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회화의 이해
안휘준 지음 / 시공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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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주 우연히 조선 초기니 후기니, 안견과 정선 등 고교시절 국사책에서 들어봄직한 사람들의 이름을 접했고 그리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국회화의 이해>란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 아니, 내가 고분벽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하고,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큰 의미가 있을줄이야...

(한국 회화 애호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날 죽이겠다 하겠지만...솔직한 나의 심정으로는 그닥 큰 의미를 찾을수가 없음은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건 무지 하기 때문에 그런것이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접한다면 나도 그네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어떤 의미를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회화의 기원 - 그림(낙서)그리기의 기원 - 은 인류의 문명이나 예술의 발생과 아주 밀접하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등의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이러한 벽화들은 모두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기능과 인류의 생존이나 생활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실용적인 목적을 담고 있다. 그러다 점점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다보니 그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즐거움과 수양을 목적으로 즉, 감상적 목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회화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회화는 주제나 소재의 면에서 인간과 자연, 신, 우주에 관한 것을 표현한다.

또한 철학이나 사상, 감정, 미의식 등 인간의 내면을 다른 어떤 미술분야보다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평면예술이다. 게다가 감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실용적 목적도 함께 지니며, 기록성과 사료적 성격을 가지고 문화적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회화의 특성이다.

회화는 창출된 지역이나 표현 기법에 따라 한국화, 동양화, 서양화로 나뉘고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묵화, 수채화, 유화로 구분 되어진다.

 

중국과 한국, 일본 - 동양을 대표하는 세 나라의 회화들의 기원과 특징 등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선 중국회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한국과 중국회화의 연관성, 앞으로 회화를 연구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 동양회화의 특징

1. 유, 불, 선 등 동양의 종교와 사상의 결합체로써 동양인이 가지는 자연관의 구현체

2. 자연을 경외로운 존재(자연 중심적)

but, 서양화는 인간중심에서 자연을 묘사한다. 가령,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개간된 농토나 인간의 삶을 즐겁게 하는 바닷가의 풍경 등을 주로 그린다.)

3. 기법적 특수성을 가진다.(가장 기본이 되는 선을 다루는 필법과 묵법)

4. 서양화에 비해 표현방법 제한

5. 전통성이 강함

 

★ 중국회화의 기원

1. 유소씨 - 목기를 만들고 그 표면에 각종 둥근 문양이나 나선형 문양을 그린것이 회화의 기원

2. 복희씨 - 팔괘를 창안한 것이 서화의 시초

3. 창힐 - 상형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서화가 근원이 같은 동체임을 보여줌.

 

<한대~당대의 회화>

기원전 3세기 초에서 기원 후 3세기 초에 해당하는 시기로 전문화된 미술 분야로 발전했던 시기이다. 황제 중심으로 서화의 수집활동이 개시 되었으며 고개지, 육탐미, 장승요 같은 화가들이 활발히 활동했으며 인물화와 산수화가 크게 발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북의 차이가 두드러진 시기로 이시훈, 이소도 부자를 중심으로 한 남은 청록산수화를 왕유를 중심으로 한 북은 수묵화가 발달하였다.

 

<오대, 북송의 회화>

10세기와 12세기 초까지로 중국에서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기이다.

곽희를 중심으로 한 북송파(대자연의 웅장함, 인물이나 동물 등은 개미처럼 미미하게 표현)는 금, 원, 명, 청초까지 명맥을 유지했으며 이 북송파는 조선 초기 안견파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물화와 화조화가 발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남송의 회화>

1127년에서 1279년까지로 강남지방 특유의 자연환경(물이 많고 나지막한 산과 온화한 기후) 영향을 받아서 구도면에서는 일각구도를 이루고, 여백의 미를 중시하며, 서정적이다. 특히, 인물의 배경이 커진것도 남송회화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선종화가 유행하고 간담하고 고일한 화풍이 특색이다.

 

<명의 회화>

몽고족의 지배를 받던 시기로 1368~1661까지를 말한다.

소주 지역인 오현에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까지 심주, 문징명 등 일군의 문인화가 중심이 된 오파와 남송대 마하파 화풍과 그 밖의 화풍을 절충하여 조선 중기에 영향을 준 절파로 나뉜다.

이 절파는 조선 중기 김시, 이경윤, 이징, 김 명국 등에 영향을 미쳤다.

 

<청의 회화>

1644~1911으로 만주족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이다.

원말 사대가 화풍과 명대의 오파 화풍, 명말의 동기창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표현방법을 시도하였다. 강희와 옹정, 건륭은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이상 중국 회화의 특징을 간단히 알아보았고 중국회화와 한국회화와의 연관성을 되짚어 보고 한국회화 특징을 알아보는 게 순서인거 같다. 한국회화를 중국회화의 모방으로 본다던지 하는 오해가 없기를 저자는 참 많이도 강조를 하는 듯 했다.

당시 중국회화는 동아시아에서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회화였기에 중국 회화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였을뿐만 아니라 우리는 중국 회화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소화해서 그 위에 한국적 특성의 화풍을 발전 시켰다. 또한 수용할 때도 필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능동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인이라면~(요럴땐 애국자가 된다는^^)

 

한국회화의 기원은 넓은 의미에서는 선사시대의 선각화에서 찾을 수 있으나 비단에 직접 그린 것을 기원으로 한다면 삼국시대라 말할 수 있겠다.

고구려의 회화는 힘차고 율동적이며 긴장감이 돌아 강한 고구려의 성격이 묻어난다.

활달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가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백제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느긋하고 부드러우며 세련된 아주 수준 높은 화풍을 창조했고 폭넓은 대외교섭이 활발 했던 시기이다.

신라시대는 솔거와 같이 훌륭한 화가를 배출하기는 했으나 자료가 거의 없어 진면목을 찾기 어렵다. 대신 통일신라때는 당과 활발한 교섭으로 풍요와 균형, 조화를 이룬 회화가 발달하였다.

고려에 와서는 고대적인 성격과 근세적인 성격을 함께 가진 화풍이 발달했으며, 왕공귀족이나 화원, 승려 화가 등 세 계층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보편화를 보였다. 즉, 실용의 목적으로만 회화가 제작 된 것이 아니라 감상의 목적으로 제작되어진 것이다.

조선시대는 우리 나라 회화가 가장 발달한 시기로 한국 회화의 특징을 결정짓는 시기이도 하다.

초기(1392~약 1550)와 중기(약 1550~약 1700), 후기(약 1700~약 1850), 말기(약 1850~1910)로 구분되어진다.

곽희 중심의 북송화풍과 원체의 남송 화풍, 마법산수 화풍, 명대 절파 화풍 수용과 고려 화풍의 전통을 계승하여 한국적 화풍이 만들어진 시기가 조선 초기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안견이 있는데 안견은 안평대군의 휘호를 받으면서 창작활동을 맘껏 할 수 있었다. 안견의 그림솜씨뿐만 아니라 그의 기지도 대단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안평대군과 절친인 두 사람이 소원 해져서 안견은 안평의 집에 발을 끊게 되는데 얼마 지나치 않아 안평의 기세가 저물고 안평의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경을 칠 때 안견만 무사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신했다.

중기에는 치열한 당쟁과 왜란, 호란 등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었던 시기이다.

안견의 화풍을 계속 계승한 이들과 절파계 화풍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다소 거칠고 강렬한 느낌의 강희안 화풍은 김시, 이징, 이경윤, 김명국에 영향을 주었고 소극적으로 남종화법도 수용되어졌다.

조선의 후기는 가장 한국적인 산수화풍을 만든 시기로 정선의 진경 산수화(금강산도, 인왕제색도)와 강세황 등 많은 선비화가들이 남종산수화를 발달 시켰다. 명암법이나 원근법 등 서양화법도 수용되었고, 수준 높은 동물화나 화조화, 서민들 사이에 민화도 발달하였다.

말기에는 진경산수화가 시들해지는 대신 김정희 일파를 대두로 하는 남종화풍이 화단을 지배하였다.

 

개인적으로 산수화나 인물화보다는 동물이나 꽃을 그린 그림이나 혹은 민화가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아마도 나의 지식과 안목이 부족한 탓에 색채감이 있거나 사실적인 그림에 더 시선이 가나보다.

민화란 말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 사용한 말로 그는 "민중속에 태어나고 민중을 위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 하자"라고 했다. 비록, 일본인이 명명하긴 했지만, 서민화나 대중화 - 이런 말보다 훨씬 더 와 닿기에 그냥 민화라 하는게 나을듯하다. 저자도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간혹 민화 애호가들이 다른말로 불리워지기를 원하는 거 같다.

민화는 그림에 소질은 있으나 그런 소질을 키울 마땅한 기회가 없는 서민들이 그네들의 생활수단으로 그림 한 점 그려주고 숙식을 해결하는 떠돌이 화가들이 대부분이였다.

그러기에 제작연대가 뚜렷하지 않고 국가나 시대의 동향을 대표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기에 민화가 미술사료로서의 요건에 불충분하여 인정을 못받고 있다고 한다. 참 아쉬운 일이다.

서민들과 함께 했기에 소재 또한 기복축사나 벽사진경, 권선징악, 종교와 신앙 등 일상 생활을 풍요하고 복되게 하며 인간다운 인간으로 사아가게 하는데 필요한 윤리적인 소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민화는 정통회화 못지 않게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그에 대한 미술사학계의 연구가 본격화 되어야 한다는 점은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장식성이 강하고 강력한 한국적 특성을 꾸밈없이 나타낸 것으로 민화의 색채는 우리의 색채 감각이나 미의식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참고 자료가 아닐까?

전란이나 화재, 수해, 충해, 국민들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손실 된 혹은, 외국으로 유출 된 많은 회화들이 언제쯤 우리나라로 귀환할까? 마침 몇해전 뜻있는 개그맨들이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 회수를 위한 캠페인으로 찍었던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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