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que De Beethoven, 1887 - Benjamin Constant - WikiArt.org






독창적 예술가란 만년에 가서도 끝내 세상사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

만년에 아픈 예술가의 격정이란 원숙성과는 무관하다는 것. 오히려 그 반대되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워드 사이드의 견해에 따른다면, 동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 예술가가 미래 속에 그 결정을 던져놓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미래에 던져놓은 메시지란, 틀림없이 인류의 소중한 가치의 하나라는 것.

소설의 어법이나 문법 따위란 안중에 없는 것. 박완서가 쓴 어떤 6·25의 글보다도 격렬한 6·25인 셈. 베토벤의 그 만년의 격렬성에 방불하다고나 할까. 소설 초월 혹은 소설 미달 현상이라고나 할까.

출처: ‘나목’에서 ‘그 남자네 집’에 이르기까지 - 후기 스타일에 부쳐(2012. 8.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Title page of James Thomson's The Seasons, 1805 edition.


스코틀랜드 시인 제임스 톰슨의 '사계'가 이 달에 번역출간되었다. 톰슨의 '사계'에 기반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중 '여름'을 들어보자. 



[네이버 지식백과] 오라토리오 「사계(四季)」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 작품편, 2012. 5. 31., 삼호ETM 편집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4410&cid=60515&categoryId=605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Cat and Kitten - Edward Burne-Jones - WikiArt.org






새끼들을 빼앗긴 어미 고양이의 목쉰 비명 소리에서. - 어미 고양이에게서 새끼들을 빼앗아 산 채로 땅에 묻는 것은 시골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땅을 파서 새끼 고양이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하고, 그 계획에 사촌 자매를 끌어들였지요. 사촌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새끼들을 묻었던 아버지에게서, 내게 손을 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뺨을 맞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작년 5월에 '페데리코 라피넬리의 첫사랑'이란 러시아 청소년소설을 읽었다. 주인공 광대소년의 이름이 페데리코 라피넬리인데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연상된다. 펠리니의 영화 '길'에 작은 유랑 서커스가 나와서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삽화 일부로부터 팀 버튼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른다.

 La strada (1954) By Federico Fellini (directo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hnine 2023-05-08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길, 저 장면을 보니 또 옛날 생각이 마구 나네요.
제가 중학교 다닐때 흑백의 저 영화를 주말의 명화 시간에 밤 늦게 까지 보고 앉아서, 영화 뜻은 완전히 다 모르면서도 가슴이 찡 했던 기억이요.
저 여 주인공과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부부였지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제 남편의 최애 영화 중 하나라서 지금도 집에 비디오를 가지고 있어요.

페데리코 라피넬리의 저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서곡 2023-05-08 08:28   좋아요 0 | URL
굿모닝입니다! 작년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빌려본 책이랍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재미있죠 ㅎㅎㅎ 네 젤소미나 역 배우가 펠리니 감독의 부인이죠 영화 길의 주제가도 아름답고 애잔합니다...한 주의 시작인 오늘 월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싱아 By Dalgial


싱아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4s0199a


김윤식의 '내가 읽은 박완서'로부터 아래 옮긴 글 초반에 나온 "박완서의 두 편의 성장소설"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다.






이 자기표현, 자기고백으로서의 문학적 현상에 접할 때 비로소 박완서의 두 편의 성장소설의 유력함의 근거에 닿게 된다. 또 그것은 헤겔적 역사 발전의 법칙성(변증법) 앞에서 한동안 길 잃고 방황하던 낭만주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출구에 다름 아니었다. 박완서의 출현은 바로 이 교체기의 한복판에서였다. 『나목』의 위치가 바로 여기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최고도에 이른 것이 위의 두 편의 자기고백체였다.

자기표현, 자기고백이야말로 구원이자 유일한 출구였다. 신 앞에서까지 이를 관철하고자 하는 형국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 자기고백은 이에 문학적 현상을 넘어서게 된다. 헤겔식으로 말해 문학보다 윗길에 놓인 종교의 차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작가 박완서는 이 종교의 문지방까지 갔다가 주춤 물러섰다. 자기표현, 자기고백체가 작가의 발걸음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출처: 두 가지 형식의 ‘악마의 작업‘ - 박경리와 박완서(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