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ordHarris at en.wikipedia, CC BY 3.0, 위키미디어커먼즈


연보 읽기가 유용했다. RIP.





1837 고아와 그 후견인의 관계를 다룬 마지막 소설 포크너 출간.

1839 메리 셸리가 편집한 셸리의 시집(Poetical Works) 출간.

1844 여행기 독일과 이탈리아 유람 출간.

1846 중산층의 독학을 장려하기 위한 133권짜리 백과사전의 일환인 위인전 ‘문학과 과학 위인들‘ 시리즈 중 3권에 달하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편‘과 2권짜리 ‘프랑스 편‘ 을 집필.

1848 메리 셸리의 사인이 된 뇌종양 발병. 정확한 진단은 1850년에 받았지만 이미 이 당시 증세가 뚜렷해짐.

1851년 2월 1일, 54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뇌종양으로 사망. 부모님과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김. 본머스의 교회 묘지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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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이 끝나고 권말 독서목록을 일별한다. 알라딘 책 소개 목차의 마지막 장 '우리가 읽은 책들'이라고, 김형경 저자가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들과 참고서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 중 몇 권을 가져온다. 


앤 율라노프, 배리 율라노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앨리스 밀러, 양철북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보리스 시륄리크, 북하우스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

마이어스 브릭스, 부글북스 《성격의 재발견》

미리암 그린스핀, 또 하나의 문화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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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Novel, 1877 - Winslow Homer - WikiArt.org


비스듬히 누워 독서삼매경에 빠진 저 여성은 머리카락과 드레스까지 전부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새 소설, 그렇다, 그녀는 신간 소설책을 열심히 읽는 중이다. 윈슬로 호머의 이 그림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책 '소네치카' 표지로 쓰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윈슬로 호머 [Winslow Homer]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9300&cid=42636&categoryId=4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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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성을 ‘백인성’(whiteness)에의 추구로 읽고, 멜빌과 같은 동시 대 작가들이 탐구한 백인성-공포-죽음의 은유가 반점에서도 나타난다.


에일머가 아내의 반점을 볼 때 마다 온갖 상념에 잠기고 격한 감정으로 꿈에서조차 괴로워하는 이유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으되 강력하게 자리한 의심 탓이다. 


호손이 소설을 집필하던 무렵의 독자들은 무엇보다 “눈처럼 흰” 피부 위에 돋 보이는 “진홍빛 얼룩”이 말 그대로 백인의 혈통에 스며든 ‘한 방울의 흑인 피’를 은유한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차렸을 것이다.


당시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인종 간 결 혼은 계급적으로 부적절한 처신임을 넘어서 생물학적으로 파멸과 재앙을 불러일으 키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조지아나의 진홍빛 반점은 마 치 오염원처럼 그려진다. 에일머의 시선에서 뺨 위의 작은 핏빛 얼룩은 순혈의 핏 줄을 더럽히고 백인이 아닌 혼혈 자손을 배태할 것을 암시한다. 


모국의 땅을 여성의 몸으로 상상하는 방식에서 조지아나의 몸은 말 그대로 미국 국 가의 영토를 은유하며, 그녀의 뺨에 새겨진 반점은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칸 후 손을 나타낸다.


검은색으로 암시되는 흑인의 존재는 계속된 실험 속에서 도 뚜렷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며 쉽사리 제거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에일머의 계속된 시도는 타자로서 흑인과 여성을 배제한 채 백인 남성성에만 의거한 미국성의 구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기획임을 암시한다.] 출처: 호손의 「반점」에 나타난 인종, 젠더, 국가 (한우리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2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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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내용과 결말을 언급합니다.


올해 오스카 국제영화상을 탄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이번 주에 다 봤다. 그리고 어제 아베 피격사망 뉴스를 들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동명의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비롯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기반으로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쌓아올린 새로운 세계이다. 


류스케는 하루키보다 훨씬 아랫 세대인데, 아베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그들은 제각기 어떤 상념에 빠졌을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한중일 배우들이 모여 체홉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공연한다.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에 바냐 아저씨'가 나온 만큼, 류스케로서는 연극을 영화에 당연히 넣고 싶었을 것 같다. 


전작 '해피 아워'에 워크샵이나 북토크 장면을 이미 길게 담아낸 전력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냥 일본인들의 연극으로 하지 않고, 한중일이 각자의 언어로, 게다가 수어로 말하는 한국인까지 포함하여, 공연하는 발상을 한 것이다. 


더욱이 영화 속 연극 공연 장소가 일본 히로시마 -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 이로써 영화는 훨씬 더 확장되고 정치적 의미까지 띤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은가? 글쎄, 솔직히, 양가감정을 느낀다. 


하필 수어 연기를 하는 한국인 여성에게 바냐 아저씨의 조카 소냐 역을 맡기고, 더 이상 젊지만은 않은, 낡은 세대가 되어버린 일본인 남성 주인공은 바냐 아저씨로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소냐로부터 들으며 위로 받고. 


영화 마지막엔 차를 운전한 일본인 여성이 한국을 방문하여 편의점에서 한국말을 쓰며 물건 사는 장면을 보여준다. 기사를 보니 감독은 원래 영화를 한국의 부산에서 찍고 싶었는데 사정 상 그렇게 못해 짧게라도 한국을 넣었다고 한다. 


모르겠다. 류스케가 일본 대표는 아니지만, 일본이 한국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적절할지는. 정답이 있겠냐만은, 류스케가 말을 걸어온 방식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영화를 열심히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는 점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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