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오디오북 ‘황정민이 읽는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를 들었다. 황정민 배우의 연극 '빨간 페터'를 무대에 올리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 ['서울의 봄', 황정민이 황정민을 넘어서는 순간] https://v.daum.net/v/20231115141301203 

 

을유세계문학전집 '변신.선고 외'(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태환 옮김)에 실린 '학술원 보고'를 읽고 발췌한다. 황정민 배우가 낭독한 글은 권혁준(지만지 카프카 단편집)의 번역이다.



배우 주호성 1인극 '빨간피터' https://www.yna.co.kr/view/AKR20160315178000005


김태환 교수의 저서 ‘미로의 구조 - 카프카 소설에서의 자아와 타자’도 담아둔다.


어떤 고집도 부리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고의 계율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원숭이인 제가 스스로에게 이런 족쇄를 채웠던 것입니다.

어쨌든 저의 말씀은 한때 원숭이였던 자가 인간 세계로 진입하여 그곳에 정착할 때 따라야 했던 행동 지침을 보여 줄 것입니다.

저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저는 당시에도 지금도 자유를 갈망한 적이 없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두자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유에 관해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으로 여겨지듯,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으로 간주됩니다.

오늘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살기 위해서 반드시 탈출구가 있어야 하지만 도주함으로써 그런 탈출구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저는 그때 적어도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듯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그런 자유의 신봉자였다면, 이 사람들의 흐릿한 눈길 속에서 제게 모습을 드러낸 탈출구보다는 차라리 대양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이제 실제 연습이 시작됩니다. 이론 때문에 저는 이미 너무 지쳐 버린 것일까요? 네, 너무 지쳐 버렸습니다. 그것도 제 운명입니다.

제가 인간을 흉내 낸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탈출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고서 저는 공부를 했습니다, 신사 여러분. 아, 사람은 어쩔 수 없을 때 공부를 하는 법입니다. 탈출구를 원하면 공부를 하는 거죠. 물불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합니다.

저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늘, 자유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학술원 보고」에서 황금 해안에서 붙잡혀 온 원숭이 빨간 페터는 인간 세계에 적응하면서 보드빌 극장의 배우가 된다. 빨간 페터는 짐승 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인간을 흉내 내는 데 성공하고 거의 인간이 되기에 이른다. -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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