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의 출처는 '인생, 예술'(윤혜정)로서 저자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작가이다.

Be Calm (October 1st - 31st) - Louise Bourgeois - WikiArt.org



Maman, 1999 - Louise Bourgeois - WikiArt.org


Arch of Hysteria, 1993 - Louise Bourgeois - WikiArt.org


[모리스 “루이스 부르주아? 내겐 늘 두려웠던 존재!”]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40509/124869846/1 영국의 갤러리 테이트 모던 전 관장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테이트 모던, 루이스 부르주아 | 두피디아 여행기 https://www.doopedia.co.kr/travel/viewContent.do?idx=170709000030836






부르주아는 예술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만성형 작가다. 사십 대가 다 되어서 미술가로 본격 활동했고, 육십 대에 비로소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82년 일흔이 넘은 나이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열었고, 1993년 여든두 살에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참가했고, 1999년 여든여덟 살에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루이즈 부르주아처럼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으며 사적 역사를 구축할 만큼 오래 살거나 끝까지 작업한 여성 작가는 드물다. 1960년대 말에 근대성을 떨쳐 내려는 혁명의 분위기가 본격화되고, 이에 따라 성性, 페미니즘, 몸의 정치학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비로소 부르주아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루이즈 부르주아_ 인간을 품고 사는 인간들을 위해(IV. 여성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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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김은주)로부터 옮긴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여성 지식인 라헬 파른하겐의 전기를 썼다.


파른하겐 폰 엔제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3p0596a

By Hannah Arendt - Google books


[아렌트 정치사상의 핵, 유대인 문제]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35341.html


cf.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장영은) 중 '2부 우정을 쓰는 여자들'에 '정직한 친구들 ― 한나 아렌트와 라헬 파른하겐'이 있다.




아렌트는 우산 없이 맞선 폭풍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삶이 자신에게 들이닥치도록 전력을 다해 자신을 드러낸 라헬 파른하겐을 존중하며, 그의 전기를 써 내려갔다. 라헬 파른하겐이 스스로를 반추하는 과정을 최대한 가까이 따라가며 아렌트는 라헬의 "지칠 줄 모르는 기민함과 고통을 견디는 능력"에 경탄했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아간 지식인 유대 여성인 라헬은 강단과 학계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채 히틀러의 집권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당한 아렌트가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었던 여성이다. 아렌트는 라헬 파른하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유대인이라는 굴레가 떠안긴 고민과 도전을 공유하면서 어두운 시대를 버티고 이후의 미래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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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클림트'(전원경)로부터

Stoclet Frieze left By Gustav Klimt


Stoclet Frieze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toclet_Frieze 아래 글에 나오는 벨기에 브뤼셀의 슈토클레 하우스 실내장식이다.

Stoclet Frieze right By Gustav Klimt







슈토클레 하우스 실내 장식은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긴 벽화를 가득 채운 황금빛 사이로 도드라지는 원색의 장식들이 있다.

클림트는 슈토클레 하우스를 마지막으로 10년을 몰두했던 황금시대를 접었다. 금빛으로 빛나던 번영의 시간들은 이미 지나갔다. 빈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영화로워 보였지만, 그것은 단지 백일몽일 뿐이었다. 제국의 질서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08 클림트,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화가

클림트는 전통적 역사화로 명성을 얻은 뒤 과감히 변화를 추구했고 그 답을 머나먼 과거 비잔티움 황금 모자이크에서 발견했다. 황금으로 장식한 모자이크들은 그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황금으로 빛나는 작품에 열광했다.

클림트의 예술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장식’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며 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장식은 마지막까지 클림트의 그림에 등장한다. - 클림트 예술의 키워드

1906 슈토클레 하우스 식당 장식 의뢰를 받고 브뤼셀로 답사를 다녀오다.

1910 슈토클레 하우스 식당 벽화 디자인을 완성하다.

1914 완성된 브뤼셀 슈토클레 하우스를 방문하다. - 클림트 생애의 결정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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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ectation 1905 By Gustav Klimt


[네이버 지식백과] 빈공방 [Wiener Werkstett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댄서>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은 클림트가 살았던 당시의 현대 무용수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댄서의 머리 장식과 손을 장식하는 팔찌 등은 당시 빈 공방의 디자인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를 둔 클림트의 타고난 재능과 빈 공예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공부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 계통과 진화 | 〈스토클레 프리즈(Stoclet Frieze)〉, 1905~1919 (2부. 클림트 코드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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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의학자가 쓴 '클림트를 해부하다'의 '2부. 클림트 코드를 파헤치다' 중 마지막 글 '계통과 진화'로부터 옮긴다.

Dining Room at Palais Stoclet with furniture by Hoffmann and ceramic frieze by Klimt


Tree of Life from the Stoclet Frieze By Gustav Klimt


[네이버 지식백과] 생명의 나무 [arbor vitae, lignum vitae]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프리즈는 건물이나 조형물의 윗부분을 띠 모양으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클림트는 <베토벤 프리즈> 외에 나중에 언급할 생명의 나무를 포함하고 있는 <스토클레 프리즈>도 그렸다.

벨기에의 사업가 아돌프 스토클레 Adolf Stoclet, 1871~1949는 1904년 빈 공방의 요제프 호프만Joesf Hoffmann, 1870~19561에게 브뤼셀에 있는 자신의 새로운 저택의 건축을 의뢰했다.

호프만은 클림트에게 식당 벽을 장식할 그림을 요청했고, 빈 공방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스토클레 프리즈>의 핵심 모티브는 <생명의 나무>다. 나무는 벽화의 중심부에서 시작하여 양쪽 끝까지 줄기를 뻗어나간다. 뿌리에서 나오는 큰 줄기는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멀리 갈수록 직경이 좁아진다.

<생명의 나무>에서 보면 땅에서 막 나온 줄기 부위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세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세포들이 집단을 이루며 크고 작은 세포들이 혼재되어 있다.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점점 복잡하게 발달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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