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패"가 자꾸 생각나는..

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결코 가볍지 않아보이는 제목과 표지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정작 자신은 비를 맞으며 빈 의자에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한 남자.
표지가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빈 의자는 왕의 의자인가?"라는 생각만 살짝 해봤다.



한 때 최고의 주먹이라 일컬어지는 한 남자의 죽음 소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시골 마을에서 소년들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린시절 누구나 그렇듯 여기 저기 어울려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귀여운 사고도 치고, 그러다가 점점 발전해서 격한 싸움도 하고,
그들 사이에 여자도 등장하면서 점점 건달 과정의 수순을 밟아간다.

그들중에는 고향에서 유흥업소를 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가서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권력이 뭔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끼리, 고향 사람들끼리
의심하고, 배신하고 죽고 죽이는 사람들.
나라를 뒤흔드는 엄청난 권력도 아닌 그저 고향 마을에서의 최고라는 정도의
권력인데도 그렇게 치열하게 죽고 죽인다.
그렇게 혼자 최고로 우뚝서서 고향 사람들의 굽신거림을 받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고 싶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내 눈에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최고의 권력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전개도 빠르고, 문장도 깔끔해서 몰입도는 좋다.
그런데 전체적인 소재가 많이 비슷해서 그런지 읽는내내 영화 "짝패"가 자꾸 생각나서
마치 그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짝패"보다는 "친구"를 더 재밌게 봤기때문에
읽을동안 영화 "친구"가 생각났다면 더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몰입도도 좋고,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본성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지만
큰 재미나 감동은 별로 없었다.
성석제 작가님에 대한 좋은 평도 많이 듣고,이 책이 내가 접하는 첫 작품이여서 그런지
조금 더 묵직한 이야기이길 기대했던 나에게는 조금 못 미치지는 책이였던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책 표지의 의미가 다가온다.
제목의 의미도 다가온다.
결국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그 권력을 찾아서,
왕을 찾아서 움직이고 있다.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미치도록 처연한 이야기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하루 하루 비슷한 일상속에서 여러가지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신선한 책이 필요했고,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아주 신비스런 표지의 책.
바로 아가미였다.
한편으로는 블링블링해보이는 표지가 산뜻한 봄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순수해보이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처연한 느낌이 자꾸 눈에 밟혔다.

 

물에 빠졌지만 아가미때문에 살 수 있었던 아이는
할아버지와 손자인 강하에 의해 구조되서 "곤"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살아가게 된다.
곤이를 보살펴주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곤이를 괴롭히는 강하를 보면서, 또 너무나 여린 곤이를 보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을때마다 유리를 만지듯, 투명하게 비치는 작은 물고기가 내 손안에 있는듯 조심스러웠다.

허투루 읽으면 곤이가 상처입고 깨져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몰입되어 읽히는 속도감을 꾹꾹 눌러가면서 읽었다.

 

아가미가 있어서 물을 좋아하고, 물에 있어도 괜찮은 곤이는 정말 물고기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여렸다.
그래서 누구든 휘두르는 칼같은 말과 행동에 그대로 여과없이 상처받는다.

그런 곤이 옆에 왜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사람이 많은건지
덩달아 곤이한테까지 왜 그리 상처를 주는지
곤이 마음에 실금같지만 엄청난 상처가 될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 그들이 밉고 또 미웠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도 여전히 그들곁에 맴도는 곤이가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나중에서야 곤이를 그렇게 괴롭히던 강하의 진심을 알고,
자신과 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강하의 엄마의 진심을 알고는
그들의 삶이, 고통이 참 눈물겹고 처연했다.

 

작가가 "우리는 처음에 모두 물고기였다"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순수하고, 작은 실금같은 상처에 아파하는 실핏줄이 다 들여다보이는 여린 개체였을 것이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각박한 세상,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잔인한 세상,
그 안에서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으며 고통스러워 하는 세상,
그러면서도 안타깝고 처절한 모습에 눈물 흘리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로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변해버린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되서 씁쓸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곤이에게 상처주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난것도 어쩌면 내 모습이 보여 더 화가난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 상처입는 곤이가 답답하고 안쓰러운것도 그 또한 내 모습이 보여 더 안타까웠는지도.

 

한 글자, 한 페이지, 한 단락이 넘어가는게 아쉬웠던 책.
"위저드 베이커리"와 이 책이 동일 작가님이 쓰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완전 다른 분위기가 참 놀라웠다.

 

구병모 작가님의 다음 책이 정말 기대된다.

 

아름답고 가볍지 않은 미치도록 처연한 이야기. 아.가.미.

집중시키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한 책.

모킹제이 ㅣ 헝거 게임 시리즈 3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단 한 명의 생존자를 가리는 잔혹한 게임 이야기인 "헝거게임"을 읽고
쏙 빠져서 2부인 "캣칭파이어"까지 읽고 마지막 편인 "모킹제이"가 나오기를 엄청 기다렸다.
출간소식을 듣자마자 광속도로 주문을 하고, 배송되자마자 금요일밤을 홀딱 새며 읽었다.

 

헝거게임을 진행했던 스노우를 죽이기 위해 반군의 모킹제이가 된 소녀.
그녀가 과연 스노우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 것인지,
사랑하는 게일이 스노우에 잡혀있는데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스노우를 죽이기 위해 적지로 들어가면서 점점 희생자가 발생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긴장감속에서 머릿속에서는 영상이 돌아가듯 상상이 되고, 눈과 손은 책넘기기에 바빴다.

드디어 대단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1편부터 마지막까지 죽을 고비를 수도없이 넘기겨 잘 싸워오고 버텨온

가녀리지만 누구보다 강한 소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많은 것을 잃고,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얻는 것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냥 간단히 생각해보면 단 한 줄로도 내용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빽빽한 문장으로 400페이지가 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
1편인 헝거게임만큼의 긴장감까지는 아니지만 중반 이후에는 긴장감도 있었고, 결말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읽으면서 내내 영화 한 편을 보는듯한 전개와 느낌이 좋았고,
조금은 지루할 것 같은 영미 장편소설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헝거게임부터 시작해서 캣칭파이어, 모킹제이까지 뒤로갈수록 긴장감이 조금은 떨어졌고,

각 사건의 해결이나 결말이 간단한 느낌이 들었다.

모킹제이가 완결편인만큼 최종결말을 조금 색다르거나, 충격적인 반전으로 했다면 조금 더 여운이 많이 남지 않았을까 싶다.

 

아쉬운 점이 보이는 책이라 해도 분명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집중시키는 작가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유비를 넘어서는 을불

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오래전에 이문열 작가님의 10권짜리 삼국지를 읽은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삼국지에 대한 책은 엄청 많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책들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책의 몰입도와 실제와 픽션을 넘나드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기에 김진명 작가님을 좋아해서 기존의 출간된 책도 많이 읽었다.

신간 소식에 반가웠지만 고구려의 이야기, 그것도 6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조금은 망설인게 사실이다.
혹여 지루하고 재미없는 역사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 1~3권까지가 첫번째 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최소

10권 이상되는 책들의 출간이 늦어져서 지치게 될까봐 더욱 망설여졌다.

그래도 기존의 작가님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에 '일단 1권만 읽어보고 아니면 그만 읽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1권은 "도망자 을불"이라는 부제목으로 미천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을불이 미천왕 이름인지도 가물가물.
학창시절 국사보다는 수학,과학에 더 재미를 느꼈던지라 국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것을 또 한번 느꼈다.
그런데 역시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전개되는 속도감과 재밌는 구성과 이야기,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때문에 정신없이 읽었다.


고구려 왕들이라고 하면 광개토대왕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다른 왕들에 대해서는 지식도 부족하고 별로 강조도 되지 않아

부각되지 않았지만 여기 고구려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미천왕이 있다.
왕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대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음모들에 대해 뛰어난 기지와 왕다운 배포와 마음으로 번번히 감동을 주는 을불.

1권에서는 을불을 해치려는 세력들을 피해 안타깝게 계속 도망다니는 을불이 나오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그의 지략은 유비, 제갈공명을 넘어 통쾌함과 감탄을 자아냈다.

 

역사 관련 책을 이렇게 지루함 전혀 없이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순간에 "2권에서 계속"이라는 말을 보고 작가님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모른다.

1권의 아쉬움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2,3권이 출간되어서 정말 기쁘다.


앞으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기대된다.

더도 덜도 아닌 딱 동화책.

비스틀리
알렉스 플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현대판 미녀와 야수라고 했다.
최고 인기 배우가 주연인 영화도 곧 개봉한다.
무엇인가 판타지적인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을거라고 예상했다.
뱀파이어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트와일라잇이 떠오르긴 했지만 설사 비슷하다고 해도 트와일라잇을 재밌게 보았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초반에 나오는 채팅방 글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흥미로움을 유발시켜서 신선했다.
외모적으로 완벽하지만 내적으로 불완전한 주인공이 과연 어떻게 야수가 될지 궁금해서 페이지가 계속 넘어갔다.
자신의 외모만을 믿고 타인을 무시하다가 그 벌로 마녀에 의해 갑자기 야수가 되버린 남자 주인공.
2년내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녀에게서 키스를 받으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야수와 미녀 이야기와 100% 똑같은 이야기.


 

그러다가 야수집에 어떤 상황으로 인해 여자주인공이 들어와서 살게되고, 조금씩 친해지지만 여전히 키스는 받지 못한채 점점 시간은 흘러간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거의 다 될 무렵 여자주인공은 집에 갔다 온다고 갔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마녀와 약속된 2년이라는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끝날무렵 다시 만나게 된 미녀와 야수.
우리가 기존에 잘 알고 있듯이 진심어린 키스를 하게되고, 야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둘은 행복한 사랑을 하게 된다.


 

동화책 "야수와 미녀"와 단 하나도 다른 점이 없는 책이다.
야수가 되는 과정도 너무 평범하고, 야수와 미녀의 관계에 있어서도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도 없고,
뭔가 소설만의 특색있는 매력이 전혀 없다.
기본 구성은 야수와 미녀라고 알고 시작했지만 이렇게나 별다른 점이 없을 줄은 정말 예상못했다.

읽으면서 그래도 무엇인가가 있겠지 싶어서 계속 기대감을 놓치 않고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정말 "헉"하게 만들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야수와 미녀" 그냥 그 책이다.
원인, 줄거리, 결과가 전부 똑같은 그 책.


보통 책과 영화가 있으면 책을 영화보다 더 기대하게 되고, 재밌게 보는 편인데 이 책은 영화가 더 괜찮으려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영상으로 각색하고 잘생긴 꽃미남과 꽃미녀가 나온다면 책보다는 조금은 용서가 되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