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메난드로스 희극
메난드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2월
평점 :
그리스 희극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메난드로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희극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연다.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은 단순히 웃음과 풍자를 넘어 인간의 일상과 보편적 감정을 탐구하며, 이후 서양 문학 전반과 현대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그리스 문학이 호메로스 이후 비극과 희극의 장르를 통해 인류사에 남긴 깊은 족적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메난드로스의 희극은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명이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며 나타난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스 사회는 농경과 상업, 나아가 약탈 경제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를 영위했다. 전쟁과 평화는 이들의 주요한 주제였고, 이는 초기 그리스 문학에 깊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제국으로 향하던 그리스가 좌절을 겪고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학과 예술의 중심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희극은 폴리스의 공동체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감정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새로운 경향은 메난드로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며, 그의 유려한 문체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은 당대 사회적, 문화적 전환을 문학적으로 구현해낸다.
메난드로스는 폴리스의 공동체주의 문화에서 중앙집권적 체제의 개인주의 문화로의 변천을 희극 속에 반영했다. 그의 희극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던 고희극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인간 보편적 정서와 일상의 고민을 담아낸다. 이는 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주의적 전환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동체와의 연결은 점차 희미해지고, 넓어진 세계 속에서 개개인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난드로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메난드로스의 작품은 일상의 인물들과 그들의 감정을 희극의 중심으로 소환한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히 웃음을 넘어,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탐구하며 일상 세계를 확장하는 문학적 과업을 수행한다. 그의 희극 속 인물들은 영웅적이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메난드로스는 왜소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그리스 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은 단순한 시대적 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학적 혁신이다. 정치적 풍자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과 보편적 감정에 다가선 그의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탐구를 통해 희극의 지평을 넓혔다. 메난드로스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찾으라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의 문학이 가진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 멋진 주연을 벌여야 해요, 아버지. 그리고 여자들은 밤새도록 시중을 들어야 해요. -그 반대로 해야지. 여자들은 마시고 우리가 밤새도록 일해야 해. 내가 지금 가서 너희들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겠다. -그렇게 하세요. (관객에게) 현명한 사람은 어떤 일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돼요. 끈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어요! 내가 바로 그 진리의 살아있는 증거라오. 세상에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던 결혼을 나는 하루 만에 이루어냈으니 말이오. (‘심술쟁이‘中에서) - P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