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마음을 풀어야 낫지 - 암과 생활습관병 환자를 위한 마음 치유 가이드!
김종성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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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마운 책이다. 다른 이야기보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내 삶의 생각하면서, 그래, 한 동안은 정신 없이 나의 '자아실현'이라는 좋은 이름으로 나의 '욕망'실현을 위해 뛰었다. 그러다가 꺾이고.

그 꺾임 속에서 만난 책이다. <한겨레>신문 읽다가 이 저자를 보게 되었고, 그 분 홈피에 들어갔다가 이 책이 소개되어 있기에 구입해서 읽었다.

내가 아파서 성령기도회 등에 다니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기본 얼개이긴 하다. 육체와 정신과 영성이 종합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그런데 이 책은 그걸 아주 세밀하고 자상하게, 그리고 아주 과학적으로 써 놓았다. 나처럼 믿음보다 합리적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한테는 정말 딱 들어맞는 책이다.

정신의 힘, 스트레스의 폐해. 결국 이 스트레스도 그 사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라는 것.

물론 여기까지는 이론적으로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심리치료 등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놀랐던 것은 영성의 힘을 증명해 보인 부분이다. 간혹 기도 모임에서 어떤 기적 같은 사건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사실 혼란스러웠다. 하느님의 손길 같기도 하고, 인간의 심리적 현상이 만든 이적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심리적 현상이 아님을.

미국 어느 병원에서 환자는 물론, 의사, 간호사에게도 비밀로 하고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는 중재기도를 적극적으로 했더니 그 집단이 기도를 받지 않은 집단에 비해 월등하게 치유되는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분명 영적인 힘은 있다. 그러니 그 영적인 힘이 잡다한 탁한 영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의 영, 자비의 영, 성령이라면 그 기쁨은 어떠하겠는가.

물론 영성도 기독교 영성 말고 불교적 영성도 있다. 흔히 관(觀)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망상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것은 내가 아니다. 진아가 거짓 자아를 바라보는 수련을 하면 그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지도 않고, 여여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움의 영성이다.

그런데 기독교 영성은 다르다. 채움의 영성이다. 무상이기 때문에 고뇌 번민에서 벗어나라는 게 아니라, 그 무상 너머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기를 요구하며, 그 체험을 통해 기쁨으로 살아가는 영성이다.

예전엔 불교적 영성이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꺾인 후, 공지영의 표현대로라면 하느님께 항복한 후에는 기독교적 영성이 훨씬 좋다. 쉽다. 폼 잡지 않는다. 그저 내가 피조물에 불과한 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 그저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체험할 때 그 영성의 힘은 크다. 그래서 삶이 기쁘다. 요즘은. 이 기쁨 속에서 이 책을 만나 다시 다진다. 확인한다.

이제 주변 벗들에게, 고통 속에 있는 벗들에게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마음과 신앙으로 고난을 극복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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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수련의 길잡이 - 아름답고 조화로운 삶을 위하여 호흡을 잘해야 한다
유인학 지음 / 기린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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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선도도 해 봤고, 단학선원도 다녀봤다. 요가도 8년 했다. 뭔가 있는 듯 해서 그랬다. 분명 뭔가 있긴 있는데, 나는 둔해서 모르겠다. 암튼 그래도 그런 곳에 다닐 때 몸은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제 이 책을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나는 건강하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 건강을 바탕으로 세상 명예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마음 수련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나, 오히려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때도 많았다.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집중이 중요하긴 한데,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 집중을 잘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힘만 커진다고 했다. 그러다가 사단이 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잡은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간단히 얘기해 줬다. 국어 교사 출신이고 민주화운동을 했고, 그러다가 수도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그래서 저자의 이름을 놓고 인터넷 서점을 뒤졌더니 이 책이 걸렸다. 그래, 예전에 호흡수련도 해 봤는데, 제대로 못했고, 그러니 이 책을 사서 한 번 보자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흡수련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와 닿지가 않았다. 이건 구체적으로 몸으로 수련을 하면서 배워야 할 내용이지 책만 읽어서 될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메시지는 참으로 좋았다. 단전호흡할 때 '마음과 생각을 쉬어야' 한다는 점. 나는 욕심을 부리며 했었다. 그날 하루의 일을 계획하고 번잡하게 머리를 굴리면서 숨을 쉬었다. 그랬으니 될 리가 없지. '머리에 번거로운 잡념이 맴돌고, 가슴에 응어리진 감정이 무겁게 자리잡으면 우주 기운의 통로가 막힌다'고 한다. 그러니 우선 머리를 맑게 비우고, 가슴을 하늘처럼 활짝 여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강제로 배꼽까지 숨을 끌어내리려고 힘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도 주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제로 숨을 끌어내려 부작용만 낳았다. 자연스러워야 했는데. 편안하게 배꼽 일대를 생각해 주기만 해도 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일을 하든 숨을 편안히 쉬면서 하라고 말한다. 또 숨을 풍부하게 들이마시는 것보다 편안하게 고요하고 깊게 마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본래 수행은 버리기 위한 것이지, 쌓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정 반대의 수련을 했었다. 그래서 부작용을 키웠던 것이다.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어지고 낮아지는 게 아주 평화롭게 된다고 한다. 그랬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보통 나를 텅 비운 사람은 낮아지는 걸 좋아한다. 스스로 낮아지고 작아지는 삶. 성경에서도 강조한 삶이다.

먹을 때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만물이 다 고맙게 다가온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도 몸과 같아서 자주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 평화로운 마음, 자유로운 마음을 자꾸 가지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이건 성경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다. 원망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자 아주 큰 평화의 기운, 사랑의 기운이 뿜어 나오게 된다고 한다. 이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부정적인 기운이 나오고 그 기운은 그 상대뿐만 아니라 나도 다치게 한다. 반면 그런 사람일지라도 내가 마음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의 기운이 전달되어서 그도 나에게 그런 기운을 보내준다. 몇 번 실습해 보면 이는 바로 증명된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게 이로운 일이다.

잠도 충분히 자라고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것이다. 9시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럴 수만 있으면 좋겠다. 또 과식의 해악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나 역시 요즘 이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가급적 소식을 실천하고 있다. 몸이 확실히 편하다.

호흡에 있어서 집중은 중요하지만 마음이 어두운 상태에서 집중을 잘하면 문제가 된다. 욕심만 커지고, 남에게 군림하려고 들고, 우주의 어두운 기운을 더 받게 되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우라는 것이다. 수련의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닦기다. 그게 근본이다. 이런, 이제라도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진짜 수련을 해 봤으면 좋겠다. 하긴 이 책을 통해 그저 마음 넉넉히 낮추는 마음이라도 한 번 더 고민하게 된 것만도 수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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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나를 흔들다 - 붓다를 만나 삶이 바뀐 사람들, 2006 올해의 불서
법륜 지음 / 샨티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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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불교 서적을 읽었다. 동양 사람이라 그런지 예전서부터 불교 교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작년 이후 내 모태신앙이던 가톨릭에 돌아오면서 불교 서적을 많이 보질 못했다. 그러다 구입해 본 책이 이것이다.




법륜 스님,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오래다. <한겨레>신문 주말판에 그의 글이 연재된 적이 있었다. 10년 전쯤 되겠나. 그때 그 글을 보고 인상이 남았다. 역시, 그 뒤 그 스님의 행적을 보니까 감동적이었다. '정토회'를 만들어 대중과 함께 수행하는 모습이나, 북한 돕기 운동 등에서 확실히 돋보이는 스님이셨다.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고른 책이다.




불교 방송에 나갔던 것을 일부 추려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중적이다. 물론 불교 교리라는 것 자체가 사실 대중적이기는 쉽지 않다. 번뇌가 있고 해탈이 있고, 욕망이 있고 집착이 있고 등등 솔직히 어려운 점이 많다. 게다가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근데 어쩌면 이 어려움이 지식인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일 수도 있다.




암튼 그래도 생활 속에서 쉽게 풀었다. 그래서 읽기 편했다. 하지만 이게 읽기 편하다고 마구 진도 나갈 책은 사실 아니다. 근데 그렇게 읽어 버렸다. 묵상을 하면서, 내 삶에 새기면서 가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아쉽긴 하다. 그래도 몇 가지만이라도 다시 묵상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불교적 관점에서 삶은 고(苦)다. 이건 가톨릭 관점과 다르다. 가톨릭 관점에선 삶이 은총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이니 기뻐야 한다. 이렇게 출발부터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교적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분명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고통은 많다. 물론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나면 그것 역시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긴 하겠지만.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고통이 곧 환희일  수 있다. 놓을 때면 말이다. 일체의 집착을 놓으면 그렇게 된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 특히 수행을 통해 자력으로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려워 보인다. 솔직히 나도 그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기독 교리에서처럼 무조건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보다 인간인 내가 나 스스로의 힘으로 그 경지에 도달한다는 게 멋있어 보았다. 하지만 이젠 그게 최소한 나의 입장에선 불가능함을 안다. 싯달다 같은 분은 특별해서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못한다. 도저히. 이젠 그렇다.




암튼 여기선 비구라는 게 색에도 명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모든 집착을 놓아버린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탁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탁발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자력 노동을 하는 박중빈의 원불교를 타당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을 읽어보면 탁발을 통해 겸손을 배울 수 있다 하니 그 말도 타당해 보인다. 밥 빌어 먹는 주제에 뭘 내세울 게 있겠는가. 그저 감사할 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주는 밥, 가리지 않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경지에 이른 사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린다. 체면도 생각하고, 가난한 집엔 미안해서 못한다. 그러나 그런 분별 자체가 어리석다고 한다. <성경>에도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로서는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그래도 많이 노력할 생각이다. 묵언이라는 게 그냥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뜻이라 한다. 누가 옳다 그르다, 이런 것 하지 말라고 한다. 그건 입으로 업을 짓는 행위라고 말이다. "잘못은 거친 말을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비삼는 나에게 있는 겁니다."라고까지 한다.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 진보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봐야 나는 짜증만 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게 훨씬 옳은 일이다. 나로부터 해방되어야지, 상대방을 뜯어 고쳐서 내가 편해지려는 이기적 관점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문제는 기준을 내 기준으로 갖다 놓는 데서 출발한다. 자기 기준을 내려 놓는 것, 我相을 버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그것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면 비수가 된다고 한다.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하라고 한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 어떤 마음을 가질 때 나는 행복해지는가.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법이 어떤 것인가" 이런 걸 고민해야지, 남을 어떻게 바꾸겠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수행 공동체 정토회에서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게 하나의 계율이라고 한다. 정말 나로서는 새겨들을 일이다. 얼마나 내가 잘난 체 하면 살아왔는가. 남을 가르치려고만 했지, 남의 말을 듣거나 남을 이해하려고 해보진 않았다. 왜? 내가 옳다고 생갃했으니까. 나를 포기하는 것은 굴종이요, 줏대 없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남을 훈계하고 평가하지 말 것. 어렵더라도 조금씩 실천해 봐야겠다. 이런 것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집착을 놓는 것이다. 사실 수도자와 내가 다른 것은 그들은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고 나는 붙잡고 사는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 죽을 때까지 먹고, 자고, 입을 것에 대해 집착하며 산다. 물론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존 이상의" 그것에 매달리는 것, 이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당당함과 비굴함, 겸손함과 오만함도 버릴 수 있을 때 나온다. 집착이 없으면 항상 당당할 수 있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당함이 오만함으로 되어선 안 된다. 비굴하지 말라고 해서 남을 배척하라는 뜻은 아니다. 빈부, 성별, 인종, 지위를 막론하고 그냥 사랑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당당한 게 아니라 예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예의 없이 그렇게 산 삶이 많다. 지위와 관계 없이 그대로 사랑해 줘야 한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그럴 때 당당하고 겸손할 수 있다. 당당함과 겸손함은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 아니 같이 가야 그게 진짜다. 보시를 청하지 않는 것도, 자존심 때문에 청하지 않는 게 아니라 청할 것이 없기 때문에 청하지 않는 것, 이게 진짜다. 보시를 받고 안 받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수행자가 잡고 있어야 한다. 수행에 합당하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받지 않음이 정도다. 그래야 자유롭고 기쁘다.









그 외에도 새겨들을 글이 많았다. 그걸 여기 다 쓰다가는 책보다 분량이 많아질 것 같아 생략한다. 암튼 불교의 가르침, 생활 속에서 정말 배울 게 많은 가르침이다. 오늘부터 하나만이라도 챙기자. 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지 말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오직 나 자신에게만 적용하자. 그러면, 남의 부정과 잘못에 대해선? 그건 하느님의 영역이지 내 영역이 아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는가? "너나 잘하세요" 그래 맞다. 나나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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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성서와 인간 13
송봉모 지음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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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물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그 작은 책들을 나는 좋아한다. 이번 책은 성서와 인간-5인 셈이다. 앞서 읽었던 책들 못지 않게 내 마음을 잡는다.

근데 달라진 점은, 너무 빨리 읽었다는 것이다. 내가 좀 무성의해진 것인가. 아님, 많이 익숙해져 있어서 내용을 미리 쉽게 짐작했기 때문인가.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묵상 속에서 읽어야 할 글을 소설 읽듯이, 아니 신문기사 읽듯이 읽은 것 같다. 미안함보다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 책은 루카복음 15장 소위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한 권 내내 그분의 묵상를 풀어 놓은 것이다. 결론에 앞서 그 이름 자체가 문제 있다고 한다. 주인공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즉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인 것 같다. 저자는 올바른 명칭이 '아버지 사랑에 대한 비유' 혹은 기쁨의 메시지 또한 핵심이므로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되야 올다는 것이다.

 

읽어보면 공감한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체는 아버지 하느님이다. 우리는 그저 회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밖에 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기다리신다. 돌아온 아들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으시고 환대해주신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들이 반성을 했는지, 계산적인 귀향인지 등을 찾지 않는다. 그냥 돌아온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기쁘다.

 

이 복음 내용을 가지고 저자는 말한다. 하느님은 두려운 하느님이 아니시라고. 사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강했다. 요즘와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새삼 이 장면을 그린 램브란트의 그림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탕자'? 그렇게 말하지 말자. 아버지의 무한 사랑을 지극히 받고 아버지가 항상 염려하며 사랑하는 집나간 아들 정도로 말하자. 나 역시 그랬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항상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가 내 곁에 있음을. 아버지에게 의무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크신 사랑에 그냥 잠기고 싶어 함을. 그런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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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비만 - 내장비만의 권위자 이왕림 박사의 인생역전 프로젝트
이왕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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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별 게 없다. 그런데 이런 책이 23쇄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케팅 효과거나 어떤 다른 요인이 있을 것 같다. 아니면 그 만큼 우리나라 남성들 중 똥배 나온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고.

암튼 특별한 내용은 없다. 입에서 똥구멍까지 잘 들어가고 잘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부에 비만이 생기고, 그것이 만병의 근원이 된다.

아무리 상식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잘 새겨 듣기로 했다. 왜? 다 옳은 말이니까. 다만 물 먹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밥따로 물따로 건강법에서는 오전 물을 금하고 있는데, 이 책은 보통의 상식처럼 물을 많이 마실 것을 권한다. 다 나름의 장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입에서 똥구멍까지 건강하려면 특히 장과 간을 잘 해독해야 한다는 것. 독을 먹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독은 들어오니까, 가급적 섬유질을 섭취해서 독을 잘 빼내야겠다.

그 외, 특별히 쓸 말 없다. 할인 가격에 책이 나왔길래 샀는데, 굳이 안 사도 될 뻔 했다. 똥배, 조심할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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