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대로(살던 대로) 살면 편하고 쉽다. 그러나 방향을 전환하고 새로운 걸 시작하려면 마찰력 때문에 처음엔 힘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찰력은 점점 약해지고 다시 관성이 생기기 시작해 점점 쉬워진다. 새로운 일에 적응이 되면 다시 편하고 쉽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익숙함과 낯섬의 반복으로 유지된다. 만약 익숙한 일만 하거나 낯선 일만 한다면 어떨까? 너무 지루하거나 너무 긴장되거나 할 것이다.
공부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떠나는 것이다. 관성대로 생각하고 보고 느끼고 믿던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탐구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한 여정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항상 똑같은 생활을 한다면 굳이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 오늘의 일에서 뭔가를 성찰하고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이순신 장군은 무려 ?년 동안 <난중일기>를 썼다. <조선왕조실록>은 500년 동안의 기록이다. 그런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거울삼아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공부란 생각하고 탐구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좀 더 나은 삶이란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행복한 삶이다. 만약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괴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을 하더라도 올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해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의 생각이 올바른 것인지 비춰볼 거울이 필요하다. 독서라든지 체험(여행이나 경험)이라든지 관찰이나 실험이라든지 스승이나 존경할만한 친구들이라든지 가족과 같은 다양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춰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의 삶을 연구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연구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남의 연구의 실험용 쥐가 되어서 자유와 행복을 빼앗기고 말지도 모른다. 탐구한다는 것은 나와 주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한다. 나와 자연, 나와 이웃, 나와 사회, 나와 역사, 나와 우주 등등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올바로 관계 맺고 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탐구는 탐구 그 자체에 기쁨이 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거나 보물을 발견하는 느낌일 것이다.
생각하고 탐구하는 과정에 기록이 빠질 수 없다.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보면서 기억을 간직한다. 왜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는 것일까? 돌, 결혼식, 졸업, 여행 사진 등등 특별한 날에 사진을 찍는 이유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순간을 붙들어두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를수록 그런 기록은 더욱 소중해진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록을 통해서이다. 한편으로 시간 또는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한다. 좋은 것이 반복된다면 괜찮겠지만, 나쁜 것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탐구(질문)한다는 것이며, 기록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를 알려면 내가 더 행복해졌는지를 보면 될 것이다. 만약 행복해지지 않았다면 잘못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변화되고 있다면 그 속에 기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 변화가 없는 상태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지겨울 것이고, 아무리 게임을 좋아해도 똑같은 게임만 한다면 지겨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한다면 나는 점점 더 많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변할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식을 배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은 이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알 수 있는 지식을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다. 찾아낸 정보를 활용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공부다. 교과서를 읽든 독서를 하든 실험관찰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만들든 글을 쓰든 스포츠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새로움이 없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기쁘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점이 있는 변화를 느낄 때 기쁨을 느낀다. 그런 기쁨이 없다면 힘들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
변화는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만 나의 기쁨만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변화에도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때 나의 기쁨도 나눌 수 있다. 기쁨은 나눌 수 있을 때 더욱 커진다. 나와 세상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세상과 동떨어진 채나의 기쁨에만 머물지 않고 나의 기쁨을 같이 나눌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는 나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의 삶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과 자연과 역사와 우주 등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이 나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이 세상에 나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일은 없다. 어떤 질문을 품고 그 답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 굉장히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모든 게 달라 보인다. 꼭 알고 싶은 게 생기면 늘 유심히 관찰하고 곰곰 생각하고 질문하고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호기심과 열정은 점점 더 커진다. 그래서 공부는 죽는 순간까지 끝이 없다. 죽기 전까지 공부하는 사람은 아마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늘 새로운 발견 속에서 기쁨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