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은 우연이겠지만 '감자'라는 주요 소재가 같다. 어미 개에서 '감자'는 어미 개의 이름이지만, 감자를 먹으며에서 감자가 일찌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가슴 속에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또는 동물)들이 있다. 그 상실감을 어떻게든 견디며 이 세상을 건너가게 된다. 어미 개에서 할머니와 감자는 자식들과 새끼들을 떠나 보내는 생이별을 겪는 체험을 공유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죽음의 문턱도 같이 넘는다. 감자를 먹으며에서 이오덕 선생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곧잘 쥐어주시던 뜨거운 감자의 기억과 기운으로 한평생을 사셨고 또 돌아가셨다. 삶과 죽음, 외로움과 그리움, 헤어짐과 만남(또는 부활)이라는 주제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정겹고 살갑게 들려주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마치 큰 나무같은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주름지고 마른 피부는 나무의 껍질같고, 넉넉한 품과 마음은 나무의 그늘같고, 변함없는 사랑은 나무의 뿌리같아서 언제든지 기대어 쉴 수 있는 존재.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또다시 생명을 잉태하는 나무처럼 할머니와 할어버지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꿈을 자라게 하는 것 같다.

 

핵가족시대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삶 그 자체의 숭고함과 재생의 꿈으로 승화되는 죽음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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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재미있는 시리즈이다. 화가가 꼬마곰이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들려준다.

 

고흐와 마티스는 그림책 작가가 원화를 옮겨 그린 것이고, 밀레는 원화의 사진 속에 꼬마곰을 합성한 형태이다. 고흐와 마티스의 그림을 훌륭하게 소화해서 모사한 작가의 재능에 경탄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밀레 편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림책 뒤에 따로 모아놓은 원화들을 보면서 원화를 합성한 장면에서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색감이나 구도 등이 밀레를 새롭게 보게 했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이주노동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보는 즐거움도 새로웠다.

 

고흐 편에는 아쉽게도 원화의 극히 일부만 싣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흐가 밀레의 <낮잠>이라는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작품이 들어 있었다. 밀레 편과 비교해서 보면 고흐가 밀레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마티스 편은 원화보다 그림책 작가의 모사 작품이 훨씬 좋게 느껴졌다. 모사한 그림들을 보며 느낀 색채의 마술이 원화에서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튼 세 거장의 작품들을 다양한 형태로 체험한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보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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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컨셉은 희망과 용기가 아닐런지. 아이들의 동심이 무엇보다 빛을 발하지만 그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동심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간직한 동화들이라 그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화요일의 두꺼비>는 아무리 책을 싫어하는 아이일지라도 쏙 빠져 들게끔 되어있다. 엄동설한 한겨울에 썰매를 타고 길을 나선 두꺼비가 올빼미에게 잡혔다면 그 결말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두꺼비는 어느새 올빼미의 꽁꽁 닫혔던 마음마저 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이름은 나답게>는 엄마가 없지만 가족과 친척들의 사랑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둘도 없는 말썽꾸러기 답게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이 커가는 과정을 답게의 나레이션만으로 이끌고가는 작가의 뚝심도 대단하다.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답게 자라는 일보다 보기 좋고 기분 좋은 일이 있겠는가.

 

<벌렁코 하영이>도 가난한 집안과 불행한 일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동심으로 상황을 헤쳐가는 드라마이다.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집 할머니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동심일 것이다.

 

<선생님은...>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새롭고 낯선 세상을 처음 대면하는 아이들이 조금씩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밝게 그리고 있다.

 

<가랑가랑...>은 보기 드문 동시조집이다. 시인이 봄부터 겨울까지 어릴 적 살던 고향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자연과 그리움을 전해주는 시들이다. 무엇이든 품고 아낌없이 주는 자연과 어머니는 어쩌면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서 노래하고 또 노래하면서 회복의 염원이 독자의 가슴에도 가닿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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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는 흥행 보증 수표나 마찬가지다. 어른과 아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마치 어린이를 보며 행복감을 느끼듯 어른은 이 책을 읽으며 근원적인 행복감에 빠져 든다.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양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 행복의 요체가 무엇일까. 매우 자주적이면서도 동시에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기애와 존중이 결국 같은 것임을 통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꽤나 깊기 때문이 아닐까.

 

개구리와 두꺼비는 이미 철학자나 마찬가지인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엉뚱하고 순수하다. 게다가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우정은 인류애와 맞먹을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세계 역시 확고하다. 이런 반어야말로 이 작가와 작품의 위대함이고 생명일 것이다.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 역시 반전이 돋보인다. 칠판 앞에 나가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배까지 아픈 주인공이 자신처럼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걸 몹시 어려워하는 선생님을 보고는 갑자기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자원해서 칠판 앞에 나간 주인공은 드디어 칠판 공포증에서 벗어나게 된다.

 

칠판 공포증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두려움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래서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앞에 나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그 어떤 말보다 강함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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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두 작품은 작가 특유의 풍자가 돋보인다.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어서 아이들은 현실의 모순이나 긴장을 발견하고 해소할 수 있다. 본격적인 판타지 소설에 입문하기 전 저학년들이 문학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지현 작가도 판타지를 활용하여 자아와 생활의 재발견을 돕는다. 점점 더 이웃과 소외되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추리소설 기법을 동원하여 흥미있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의 동굴에서 빠져 나와 이웃과의 만남과 연대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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