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아르테) 해설을 쓴 역자 목승숙 교수는 카프카 전집 중 '카프카의 일기' 공역자이다.

La Belle Jardiniere – December, 1896 - Eugène Grasset - WikiArt.org


올해 달력의 마지막 장을 평탄하게 넘기기가 이토록 어렵다니.





카프카의 일기에 따르면, 1909년 11월경 그는 테아트르 바리에테Théâtre Variété에서 일본인 줄타기 공연을 관람했는데, 같은 장소에서 1908년 9월과 1909년 4월에는 당시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훈련받은 유명한 침팬지 ‘영사 페터Konsul Peter’의 공연이 열렸다. 작품에 등장하는 원숭이의 이름이 ‘페터’라는 점, 버라이어티쇼 분위기를 묘사한 대목은 카프카가 해당 공연을 직간접적으로 알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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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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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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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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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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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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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118071 작년 오늘 포스트에 이어 '변신'(프란츠 카프카 지음 / 목승숙 옮김) 해설 중 '학술원 보고' 관련 부분으로부터 옮긴다.


이제, 다섯 시가 넘었다.

Calendar: December (Hunting Wild Boar), 1416 - Limbourg brothers - WikiArt.org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빨간 페터의 고향인 황금해안은 오늘날의 가나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다. 그리고 카프카 시절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유대인은 인종적으로 아프리카인과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고 아프리카인과 마찬가지로 ‘원숭이’로 불렸으며, 카프카도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원숭이로 칭하곤 했다.

인간들 사이의 동물, 유럽인들 속의 타자인 인간원숭이 빨간 페터의 중간자적 정체성에 유럽 사회에서 이중의 무소속성을 경험한 동화된 유대인 카프카의 특수한 문화적 위치가 묻어난다고도 볼 수 있다.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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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790598133/15117482 작년 오늘의 포스트에 이어 을유세계문학전집 '변신.선고 외'(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태환 옮김) 수록 '학술원 보고'로부터


오늘은 올해 12월의 첫 토요일. 잊을 수 없는 날이 되겠구나.

December Afternoon, 1940 - Grant Wood - WikiArt.org


굿즈 카프카 노트 발견.






이제 실제 연습이 시작됩니다. 이론 때문에 저는 이미 너무 지쳐 버린 것일까요? 네, 너무 지쳐 버렸습니다. 그것도 제 운명입니다.

제가 인간을 흉내 낸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탈출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고서 저는 공부를 했습니다, 신사 여러분. 아, 사람은 어쩔 수 없을 때 공부를 하는 법입니다. 탈출구를 원하면 공부를 하는 거죠. 물불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합니다.

저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늘, 자유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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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겨울, 지금으로부터 육십년 전이다. 2024년 겨울은 어떻게 기록되고 재현될 것인가.


김승옥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g1714a


Pixabay로부터 입수된 baragaon22님의 이미지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안 형은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한 얘기는 정말이었습니다."

"난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서울, 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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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 맥세계사편찬위원회 저/최옥영 역'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나폴레옹 3세(1853) By Mayer & Pierson


[네이버 지식백과] 나폴레옹 3세 [Napoleon III, Louis-Napoléon Bonaparte] - 나폴레옹의 후계자로 프랑스 제2제정을 수립하다 (인물세계사, 함규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5921&cid=59014&categoryId=59014


'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박종철출판사)'에 '루이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칼 맑스)이 실려 있다.




쿠데타 이후 루이 나폴레옹은 곧바로 군주제를 세운 것이 아니라 공화국을 차츰차츰 제국으로 바꾸어 나갔다.

나폴레옹 3세는 전제독재의 권력을 원 없이 휘둘러 댔으며 국가기관이라는 곳은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그에게 충성하는 근위 기병대를 만들고 군대와 경찰, 헌병을 크게 확충했다. 게다가 비밀경찰과 헌병감시관, 평민을 이용해 그의 통치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발견되면 심판 없이 즉시 체포하도록 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치적 성격의 클럽을 모두 폐쇄했으며 단체 구성과 집회를 금지했다.

나폴레옹 3세는 군경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했고 전력을 다해 노동 운동의 기세를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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