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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 ㅣ 보림문학선 7
레이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매스 스태에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책은 며칠 동안 내게 무거운 짐이었다. 읽어야 하고, 느껴야 하고, 고통을 느끼다가 기어이, 토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 더 핑계거리가 없어진 어느 날, 책을 들었다. 시작하니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아이, 15세 정도라고 하니 마냥 어린 아이는 아니네, 보고 들은 것을 충분히 생각하고 묵히고 삭혀서 제 것으로 만들어 낼 만한 나이이다. 가난하나 평온했던 삶의, 어느 날. 과부인 그의 어머니가 하는 일은 남의 집 허드렛 일이나, 아픈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일. 과부로 살면서,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더욱, 그런 사람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겠지. 그 분에 넘친 동정심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병을 낫지 못한 한 사람의 밀고(!)에 의해 마녀가 되고 만다. 다수가 마녀라고 몰아부칠 때, 혼자서 아니라고 하면 누가 그 소리를 들을까. 몇 날 며칠에 걸쳐 마녀 재판이 열리고, 무수한 증인이 나서고, 고문 끝에 마녀라고 거짓 자백을 한 어머니는 기어이,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구할 힘이 없는 아들은, 숨어서 그 모습을 다 지켜 본다. 그리고, 자신도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있는 힘껏 길 위를 달리다가 한스라는 은둔자를 만난다. 한스는 말없이 들어주고 들어주고 들어주었다. 아이가 슬픔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기고 평온을 되찾아가는 어느 날, 역시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일을 하는 한스에게 죽어가는 이가 찾아온다. 죽은 이는 죽어야 하지만 산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얼마 뒤, 한스에게도 부역감독관이 몇 명의 조수를 대동하고 찾아온다... 한 번 겪어도 일생 힘들 고통을 에스벤은, 두번 겪게 된다. 그러나, 처음보다 두 번째는 많이 고통스럽지는 않으리라. 한스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세상이 옳지 않음을, 그럼에도 세상을 향해 해야할 일이 있음을 배웠기에.
한스가 그런다. 진리라는 것들을 조심하라고. 이른바 참된 신앙에 매달리지 말고 건전한 의심을 추구하라고. 에스벤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나도 너무 어렵다. 목사직에서, 관청에서, 양심의 가책에서 도망쳐 다니던 한스가 드디어 한 오두막에서 머물러 자신을 죽이러 오는 세상과 마주할 때, 에스벤은 알았을까. 한스가 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머물러 있었는지.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 한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표상을 발견한다. 에스벤은 베드로이거나, 또 다른 제자이거나, 또 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이제 대답을 해야만 하겠다. 만약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나은가 아니면 그 바깥, 괴롭히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는 것이 나은가.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게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런데, 나는 내 의지의 선택보다 더 자주 괴롭히는 쪽에 서 있을 때가 많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나는 기대한다. 에스벤이 비록 도망쳤지만 훗날, 어느 곳에서 한스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 처럼, 나도 어느 날엔가 더 단단한 의지로 세상을 향해 설 수 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