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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아마 3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근에 읽은 책처럼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시 원서로 읽으며 감상문을 빼곡하게 적어두었던 덕분일까. 그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글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다시 펼친 지금, 새롭게 떠오른 감상은 분명하다.
이번에 읽으며 깨달은 것은, 데미안과 에바 부인이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싱클레어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와 운명을 형상화한 존재들이다. 마치 꿈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의 다른 모습일 수 있듯이 말이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사건들이 모두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경계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싱클레어가 어떤 형상 때문에 괴로워하던 순간이다. 그는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고, 거기에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 에바 부인이 함께 있었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이상적인 여인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싱클레어 역시 자신이 그린 여인을 현실에서, 데미안의 집에서 만나게 된다. 에바 부인을 사랑하게 된 것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게 된 것과 같은 의미였다.
데미안이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싱클레어가 이제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밖을 바라볼 필요 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이미 자기 안에 존재하는, 자신보다 훨씬 현명하고 강인한 자아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더는 누군가에게 구원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내면을 강렬하게 형상화한 존재들이다. 이 형상화는 그들에게 놀라운 생명력을 부여했고, 독자들의 마음에도 깊이 각인되었다. 그렇게 소설 속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아와 운명의 모델이 된다.
나 또한 생각해본다. 나의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까. 내 안에서 아직 끄집어내지 못한, 그러나 언젠가 만나게 될 그 형상은 무엇일까. 자연과 야생, 생명의 외침처럼 거칠고 순수한 무엇, 바로 그 형상을 나도 만나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始原)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인간이 되기를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유래가 같다. 어머니가 같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풀이를 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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