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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지난 주말 오후를 [한 달 후, 일 년 후] 와 또 다른 사강의 책[마음의 파수꾼]을 읽으며 보냈다.
[한 달 후, 일 년 후]를 먼저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엔 바둑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오전에 대국을 했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모두 세 판을 두었는데 20점 이상을 깔고 두는 접바둑이었다. 어린 제자들과의 지도 대국이라 일부러 져주기도 하고, 새까맣게 깔고 두니 집이 모자라 세 판 모두 졌다. 그래서 였을까? 줄을 바꾸어 글을 읽을 때마다 바둑판의 일 선에 젖히고, 젖히면 잇고 줄을 따라 돌을 놓아서 한 연을 통째로 가두어 돌을 따먹는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에 집중이 잘 되었고 무척 재미있었다. 아마도 활자가 까만 바둑 돌로 보이는 착시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업병 같기도 하고.
[한 달 후, 일 년 후]는 여러 남녀의 연애 담이다. 이 책이 출판 된 것이 1957년이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출판된 책이 요즘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더 잘 통할 것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가 20대 초반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혼전 순결이 철칙이었고, 남녀가 사귀기 시작한 뒤, 손잡고 뽀뽀하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집에서는 귀가 시간이나 옷입는 것, 화장하는 것까지 간섭하셨다. 그래서 실전에서 못하는 연애를 책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 후, 일 년 후]를 반 쯤 읽었을 때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이 생각 나서 피식 웃었다. 물론 [한여름 밤의 꿈]과는 달리 [한 달 후, 일 년 후]에서는 요정이나 마녀는 등장하지 않고 결말이 뚜렷하지도 않다. 하지만 요정이, 마녀가 없는 현실에서의 [한여름 밤의 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A는 B를 사랑하고, B는 C를 사랑하고. 그렇다고 B는 A와 관계를 단절하지도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극 같았다. 출판사에 다니는 말리그라스 부부의 월요 살롱을 구심점으로 그곳에 오는 작가, 배우, 연극 연출가, 대학생, 알랭의 조카등,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
[한 달 후, 일 년 후]의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이 임신했다가 유산되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자식이 있는 커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결혼한 남편이, 또는 아내가 쉽게 바람을 피우고 다른이를 받아들인다. 결혼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없고, 고뇌 하지도 않는다. 애인이 있는 조제도 자크와 동거하는 중에 사랑하지도 않는 베르나르를 거절하지 않고.
[한 달 후, 일 년 후]는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성가신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삶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삶에는 우정, 호의, 그리고 특히 파니 같은 사람들의 이해심이 있었다. -P150
이 이야기를 지금 만나서 참 좋았다. 20대를 마무리하고 있는 내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