쩌면 더욱 열악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아이들이 유괴와 교통사고 등의 위험보다 더 위험한 환경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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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인형의 집 푸른숲 작은 나무 14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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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이 등장한다는 이야기에 평소 인형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이제는 인형제작에 꿈을 키우는 딸아이를 위해 읽게된 책이다.

그리 이쁘지만은 않은 모습의 '벌거숭이'가 인형의 집으로 배달되어 오던 날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알듯모를듯한 인형들의 등장으로 전개된다.

몇 장을 넘기다보면 익히 알고 있던 동화속의 인형들이 본래 각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이야기 극장'에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피노키오, 제페토 할아버지, 맥스, 세라와 베키, 빨간 모자 등 한 번쯤 읽었던 책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원작속에서의 그들을 떠올리게 하고, 새롭게 만나는 이쁜이나 꼬마 존과 릴리의 이야기는 새롭게 만나는 이야기로 묘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어느덧 '벌거숭이'가 인형할머니의 마술과도 같은 손길에 의해 자신조차 몰랐던 예쁜 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셜리 템플로 변해가는 이야기에 마치 또 하나의 신데렐라를 만나는 듯하다.

무엇보다 감동적이고 놀라운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이야기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인 김향이 선생님의 인형의 집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소중한 인형들이라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어떤 이유로 망가지고 상처난 주인을 잃은 아니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았을지도 모르는 인형들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듯 새롭게 탄생시켜내는 김향이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욱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딸아이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사주었던 갖가지 인형들. 돌이켜보면 인형을 사는 순간만큼은 정말 이쁘고 깜찍하고 귀여워서 정말 옆에 두고 싶어서 사지만 어느새 인형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버린다. 그러면 또 다른 인형을 사고 또 시들해지고 그러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며 지금에 이른 것 같다.

이제는 그마저도 시들시들. 곱게만 만들어진 인형에 식상해 제 스스로의 인형을 만들어보고픈 꿈을 꾸는 딸아이. 제가 만든 인형은 보기에도 어설프고 모양새도 변변치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애정을 갖고 보살핀다.

작가 김향이 선생님은 이미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내팽개쳐버린, 버려지는 인형들을 입양해서 다시금 관심과 사랑으로 키워낸다.

옷조차 변변하게 입지 않고 와서 어느새 아름다운 셜리 템플이 된 벌거숭이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단지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주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하는 작가의 손길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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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
윤승일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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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였던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동영상은 다름아닌 '꿈의 마술사'라는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연'이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었다. 많은 청중이 보는 가운데서 젊고 훤칠한 호남형의 강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밝게 웃는 모습조차 예사롭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의 아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케잌과 함께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었을 생일축하를 해주는 그의 모습과 마지막일지도 모를 남편으로부터의 생일축하를 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꿈에 대한 강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정말 열정적으로 강연하는 그의 모습과 그의 강연을 열심으로 경청하는 청중의 모습에 왠지모를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그 이후 잊고 있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강의'는 정말 반가웠다.

이쁜 다이어리같은 크기며 모양이 한 손에 쏘옥 들어와 책의 자켓을 벗기면 느낌조차 부드러운 기분이 참 좋았다. 매끈매끈한 책표지를 넘기면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우리시대의 인물들의 강의가 펼쳐진다.

산악인 엄홍길, 컴퓨터 의사 안철수, 소프라노 조수미, 생각대통령 이어령, 나눔 전도사 박원순, 옥수수박사 김순권, 역사학자 이이화 그리고 마침내 진짜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인 랜디 포시까지 여덟 명의 연사들이 주는 아름다운 삶,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 꿈이 이루어낸 삶을 그야말로 한 장 한 장 머리에 가슴에 새기고프도록 읽게 된다.

가끔 뉴스나 기사를 통해 자신이 이루어낸 그리고 아직도 이루고 있는 성과(꿈)을 우리 곁에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인물들은 분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멋진 사람들임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저마다 현재의 자신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공통된 것 하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정상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때는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성공을 위해 달려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마흔 해를 훌쩍 넘기며 살다보니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지만 정작 꿈을 이루기 위해 제대로 노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까.......

나부터도 어릴 적 꿈을 꾸었지만, 아니 꿈을 꾼 것 같지만 냉정히 돌이켜보면 꿈조차 제대로 꿔보지도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꿈이라고 해봐야 그저 몇 번 누군가로 부터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너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야?'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잠시 생각해 보았던 그것이 바로 '꿈'이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그 때는 그랬었다. 지금처럼 책이나 신문, 방송조차 흔하지 않았던 그 때는 기껏해야 부모나 언니 오빠들 그리고 주변의 어른들을 통해 꿈을 꾸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지금처럼 꿈이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려주고 보여주고 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살면, 노력하면 무엇이 되든 될터이며, 어린아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자신의 꿈이며 미래도 다 이루게 될 것이라고만 하였다.

돌이켜 그 때의 부모나 어른들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다 물어내라고 억지라도 부려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 구태의연한 삶의 지침을 들려주었으니 말이다.

정말 모 아니면 도라고 했던가.... 열심히 공부만 한 결과 정작 꿈을 못 이루었으니 꿈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다고 해야할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데.... 애초에 꿈이라고는 제대로 꾸어본 적도 없으니 그저 살다보니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노라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터이다.

그런 내게 다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하는 간절한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랜디 포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던 강의처럼 마음껏 꿈을 꿔보고 싶고, 그리고 그 꿈들을 이루어 나갈 '1만 시간의 법칙'을 반드시 실천해보고픈 마음 간절하다.

아......이제 곧 사춘기를 앞둔 딸아이에게 권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는데 정작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한 책이 되었다.

아직은 평균수명까지 10년보다 훠~얼씬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음에 다음 생을 기약하기 보다는 바로 지금부터 '하루 3시간 이상 10년을 집요하게 매달리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아쉽게도 당장에 랜디 포시처럼 이루어야 할 꿈이 많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잘 하고 싶은 것 하나를 위해 앞으로 10년동안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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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 히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
그레그 모텐슨 외 지음, 사라 톰슨 개작,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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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어김없이 볼륨을 높이는 라디오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나라 안팎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뉴스거리라는 것이 누가 그렇게 정의를 내려놓기라도 한 것인지 반갑고 즐거운 소식보다는 긴장과 회의를 안겨주는 것들로 넘쳐난다.

작게는 개인의 가정사에서 비롯되는 범죄부터 크게는 국가간의 긴장감 넘치는 테러와 전쟁의 가능성까지, 어느덧 글로벌시대를 살고 있음에 수만 리 밖의 나라소식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한다.

필요이상으로 하루하루를 긴장하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에그럴 때는 차라리 오래 전 서로의 소식이며 왕래가 조금은 더디게 전달되고 알게되는 그때가 더 그리워지고는 한다.

우리나라도 끊이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소식이 그저 평화롭게 욕심없이 살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바람은 어쩌면 요즘 시대에 큰 욕심같게만 여겨진다.

그러던 차에 읽게된 '세 잔의 차'. 이미 성인용 버전이 나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읽게된 '어린이를 위한' 세 잔의 차라고 하는데 표지 어디에도 '어린이용'이란 문구가 없어서인지 <들어가는 글>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책속에는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특별한 마음으로 돌보았던 여동생의 죽음을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을까....... 여동생의 목걸이를 히말라야의 정상에 묻고자 했던 그레그의 바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이후의 삶으로 그를 살아가게 한다.

그저 자신이 죽을 뻔한 순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음에 감사해서, 목적지였던 아스콜리가 아닌 코르페 마을의 하지 알리와 사말들의 보살핌이 고마워서 그 은혜에 무한 감사함 때문에 학교 건물조차 없이 언 땅 위에서 무릎을 꿇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은 히말라야 정상에 동생의 목걸이를 묻지도 못하고 내려오는 길에 길마저 잘 못 들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흘러들어간 코르페에서 하지 알리와의 만남의 순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는 모험적인 부모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작은 유엔을 경험하며 자신 이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K2봉 정상에 여동생 목걸이를 묻고자 했던 마음은 코르페 마을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겠다는 그레그의 결심이 되고, 무모하게만 느껴지던 그의 결심이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현실로 실행되는 모습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오지의 학교에 기본적인 건물만 짓는다고 하더라도 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그레그에게는 쓸데없는 순간적인 치기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결심이자 약속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었던 580통의 편지는 초등학생들의 동전 모으기로 또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퍼져나가 마침내는 그레그 개인의 일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행운처럼 다가오는 산악인이자 대단한 부자인 장 회르니와의 만남으로 마침내 그는 학교를 짓는 일에 첫 발을 내딛는다. 아..... 정말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다.

평범한 개인의 약속으로 시작된 일이 그 이후 오지의 아이들에게 배움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미래며 희망까지도 품게하고 또 드넓은 세상까지도 보여주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일이 되었음을,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된'표지의 문구에 한 치의 반감은 커녕 제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밀려온다.

오지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금방이라도 히말라야의 차디찬 찬바람이 느껴질 것 같은 사진 속의 그레그의 모습에 왠지모를 숙연함이 느껴진다.

비록 나 자신은 내 아이의 미래며 희망조차도 제대로 갖게 하고 있는지 순간순간 회의를 느끼는데, 그레그는 오지의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세상이 달라보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새삼 반성도 한다.

어쩌면 거침없는 자신의 마음 속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갖고 불가능은 염두에도 없이 실천하는 그레그에게는, 그러한 용기와 실천의 힘을 심어준 그의 부모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며, 내 아이도 그레그처럼 되기를 바라기 전에 나도 그의 부모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성인용 '세 잔의 차'를 보지 않아 어린이용과 내용상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요약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은 많이 사라진(?) 것일까?

그래서인지 이 책(어린이용)을 읽는 아이들이 그레그의 일이 순간순간 행운( 어려운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 그를 도와준 것 같은 현지의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던 장 회르니와의 만남 등등)이 찾아와 큰 어려움없이 이루어진 일로 생각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어쨌거나, 아직도 진행중인 그레그의 용기와 실천은 아침마다 세상의 여기저기에서 위험스럽게 들려오는 세상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임을 일깨워주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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