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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열다섯 살의 지오가 낯선,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온전히 낯설다고만은 할 수 없는, 한국땅에서의 또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그려지는 이야기로 알았다면, 그것은 독자 맘대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장정일 작가의 <해설>도 그렇고.
온전히 '캔들 플라워'를 쓰게된 작가의 동기(?)는 '촛불에 대한 이야기'에서 '용산 참사' 그리고 마침내 '2008년의 촛불문화제'로 구체화 되어 마침내 '캔들 플라워'로 피어나게 되었다고나 할까....(순전히 나의 제멋대로 풀이겠지만..)
미친 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문화제는 기댈 곳없는 국민과 국민을 지켜줄 마음조차 없는 정부간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1년을 훌쩍 넘긴 지금, 과연 긴장감 넘치던 줄다리기의 성패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느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현실로 판결내릴 수 없는 실제의 사건을(그것도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 보기좋게 소설의 재료로 선뜻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엔, 입국장에 나타난 소녀 지오에 대한 소개가 정말 장황(대단)하여, 지오 개인에게 일어나는 아주 중요한 일(기억조차 지워져 진짜인지 어쩐지조차 알 수 없는 쌍둥이 남동생? 혹은 오빠?... 아무튼 자신의 다른 한쪽을 찾는) 가운데 배경처럼 촛불문화제가 그려지는 정도가 아닐까 했었다.
그러나 왠걸... 장황한 지오의 배경과 엄청난 능력(정규교육도 받지 않고 자연에서 자라고 배우며, 화재사건이후 십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 놀라운 능력, 심지어 사물이나 동물, 식물과도 대화가 가능한)은 어쩌면 이야기 속에서의 쓰임새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넘치는 듯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니 자연 영어 가능할 것이고, 프랑스인인 할머니가 있으니 프랑스어 가능하고, 참으로 인위적이다 싶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한국인이니 한국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면 될 것 같고(전개상 무리인가??), 엄마의 애인인 인디언 조안 아줌마가 있으니 자연과의 대화도 가능하다 할 수 있겠고....그렇다고 볼 때 굳이 십여 개의 언어를 (그것도 사고의 후유증으로) 사용하는 엄청나게 특별한 존재로 부풀리지 않았어도 좋지않을까..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
지오가 열다섯 살 생일을 맞아 첫여행지로 일본대신 한국을 택한 것은 참으로 이유있는 선택이었음에도, 자신의 쌍뚱이 형제를 찾으려는 생각이나 노력이 참으로 낯설다. 아마도, 자연의 아이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있는 연유로 결국엔 2008 촛불문화제의 절정기를 함께 하는 지오. 지오와 함께 촛불문화제를 즐기는(?) 희영, 연우, 수아와 민기, 태연들.. 그리고 촛불문화제의 또 다른 참가자들(동지들)인 숙자씨와 홍씨 할아버지까지... 또 곳곳에서 등장하는 소녀들과 아가씨들, 가족들까지....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것이라고는 꺼지지 않고 따오르는 촛불 뿐인양 그렇게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던 촛불들....
문득, 작가는 왜 촛불을 밝힌 장본인들이 아닌 제3자일 수도 있는(온전히 제3자라고 하기엔 한국인의 피를 75%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오를 선택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아직은 무어라 판단하고 정의내리기 껄끄러운(그때의 정부가 아직도 진행중이므로) 사건인 촛불문화제에 대해 우리 내부의 누군가 나서기에는 시기 상조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우리와 상관없는 제3자의 누군가에게 맡기기에도 석연치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08년의 뜨겁게 타오르던 촛불의 붉은색이, 적잖이 낭만적인 주인공 지오의 순진무구함처럼 까만 어둠 속에서 적당히 번져가며 환상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으로 그려져, 자칫 치열한 생존(목숨과 직결된)의 상징이었던 촛불을 홀린듯 감상의 피사체로 그려낸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살짝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