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를 읽기 시작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해 읽게 된 주디스 버틀러와 한나 아렌트가 이 책까지 인도했다. 이왕이면 다 읽는 게 좋겠지만 완독할지 여부는 미정인데, 예전에 한나 아렌트의 절친 메리 매카시에 관해 찾다가 이 책 '터프 이너프'를 발견하여 조금 읽은 적 있고,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중 유일하게 글 쓰는 작가가 아닌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에 관한 장이 가장 궁금하다. 아래는 서문 격인 '들어가며'로부터 발췌한 글이다.
1950년대 미국 부엌 By Carol M. Highsmith - Library of Congress Catalog,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 '터프 이너프'를 쓴 영문학자 데보라 넬슨이 엮은이 중 한 사람인 책 ‘Gender and Culture in the 1950s:WSQ’(미번역)가 흥미로워 보인다.[the 1950s were the decade of The Kinsey Report and The Bell Jar, of Cold War Communists and civil rights activism, and change for women.]출처: 책 소개
이 여성 작가들의 거리두기―연대보다 고독을 선호하는 성향―는 감동·감정·정서(비록 기술적으로 감정과 정서는 감동과 다르지만)의 사이성을 소거하고자 하는데, 그 여러 다른 이유가 앞으로 각 장에서 기술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의 영역에 머무르면서도 이처럼 감정에 저항하는 태도는 20세기 중반 부상한 각종 진보적 사회운동과도 선을 긋는다. 진보적 사회운동들은 하나같이 정서적 유대와 집단과의 동질성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실천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으로도 거부한 이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지지를 기대했던 집단 내부에서 ‘파리아pariah’(배척당한 사람)로 낙인찍혔다.
20세기 후반 사회운동이 공감능력이 갖는 치유의 힘을 연대를 공고하게 만드는 접착제이자 진보 정치학의 목적으로 권장하자, 이 여성 작가들은 반감으로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사회정의라는 목표가 아니라 그리로 가는 길이 문제였다.
이 여성 작가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포용했다고 해서 비관주의자였던 건 아니다. 이들의 전언은 종종 스산하고 황량하지만, 대부분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품지 않았다. 그보다 그들은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했다. 직접 겪은 유토피아적 낙관주의에는 깊은 환멸을 느끼고 싸늘하게 반응했다. 그러니 오히려 열렬한 반유토피아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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