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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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읽었는데, 우연찮게 김애란의 첫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두 작가는 10년의 시차를 두고, 모두 20대 초반에 자신의 첫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만큼 일찍이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젖힌 셈이다.

한강을 먼저 읽었기에 자연스레 두 작가를 비교하게 된다. 세대의 간극은 분명 존재하지만, 김애란의 문체에는 한강보다 훨씬 발랄하고 명랑한 결이 흐른다. 두 작가 모두 가족의 상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한강의 인물들은 상처를 자학적으로 감내하며, 때로는 그 고통의 심연 속에서 자각의 순간에 이른다. 자신보다 더 깊은 상처를 지닌 타자를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고통을 객관화하고, 그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타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의 고통을 낯설게 하고, 그 낯섦이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

반면 김애란의 인물들은 해학을 통해 상처를 견뎌낸다. 그들에게 상처를 준 이들—주로 아버지—는 여전히 상상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거나 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나와 같은 우주의 먼지처럼, 각자의 궤도를 도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김애란의 세계에서도 상처는 결국 나와 타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그 의미를 달리한다.

한강의 소설이 눈물을 자아내는 깊은 슬픔의 강을 품고 있다면, 김애란의 소설은 웃음 속에 스며든 비애의 결을 간직하고 있다. 두 작가 모두 가난하고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헐벗은, 그러나 건강한 자화상을 비춘다. 그들의 첫 소설집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20년, 30년이 흘렀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의 한국소설은, 그 이후의 우리 사회를 어떤 얼굴로 그리고 있을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자주 상상한다. 나는 내게서 당신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상상을 빌려오는 사람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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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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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이 다 있다니 —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페이지를 건너뛰듯 더듬으며 읽어가자 차츰 그 낯섦에 익숙해졌고, 마침내 깊은 감동에 이르렀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여섯 인물의 내면 독백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구성은 희곡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시처럼 울린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서사시라 불러도 좋을 작품이다.

브루노 스넬이 『정신의 발견』에서 말했듯, 서구 정신의 첫 단계는 호메로스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언어가 세계를 만들었다면, 울프의 『파도』는 현대 정신을 새로이 빚은 서사시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문장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그 언어의 진동은 장자의 세계관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사물의 본성을 통찰했다는 점에서 루크레티우스와 장자, 그리고 울프는 서로 닮아 있다. 그들의 언어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사물과의 합일로 이해한다. 죽는다는 것은 단지 파도나 바위,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는 일이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동일한 물질적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그 인식이야말로 삶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게 한다.

카뮈가 『시지프스 신화』에서 반항하는 인간을 넘어 ‘사랑하는 인간’을 이야기했듯, 이타성은 바로 그 자각에서 싹튼다. 울프의 세계에서 중년의 버나드는 그러한 존재다. 그는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적에 맞서 투사로 성장하며, 그 반항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파도가 부서짐으로써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삶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파도의 리듬처럼, 멈추지 않는다.

이제 묻노라,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버나드, 네빌, 지니, 수잔, 로우다, 그리고 루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지만 나는 그들 모두인가? 별개의 존재인가? 모르겠다. 우리는 다 같이 여기에 앉아 있었지만 퍼서벌은 죽었고, 로우다도 죽었다. 우리는 흩어져서 지금 여기에 없다. 하지만 우리를 갈라놓는 어떤 장애물도 찾아볼 수 없어. 나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너다’라고 느꼈다. 우리가 그토록 대단하게 생각하는 차이도,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개성도 정복되었다. 그렇다, 친애하는 컨스터블 부인이 스펀지를 들고 머리부터 따뜻한 물을 몸에 들어부은 이래 나는 민감한 지각력을 지니게 되었다. 내 이마에는 퍼서벌이 낙마했을 때 받은 상처가 있다. 내 목덜미에는 지니가 루이스에게 키스한 자국이 있다. 나의 두 눈에는 수잔의 눈물이 가득 찬다. 저 멀리 로우다가 본 기둥이 금색 실처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녀가 튀어올랐을 때 그 비상이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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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강의 4 : 제풍·진풍·조풍 고전완독 시리즈 4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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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의 시를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시대적 맥락과 배경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 저자는 시 자체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읽으면 시를 향유하는 폭이 훨씬 넓어진다. 나아가 나름대로 종합적이고 비판적인 해석의 여지도 생긴다.

시만으로는 알기 힘든 희대의 스캔들이나 복잡한 역사적 사건들도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시경을 재해석하는 주석의 역사를 참고하며 저자가 안내하는 또 다른 읽기 방법을 따라가는 경험은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

한 편씩 넓고 깊게 시를 음미하다 보면, 동아시아인의 보편적 정신에 조금 더 다가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오래된 미래가, 시경 속에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즉변! 만사는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변화하기 마련인 법, 사람 사는 세상도 예외는 아니지요.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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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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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07-250711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헤로도토스의 신화적 서사와는 달리,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지향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사건의 인과를 연대순으로 분석하려는 그의 태도는 역사학자로서의 진지함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연설문, 서한, 조약문의 기록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문학적 아름다움과 논리의 정교함,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었다. 때로는 전장의 현장감마저 생생하게 전달되어, 수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마치 오늘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글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며,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놓이게 만들었다.

물론,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는 일은 어쩌면 문학이나 철학의 몫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또한 자신만의 관점으로 인과관계를 재구성해, 하나의 진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투퀴디데스는 보여주었다.

그가 밝힌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근본 원인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 급성장한 아테나이를 경계한 스파르타를 비롯한 주변 도시국가들의 두려움이었다. 힘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인간 본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망은 결국 갈등을 낳고, 파국으로 이어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국가 사이의 관계도 조화와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은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테나이의 민주정에 대해서도 투퀴디데스는 분명한 평가를 남긴다. 제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이 시민들은 도시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내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정 또한 개인의 야망에 휘둘릴 수 있으며, 여론의 선동에 의해 파국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던진다. 제도의 완벽함이 아닌,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품성과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운다.

이 기록은 전쟁 21년차인 기원전 411년에서 멈추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크세노폰이 이어나간다. 페르시아 전쟁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하여 한 번에 정리되기 어렵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반복되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복기하고 성찰해야 한다. 역사의 기록은, 그래서 늘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잊지 말라"고.

라케다이몬인들이 이처럼 조약이 깨졌으니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표결한 이유는 동맹국의 말에 설득되어서라기보다는 헬라스의 대부분이 아테나이의 통제 아래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아테나이의 세력이 더욱더 커지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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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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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흡입력 있는 드라마가 그러하듯, 이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인물들에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이자 화자인 ‘몸’은 파리에서 만난 미국인 앨리엇을 통해, 그의 가족이 있는 시카고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이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며, 그들의 삶의 궤적이 한 겹씩 펼쳐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네 명의 인물이 있다. 앨리엇의 조카 이사벨, 그녀와 약혼한 래리, 래리의 절친이자 이사벨을 사랑하는 그레이, 그리고 모두의 친구인 소피. 이들은 신생 강국 미국의 전형적인 이상과 성향을 반영하는 인물들이다.

이사벨은 현실주의자다. 그녀는 이상주의자 래리를 사랑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을 끝내 함께 걸을 수 없음을 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그레이와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안정된 삶을 택한다. 소피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뒤 술과 마약, 방탕에 빠지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래리는 끝끝내 자신의 이상, 즉 자기 완성의 길을 걷는다. 그레이는 대공황으로 몰락했지만, 이사벨의 외삼촌이 남긴 유산 덕분에 다시 일어선다.

이들의 삶은 미국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래리와 소피처럼 내면의 진실과 열정을 좇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이사벨과 그레이처럼 부와 안정,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이 다수다. 그렇다면 그런 미국의 미래는 과연 희망적인가?

화자인 몸은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결국 각자의 욕망을 실현했기에, 이 이야기는 하나의 성공담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늘 성공담을 좋아하니, 그는 이 결론에 나름의 만족을 표한다. 그러나 존경받는 원로 작가로서, 그의 이러한 태도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그토록 신뢰하고 따랐던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분명한 지침이나 충고를 주지 않았다. 이미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의 작가로서, 미국이 영국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일깨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래리는 자신의 바람대로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운 인간 집단에 흡수되었다.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괴로워하고 세상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며, 선(善)을 강렬히 소망하면서도 외부에 대해서는 독단적이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매우 소심한 인간들, 친절하지만 까다롭고, 남을 잘 믿으면서도 의심이 강하며, 야비하면서도 너그러운 미국인들 속에 흡수되어 버렸다.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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