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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종종 존재와 생성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 점철되어 왔으며 현대과학이 자연의 변환들의 핵심에 있는 영원한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는 만큼이나 자연에 대한 전망이 다중적이고 시간적이며 복잡한 것을 향하여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그 변화들 중에서 “시간적인 대칭성을 내포하는 동역학과 방향성을 띤 시간을 지닌 열역학 제2법칙 간의 충돌”을 기술하고 있으며 “비가역성은 모든 수준들에서 질서의 근원”이라는 새로운 통합을 시도하면서 “실재에 관한 개념에 지적인 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과율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라는 장벽이 필요하듯이 교신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장벽이 필요하다. 상대성이론 전체는 ‘관측할 수 없는’ 동시성들의 제외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상대론은 관측, 즉 자연과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 간의 교신이 불가능하다. 열역학에서는 시간에서의 비대칭성, 즉 엔트로피는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방향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신할 수 있다. 제2법칙의 확률적 해석역시 엔트로피가 시간의 대칭성을 파괴하는 선택원리라는 결론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오직 새로운 선택원리의 도입을 통하여 동역학과 열역학의 통합이 이루어질 때 제2법칙에 과학의 진화론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다.

  동역학의 세계는 가역적인 세계이며 진화가 있을 수 없지만 최소한의 복잡성이 있으면 물리학에도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이 설정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동역학적인 대상이 아니며 인간의 수준에서 비가역성은 보다 근본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비가역성에 관한 내적 느낌을 외부세계와 소외시키는 주관적인 인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보아야 한다. 비가역성의 근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가역성이 의미하는 바는 객관적이고 참여적인 모두로서의 지식에 관한 개념일 것이다. 시간의 방향성을 띠지 않은 과학적 활동은 없다. 우리가 가역적인 운동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비가역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가 기술하는 우주의 일부인 것이다.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시간의 화살 혹은 진화론적인 리듬의 역할이 증가한다. 시간의 화살이 무질서를 내포한다는 것은 ‘시간은 구성’이라고 한 발레리의 전언처럼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찰스 피어스의 말처럼 장기적으로 볼 때 소산적인 힘과 장기적으로 볼 때 집중적인 우연의 두 경향이 균형을 이루는 한 점이 우주의 실제 조건인지도 모른다.

  과학은 이제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수준들 모두에서 객관적인 실재의 개념을 제거하고 예기치 않은 것에 대하여 개방되어 있다. 계의 한 상태 안에 요약된 대로의 초기조건들이 존재와 관련되어 있으며 시간적인 변화를 포함한 법칙들은 생성과 관련되어 있다. 존재와 생성은 서로 대립되어서는 안 되고 실재의 두 가지 관련된 양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예술적인 활동은 대상물의 시간적 대칭성을 파괴하여 우리의 시간적인 비대칭성을 대상물의 시간적인 비대칭성으로 번역하는 예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구성이며 따라서 윤리적 책임을 지니고 있음을 안다. 엄청나게 복잡한 계들인 사회는 요동에 극도로 예민함을 알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고도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는 그 이전의 파편들의 혼돈상태의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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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연금술의 목표가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동양에서는 금도 만들지만 더 궁극적인 목적은 불로장생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불로장생의 개념은 서양에서는 나중에 아랍 시대에 가서 처음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도 중국에서 온 것 같다.

이집트의 금속기술하고 마술(magic), 바빌로니아의 점성술, 그리스도교 신학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 볼 때 이교의 여러 신화들, 그 다음에 그노시스철학, 그 다음에 헬레니즘. 카발라는 또 다른 유대교.. 그렇지만 다 관련이 있다. 그 다음에 플라톤 이후에 헬레니즘 시대에 플로티노스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일어난 신플라톤주의 이런 게 섞여 있는 복잡한 것이 서양 연금술이다.

자비르 이븐 하얀은 만물이 황과 수은으로 되어 있다는 건데 이것은 4원소설의 축소판이다. 4원소의 불이 황이 되었고 그 다음에 물이 수은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공기하고 흙은 빼고 4원소를 둘로 줄여서 모든 것이 이 두 가지로 되어있다는 황수은설에 따르면 황과 수은이 가장 순수한 상태로 결합된 것이 금이나 은이고, 거기에 불순물이 섞이면 그것이 구리도 되고 철도 되고 납도 되고 이렇게 귀금속과 비금속이 구분된다. 그래서 아랍연금술에서는 뭔가 일을 할 때에도 실험을 할 때에도 자꾸 씻는다. 불순물을 없앤다 것이고 액체도 증류를 한다. 그게 일종의 정화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증류라는 것이 아랍 연금술에서 아주 중요하고 이 사람들이 처음 증류주를 만든 것이다.

그 다음에 알라지al-Razi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의사이다. 연금술이 의학과 제대로 결합한 것이 바로 이 때라고 한다. 아랍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으로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아비케나의 철학은 아주 방대하다. 이 사람은 연금술을 부정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물체는 변환이 안된다는 것이 아비케나의 주장이었다.

로버트 오브 체스터, 로저 베이컨, 알베르트 마그누스는 중세 연금술 이론가인데 간단하게 말해서 이 사람들의 연금술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물질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것인가 이것이 이 사람들의 목표였다. 금속의 변환이 연금술의 주목표였고 이 연금술은 신비주의와 과학이 섞여 있는 것인데 이걸 학자들이 ‘내적연금술’, ‘외적연금술’로 나누어서 외적연금술이 실제로 실험실에서 작업을 하면서 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내적연금술은 정신의 순화 쪽으로 발전시킨 것이 칼 융이 있다. 이 신비주의, 과학,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게 연금술인데 거기에서 과학의 요소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추적해 가면 화학으로 넘어오게 된다.

결국 연금술은 금을 만들려는 원래의 목표는 실패했지만 그것을 만들려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산물이 나와서 알콜도 만들었고 여러 가지 산도 만들었고 새로운 금속도 발견했고. 이것이 뜻하지 않았던 소득이라는 점에서 연금술이 그래도 헛일은 아니었다. 그런 작업이 근대 화학이 나오는 기초를 이루었다

파라켈수스는 스위스 바젤대학의 화학교수, 약학교수라 할 수 있고, 의사이기도 하고. 이 사람은 철학적으로는 경험론의 전통에 서있고 그래서 이 사람이 강의실에 갈레노스의 책과 아비케나의 책을 갖고 들어와서 강의하기 전에 그것에 대해 욕설을 퍼부으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거나 불을 붙여 태워버리는 쇼를 하며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건 뭐냐하면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을 갈레노스와 아비케나가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이 사람들의 의학을 거부하고 다시 히포크라테스의 순수한 원시의학으로 돌아가게 할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루터가 부패한 카톨릭 교회를 거부하고 원시 그리스도교로 돌아가려고 했던 건데 그것을 자기가 화학이나 의학에서 한번 똑같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라켈수스를 ‘의학의 루터’ 아니면 ‘화학의 루터’라고도 부fms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어떤 도그마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은 사람으로 파라켈수스는 황수은설에 흙을 덧붙여서 황이 불이고 수은이 물이라면 여기에 흙을 합해서 이것이 3원리(tria prima)라는 것이고 이 3원리가 우주를 이루는 기본 물질이라는 것이다. 화학의 목적은 약을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이 파라켈수스의 주장이었고 갈레노스, 아비케나 모두 생약, 천연약을 썼는데 파라켈수스는 약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야한다고 해서 광물성 약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파라켈수스의 특징이고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1556년에 <금속에 관하여> 라는 유명한 책이 나오는데 이 책을 쓴 사람이 게오르크 바우어, 라틴이름은 게오르구스 아그리콜라이다. 아그리콜라는 원래 의사인데 이 사람이 광산에서 일을 해서 광부들이 일하는 과정을 늘 눈여겨 봤기 때문에 금속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금속학, 금속 야금 장인들이 하는 일을 기록한 책이 지금도 영문 번역판이 계속 찍혀나올 정도로 평가를 받고 금속학의 온갖 정보가 집대성된 아주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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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학사학자 엘렌느 메츠제가 화학의 기원을 첫째는 금속학, 둘째는 연금술, 그 다음에 의학 이렇게 세 가지를 기원로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에서 보면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서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겹치는 부분이 많다. 연금술은 2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금속학과 의학이 처음부터 화학과 관련이 깊지만 16세기에 와서 근대화학이 나오기 직전에 큰 구실을 했다.

먼저 금속학의 전통에 대해서 보면, 인류문명에서 불의 발견이 큰 사건이었다. 특히 불을 가지고 금속을 벼리기 시작했을 때 문명의 불이 붙었다. 여러 가지 금속이 있는데 화학기호로 본다면 Cu, Au, Ag, Pb, Sn, Fe 뭐 이런 것들인데, 제일 먼저 많이 쓰인 것이 구리Cu다. 구리를 단단하게 하려고 한 합금의 대표적인 놋쇠는 구리하고 주석Sn하고 섞인 것이다. 그러니까 Copper하고 Tin하고 합해서 Bronze가 된다.

그 다음에 금하고 은이 섞이면 누렇던 금이 흰빛을 띠게 되는데 그걸 그 때는 백금이라고도 불렀다. white gold라고 부르는데 플래티늄하고는 다른 것이다. 진짜 백금은 플래티늄Pt이다. 고대의 금세공술이 굉장히 발달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도자기인데 처음에는 토기로 시작해서 유약이라는 화학 물질을 토기에 발라서 구우면 번들번들 빛이 나는 도기, 자기가 발달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유리를 발견하게 된다. 유리는 규소Si. 요새 말로 실리콘인데, 실리콘하고 모래하고 섞여 가지고 고열에 녹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주 투명한 맑은 액체가 굳어가지고 유리가 나왔다. 경주박물관에 가면 유리제품들이 있는데 그게 페르시아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신라는 유리 공업을 발전시켜서 유리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런 것이 모두 화학에 관계된 것이고 그 밖에도 양조술(술 담그는 것), 천을 직조하면서 물들이는 것(염색), 이런 것이 모두 화학에 관계되는 고대의 성과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고 아직 과학이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화학이 물질의 과학이니까 결국 물질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스 자연철학에서는 처음에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했다. 철학의 시조라고 하는 탈레스는 아르케는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고 그 다음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다.

고대에도 물질이 아니라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to apeiron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한자다. unlimited 또는 boundless. 무언가 분명하게 결정할 수 없는 것, 무한한 존재 이것이 우주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에 파르메니데스는 이것을 ‘존재being’라는 것으로 본다. 그 다음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기본을 '수number'라고 했다. 이 경우의 수라는 것은 산술적인 수라기보다 기하학적인 점이 하나하나 쌓여서 마치 원자가 모여서 물질이 된 것처럼 우주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피타고라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부터 내려오는 우화를 빌려서 우주의 기원을 설명했는데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는 원초적인 물질이 대혼돈chaos 상태에 있는 것을 신demiurgos이 여기에 질서를 불어넣어서 질서정연한 우주kosmos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초적인 상태에서의 재료가 된 4원소를 가지고 신demiurgos이 질서있는 우주를 만들 때 그것을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4원소 중에 흙은 고정되어 있는데 나머지 불, 공기, 물은 서로 합쳐서 딴 게 될 수도 있고 나눠져서 두 가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고 이렇게 상호가변적인 서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주를 완전히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기하학적인 연금술’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에는 재료가 있고 그 재료를 지배하는 원리 같은 것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보았다. primary matter에 네 가지 성질이 부가되어서 그 원소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네 가지 성질은 hot뜨거운 것, cold찬 것, dry마른 것, moist 습한 것으로 나뉘어진다. 붉, 흙, 물, 공기 그 다음에 뜨거운 것, 마른 것, 찬 것, 축축한 것. 이렇게 보면 어떤 원소는 primary matter를 기본으로 해서 네 가지 성질이 섞여 있는데 거기에서 적극적인 성질에서 하나, 소극적인 성질에서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세하다. 그런데 어느 것이 우세하냐에 따라 원소의 성질이 정해진다. 불은 제1질료의 네 가지 성질이 섞여 있는데 거기에서 뜨거운 성질과 마른 성질이 우세한 것이 불입니다. 그 다음에 흙은 뭐냐 하면 찬 성질과 마른 성질이 우세한 것이 흙이고, 물은 축축한 것과 찬 것이 우세한 것이 물이에요. 그럴 듯 하죠. 공기는 뜨거운 것과 축축한 것. 이런 식으로 된다. 이건 결국 우리가 어떤 외부에 조작을 가해서 성질의 비를 바꿀 수만 있다면 원소 자체가 바뀔 수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플라톤의 경우에는 흙 하나는 고정이고 나머지 세 원소가 수학적인 원리로 서로 왔다갔다 할 수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가면 흙을 포함한 4원소가 자유자재로 어떤 조작에 의해서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있게 된다. 이게 나중에 연금술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원자론에 오면 모든 것이 같은 원자라는 단위로 설명이 되고 차이는 양적인 차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질이 같은 원자로 이루어진 우주이지만 이것이 양이 많으냐 적으냐 그 모양이 어떻게 결합했느냐에 따라서 삼라만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외부의 원인에 따라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원인에 따라서 운동을 한다. 따라서 원자의 운동에는 목적이 없고 제 멋대로 운동을 한다. 그 결과 그때그때 결합과 분리에 따라서 다른 세계가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과거도 그렇고 앞으로의 세계도 원자의 결합분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떻게 보면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원자론의 기본 입장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될 것은 이런 물질이론이 경험적인 어떤 연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변적인,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경험하고 아주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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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가 뉴턴을 찾아가서 ‘어떤 행성이 행성과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따라서 줄어든다면 그 궤도는 어떤 것이냐’하고 물으니까 뉴턴이 그 자리에서 ‘그건 타원이다’ 했다. 헬리가 출판비용까지 자기가 대겠다고 해서 억지로 우겨서 결국 쓰게 된 게 프린키피아다.

뉴턴 역학의 가장 중요한 것이 ‘중력’인데 중력은 거리가 떨어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따르면 물체의 운동은 강제운동이다. 강제운동의 경우는 힘과 물체가 접촉해 있어야 밀거나 끌 때 운동이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접촉물리학’이라고 한다. 결국 뉴턴은 지상의 운동하는 물체에 적용되는 물리학이 바로 천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줘서 아리스토텔레스이래 달을 중심으로 해서 천상계와 지상계가 전혀 다른 세계로 나뉘어있었는데 이 둘을 통일했다.

직선적인 관성을 발견한 것이 데카르트이고 데카르트는 뛰어난 직관으로 이것을 발견했다는데 뉴턴은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했다. 뉴턴은 완전히 경험을 무시하고 끝까지 수학적인 추론을 해서 결국 직선적인 관성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런 점에서 갈릴레오 비슷하게 이성과 경험을 조화시키고 종합했으면서도 더 완벽한 경지까지 갈 수 있었다.

광학책은 주로 경험적인 방법에 의존한 책이고 프린키피아는 수학적인 방법에 의존했고 그래서 융통성 있게 경우에 따라서 그 둘을 자유자재로 쓴 것이 뉴턴이라고 볼 수 있다. 옵틱스에서 “Hypothesis non fingo(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는 말을 했다. 데카르트 같이 경험으로 진위가 판명될 수 없는 허황된 가설, 그런 가설은 안 만든다, 가설 일반을 부정하는 얘기가 아니라 데카르트류의 가설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이 대개 뉴턴과 로크가 영웅이다. 뉴턴 물리학을 모든 학문에 적용하려고 한 것이 이 사람들의 꿈이었다. 18세기 말에 가면 화학에서 라봐지에가 뉴턴의 물리학을 화학에 적용하려 그랬고 19세기에 가면 뵈퐁, 다윈도 결국 뉴턴 물리학을 생물학에 적용한 사람들이다. 광학에서는 19세기에 가서야 가령 파동설 같은 것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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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계에서는 원운동, 지상계에서는 직선운동. 갈릴레오 이전의 과학에서 천문학은 천체에 적용되는 과학이고 물리학은 지상에 적용되는 과학이었다. 행성인 목성이 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행성들이 지구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증거가 되었다. 그 다음에 금성의 위상을 발견했는데 이건 상당히 중요한 발견이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중요한 발견은 태양의 흑점을 관측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질적인 관측을 해서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뒷받침했다. 상당히 일반에게 영향력이 큰 내용, 복잡한 수식이 아니고 기계를 가지고 천체를 관측한 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하니까 일반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다. 케플러는 양적인 관측으로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지지했고 갈릴레오는 질적인 관측, 그리고 또 하나가 역학이다. 역학은 운동의 과학인데 보통 고대역학은 ‘정역학’으로 가만히 멈추어 있는 물체를 다룬 것인데 근대에 오면 ‘동역학’이 된다. 고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아주 중요한데 천상계는 모든 것이 완전하고 따라서 그 운동은 완전을 상징하는 원운동이다 이렇게 보았고 지상의 운동은 원운동이 아니라 직선운동이라고 했다. 직선운동에는 첫째 자연운동이 있다. 물체를 내버려두면 지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서 스스로 멈추는게 바로 자연운동이다. 둘째 강제운동은 물체에 힘을 가해서 그 물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게, 억지로 가게 하는 운동으로 거긴 힘이 필요하다. 그 둘을 완전히 구분했다. 공을 던져 쭉 갈 때에는 강제운동을 하고 힘이 다 빠지면 땅에 떨어진다는 설명에 대해 중세 impetus역학이 이의를 다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강제운동은 투사체운동으로 이 운동은 공기가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공에 힘이 가해지면 그 힘이 물체에 옮겨가서 그 물체가 가진 impetus가 물체를 계속 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정해서 설명한다.


물체가 떨어질 때의 가속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을 했고 투사체운동은 수평운동과 수직운동 두 운동의 합성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는 똑바로 가서 똑바로 떨어진다 이렇게 봤는데 그게 아니고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처음부터 섞여가지고 이것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린다고 했다.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섞여서 이것이 날카로운 각을 이루지 않고 포물운동을 한다고 했다. 행성이 지구도 그렇고 태양의 주위를 도는데 그것이 어떻게 붙어 있느냐, 이것을 일종의 우주공간에 행성이 마치 우리가 땅에서 공을 던지듯이 ‘던져진 것’ 그러니까 행성이 우주 공간으로 도망가려는 경향이 있고 지구는 그것을 잡아다니고 그 둘이 적당히 섞여가지고 원궤도, 타원궤도에 붙어 있다. 어쨌든 갈릴레오는 질적인 관측하고 새로운 역학을 가지고 코페르니쿠스를 강력히 뒷받침했다.


한동안은 카톨릭교회는 갈릴레오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싸움에서 오히려 갈릴레오 편을 들었다. 그리고 카톨릭교회의 이론가들이 모인 예수회 출신자들이 모두 갈릴레오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교회가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돌렸느냐?! 그것은 갈릴레오를 한 번 본때를 보임으로써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성서를 함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경고를 주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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