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초밥을 무지 좋아라 하는 딸아이.
가끔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초밥만큼은 빼지 않고 먹어야 하죠.
저도 초밥이 맛나긴 하지만... 솔직히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죠.

그래서 얼마전부터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간식으로 먹고는 합니다.
물론, 초밥에 얹는 재료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직접 만드는 재미에 신선하게 바로 먹을 수 있고 또
부담스런 가격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초밥의 재료로 마트나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는
훈제연어나 여러가지 색의 날치알 그리고 새우가 비교적
쉽게 구입 가능한 것 같아요. 

며칠 전 간식으로 훈제연어 초밥을 만들어 먹었어요. 

우선, 을 질지 않게 하고 식초, 설탕, 소금을 4:1:1의 비율(보통 이 비율인데 제 경우에는
매실즙을 우선 넣고 맛을 보아가며 비율을 맞춥니다. 매실즙을 사용하면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되더라구요.)로 배합초를 만들어, 밥과 함께 섞어 놓습니다.
훈제연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습니다. 와사비도 준비합니다.
그럼 준비 끝!



밥에 배합초를 넣고 섞으며 밥을 식힙니다. 훈제연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요~



적당한 크기로 밥을 살짝 뭉쳐 그 위에 와사비를 적당량 바르고 훈제연어 한 조각을 올려주면 끝~
간장에 찍어서 맛나게 먹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 쉽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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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이 내게 왔다
정성일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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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 <그 삶이 내게 왔다>....
흠.. 처음에는 큰 제목 <그 삶이 내게 왔다>에 가려진 '나만의 길을 찾은'이란 수식어를 미처 보지 못했다.
17인의 독백과도 같은, 회상과도 같은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야 내 눈에 들어온 작은 수식어에 '그럼 그렇지!'하는 탄식과 함께 확실한 질투심이 밀려온다. 

이유야 어떻든, 그것이 비록 우연이든 필연이든 현재의 삶에 실마리로 다가온 저마다의 크고작은 사건들과 추억들을 돌이켜 보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이제는 다 견디고 넘어온 것에 대한 안도감같은 것이 전해져온다. 어쨌거나 그들은 나름의 일을 하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17인 중 몇몇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든(책이거나 대중매체거나) 이름이나 하는 일만큼은 얼핏 또는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이도 몇 있지만 대개가 생소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견디어낸 혹은 지나온, 아니 그들에게로 온(?) 삶의 불투명했던 초기의 모습에 당황하고 대항하고 좌절하고 그러나 결국엔 삶과 마주하며 자신의 것으로 건져올린(?) 이야기만큼은 하나같이 당당한 결말(가야할 길이 어딘지 확실히 아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제.는.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흠, 완전히 나의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내게도 우연처럼 필연처럼 또 잡았어야 할 기회처럼 여겨지는 삶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마주서기 보다는 피해버리고 건너뛰어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아.. 왜 그랬던가?
정말 생각할수록 바보같고 안타까운 그 순간이고 기회였다. 하지만, 나중의 후회가 싫어 다른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이고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을까.... 

그때의 선택 이유처럼 '나중의' 후회는 없었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또다른' 후회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마주서 부딪치지 않았을까.. 이 책의 17인들처럼.....
결국, 나는 '또다른' 후회를 염두에 두지 못한 계산착오로 인해 내 삶이었을 수도 있는 기회를 결국 놓쳐버린 셈일까... 

저마다 어쩔 수 없이 끌어안고 마주치고 또 때로는 도망치듯 했다지만 결국 내 보기에는 하나같이 피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찾지 않고 다가온 삶을 마주했기에 마침내 그 삶이 확실히 걸어야 할 길이 되었던, 부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이제라도 우연처럼 필연처럼 혹은 기회처럼 '그' 삶이 내게 온다면 이번 만큼은 그 어떤 이유로도 밀어내지 않으리라 곱씹어 보게하는 17인의 삶이 얄밉지만 또 아름답다.
그러나저러나  나의 '그 삶'은 대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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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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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만들어진 영웅들'이란 제목에 화악~ 끌려서 읽게된 책!
'만들어진' 영웅들이라니.. 왜? 어떻게? 누가?
나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마구 동하게 만드는 제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소설을 통해 그야말로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오늘날까지도 '영웅'으로서의 대접을 극진히 받는 인물들 가운데 임꺽정과 홍길동.. 이들은 엄연히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물들이다. 비록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과 다른 모습일지라도......

농민운동의 혁명가들이라 할 수 있는 홍경래와 전봉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엇갈린(?) 시각의 흥선대원군과 박지원까지 모두 낯설지 않은 조선시대의 여섯 인물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지... 솟구치는 궁금증에 얼른 책장을 펼쳤다. 

우선, 충분치는 않으나 그들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기록과 소설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상(만들어진?.. 이 또한 나름의 본질은 아닐지)의 인물인 임꺽정과 홍길동은 어디선가 접했던 기억이 있어 그들 사이의 '괴리'가 결코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조선 말기의 어지러운 세상(농민들에게만큼은)을 견딜 수 없어 박차고 일어선 뿔난 농민의 대표주자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홍경래와 전봉준. 그들이 일으킨 반란의 이유(원인)를 너무도 단순명료하게 정의되어 있는 국사교과서만 보았던 이들에게는 역시나 신선한(?)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한다. 

어쩌면 극과 극적인(?) 입장에 마주할 수도 있을 두 사람, 여러나라로부터의 척화의 손길을 거부한 채 쇄국을 지향했던 흥선대원군과 실사구시의 새로운 세상을 열망했던 박지원. 이 역시 국사교과서에 의해 편협하게 알고 있는 그들의 생각과 더불어 그들의 주장에 미처 돌아보지 못한 밑바탕에 깔린 저의(底意)를 짚어준다. 

어디.. '만들어진'것이 비단 인물이나 조선에 국한되었으랴.
인물은 물론 크고 작은 사건이며, 조선은 물론 그보다 먼먼 과거의 시대며 바로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역시도 충분히 '만들어지고' 또 '깜쪽같이 사라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 바로 역사가 아니던가.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 아닌 '알고도 모르고도, 속고 속이는 것이' 또한 역사가 아니었는지.... 

그러한 '조작'이 무엇때문인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다름아닌 역사마저도 기득권의 세력다툼으로 이용되는 때문이 아닐까.....
정치에서든 문학에서든 아니면 또 다른 곳(심지어 국가간의 거래에서도?)에서든 말이다. 

그렇다면 만들어지지 않은 진정한 그대로의 영웅은 과연 누구인지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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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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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과거에 비해 시부모와 따로 사는 세대들이 적지 않은 탓에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책의 제목이 그리 살갑게만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다가가지 못할 막연한 그리움같은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늦둥이로 또 유일한 혈육으로 태어난 나는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나마 뵈었을 뿐이고, 외할아버지 역시 뵙지 못했다. 그나마 외할머니는 어렴풋한 흐린 기억에 가물가물할 뿐이고, 그나마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낸탓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만큼은 문득문득 어린시절을 그리워하게 하게 한다. 

나처럼 이미 작고하신 두 할아버지의 무릎은 커녕 모습조차 뵙지 못한 처지와 달리, 요즘 할아버지들은 노년이라기보다 장년의 모습으로 예전의 할아버지보다 훠얼씬 젊으신 할아버지가 대부분이시다. 딸아이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시아버님만 해도 환갑도 되기전에 손녀를 보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일년에 고작해야 두세 번 많아도 너댓 번을 넘지 않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과거에 한울타리에서 삼대가 함께 생활하며 돈독한 유대를 쌓아가던 것에 비하면, 가까운 이웃보다 먼 사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사실 초등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웃의 친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녀가시기라도 하면 몹시 부러워하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 오시냐며 배 아파하던 딸아이였는데, 그것도 한때인지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처럼 오셔도 제 공간에서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 딸아이.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무릎은 고사하고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괜히.. '할아버지의 무릎'이라는 말에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라 주절주절 사설이 늘어졌다.^^;;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5년 동안 연재되었던 관옥 이현주 할아버지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는 정말 할아버지의 푸근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막 자신과 세상에 궁금증과 두려움이 솟아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넉넉하고 다사로운 목소리로 먼저 세상을 삶을 겪어낸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있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앉아보고픈 마음 간절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라는 큰 주제 속에 막막함과 두려움과 거부감, 피하고픈 마음, 궁금증과 호기심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질문이 든 이 책은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포켓북같아 막막함이 밀려올 때, 할아버지의 푸근한 가르침이 그리울 때 책장을 넘기면 좋을 것같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한국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말씀이 요즘 딸아이의 영어때문에 속으로만 고민하며 자칫 불안으로 빠져들 뻔한 내게 다시금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문득,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어쩌면 다시는 앉아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새삼스레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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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
줄리어스 레스터 지음, 김중철 옮김, 김세희 그림 / 검둥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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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농장의 노예'라는 수식어에 스토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책이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교과서를 통해 제일 먼저 접한 '노예'에 관한 이야기였던 탓이리라. 그리고, '노예'하면 떠오르는 것은 '노예해방운동'과 미국의 남북전쟁 정도가 고작이다. 더불어 우리가 기정사실인듯 알고 있는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지지는 사실상 어찌어찌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뿐... 링컨 대통령이 애초부너 노예해방의 선구자이거나 지지자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

이제는 먼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있었던 일쯤으로 여겨지는 노예제도.
사전(한컴사전)에 '노예'라는 말의 뜻이 '지난날, 완전한 권리·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남의 지배 밑에 여러 가지 노무에 종사하며 매매·양도의 목적이 되었던 사람' 으로, 또 위키백과에는 '지역차는 있으나 유사 이래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노예 제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에 국한되어 있던 문제만은 아니라는 말?  하긴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노비'라는 것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면, '노예'와 '노비'라는 말만 다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아니면 그들이 받던 취급(?)이 다르기라도 했을까? 문득, 그들이 어떻게 달랐으며 또 어떻게 같았을까...하는 궁금증이 떠오른다. 

아무튼, 어찌보면 비단 미국에서만 '사람이 사람을 소유'했던 것만은 분명 아닐텐데, 왜 '노예해방'하면 미국의 흑인들이 상징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역사적으로 엄청난 소용돌이가 될만큼 집단적이고 치열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국의 남북전쟁이 처음부터 노예문제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4년동안의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마치 노예해방을 주된 이유로 치뤄진 전쟁처럼 기억되는 것 역시 남북전쟁의 결과(성과)로 뚜렷하게 남은 것이 다름아닌 노예해방인 탓은 아닐까...... 

아무튼,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 이야기인 '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는 온전히 허구는 아닌 1959년 미국의 조지아 주 사바나에서 있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노예 경매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피어스 버틀러와 패니 켐블, 그리고 그들의 딸 세라와 프랜시스는 실제 인물들이며 경매되는 노예들의 이름과 팔린 가격 또한 사실 기록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니 더욱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특히, 연극의 대본을 대하는 것 같은 공간(장소)에서 등장인물들의 독백과 같이 펼쳐지는 이야기와 먼훗날 과거를 회상하는 막간극이 생소하듯 독특함을 느끼게도 하고 더불어 등장인물 각각의 마음이 더욱 실감나게 전해져 온다. 

어려서부터 버틀러 농장의 노예로 살아온 엠마의 부모인 윌과 매티,
예고도 없이 경매 현장에서 물건 건네듯 헨필드 농장으로 팔겨가는 엠마,
뼈아픈 과거를 겪고 헨필드 농장에서 충성하듯 살아가는 샘슨,
아버지 샘슨처럼 평생 노예로 살지 않겠다며 도망치는 찰스,
다양한 노예 소유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피어스 버틀러, 헨필드 부인, 샘 엘링턴...
노예 경매로 자신의 명성과 부를 얻으려는 노예 경매자 조지 윔스,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에 반발하는 패니 캠블과 세라 버틀러, 제러마이어 헨리, 

한마디로, '노예제도'와 관련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경매에 팔려가는 노예들의 가격을 통해, 상상만 해도 끔찍한 비인륜적인 노예제도를 다시금 생각케 하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 1859년 3월 2일과 3일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노예 경매가 조지아 주
사바나에서 있었다. 어떤 기록에는 노예 429명이 팔렸다고 하고, 어떤 기록에는 436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노예들은 피어스 버틀러의 재산이었고, 버틀러는 영국 배우이자 노예 폐지론자인 패니 켐블의 남편이었다. 켐블은 <조지아 농장의 거주 일지>란 책으로 오늘날 유명하다.



<작가의 말> 이 책은 피어스 버틀러와 패니 켐블과 그들의 아이들 삶에서 많은
사실을 끄집어냈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의 삶을 재창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와 허구가 혼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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