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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성공요인을 들자면 여전히 현실분석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장들의 이론을 인용하고, 

그 견고한 사상의 벽틈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파격적인 시도라 할 것이다.

그 진단의 날카로움에 비해 깊이 없는 처방- 혹은 대안없는 비판- 을 가져왔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대 성과사회의 쉽지 않은 반성과 자각의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관심있는 사상가들의 책 인용이 반가웠다.

마치 내가 관심있는 작가들만 총출동시킨 듯한.

 

 

 

 

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일어난 심리적, 공간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24쪽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 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33쪽

 

 

 

 

근대가 낳은 노동하는 동물에 대한 아렌트의 서술은 오늘날 성과사회에 대한 관찰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후기 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노동을 통해 인류의 익명적 삶의 과정 속에 용해되어 버릴 만큼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40쪽

 

이어서 그녀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불쑥 사유의 힘에 호소한다.(...)

"사유의 체험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카토의 경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그러니까 그녀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기 의도와는 달리 사색적 삶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45,46쪽

 

 

 

 

 

 

 

호모사케르의 삶보다 더 많이 벌거벗겨진 것은 오늘의 삶이다.

호모 사케르는 본래 어떤 범죄로 인해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를 뜻한다. -42쪽

 

아감벤은 우리 모두가 잠재적으로 호모사케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주권자의 저주 아래 속박되어 있고 절대적 살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감벤의 사회 진단은 모든 면에서 현대사회의 실상과 어긋난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주권사회가 아니다.

우리 모두를 호모 사케르로 만드는 저주는 성과의 저주이다. 자기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성과주체, 호모리베르, 자기 자신의 주권자, 자기 자신의 경영자를 자처하는 주체는 바로 이러한 성과의 저주에 빠져 스스로를 호모 사케르로 만든다. 그러니까 성과사회의 주권자는 자기 자신의 호모사케르인 것이다-110,111쪽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 가지 과업을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47쪽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아렌트는 활동성의 변증법을 인식하지 못한다.(....)-48쪽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함]이라는 아포리즘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이런 점에서 그들은 게으르다....돌이 구르듯이 활동적인 사람들도 기계적인 어리석음에 걸맞게 굴러간다.-49쪽

 

 

 

 

병리학적 측면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아감벤의 존재신학적 바틀비 해석은 소설 자체의 이야기와도 맞지 않는다.

이 해석은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심리적 구조의 변동 또한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아감벰은 바틀비를 순수한 잠재력의 형이상학적 형상으로 승격시킨다.-58쪽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심적 억압과 부인의 부정성을 전제한다.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것처럼 무의식과 심적 억압은 매우 커다란 상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으로 이런 병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92쪽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친 노동을 좋아하고 빠른 자, 새로운 자, 낯선 자에게 마음이 가는 모든 이들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너희의 부지런함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려는 의지이며 도피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에 몸을 던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내실이 부족해서 기다리지도 못한다-심지어 게으름을 부리지도 못하는구나!"-112쪽

 

 

 

 

 

 

자본주의 경제의 관심은 좋은 삶이 아니다.-112쪽

[미주]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한 자본소득이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왜나하면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삶이지 좋은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정경제의 과업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화폐로 된 재산을 지키거나 무한히 증식시켜야 한다는 견햬를 내세운다. 이러한 신념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삶을 위한 부지런한 노력이다. 하지만 좋은 삶을 위한 노력은 아니다.

그런데 그러한 갈망이 무한히 가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무한한 가능성도 갈망하게 된다." <정치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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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열거한 책들 이외 본문에서 언급한 사상가들의 문장이 어떤 책에서 인용되어 있는지 잘 몰라서, 혹은 도서에 검색되지 않아 간략히 남긴다.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면역성. 삶의 보호와 부정> -14쪽

- 장 보드리야르 "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상태"를 지적하기도 한다.-17쪽

- 알랭 에렝베르의 중심테제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말의 유산인 주체 개념은 갈등이라는 준거점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우울  증의 승리는 바로 이러한 준거점이 상실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다.-99쪽

- 카프카의 <단식곡예사>에서 환상은 더 철저하게 사라진다.-61쪽

- 피터 한트케 <피로에 대한 시론>에서 분열적인 피로라고 부른 바 있는 바로 그 피로다-66쪽

- 카프카는 대단히 난해한 단편 <프로메테우스>에서 몇차례에 걸쳐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재해석 작업을 수행한다.-81쪽

 

 

 

 

역사적으로 내노라하는 사상가들이 128페이지의 짧은 지면으로 불려 나와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혹독한 비평에 내몰린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이런 독특한 관점 또는 전략이 흥미를 유발했고 독서에 몰입도를 가져다 주는 짜릿한 기제가 되었다. 하지만 사상가의 저서들을 인용하며 한움큼 뚝 떼어 놓은 듯한 짧은 인용문을 갖다 놓고 단정적으로 결론짓는 스타일이 매력적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반론의 후폭풍에 시달릴 저자를 생각하니 걱정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한병철의 치명적인 단점(?)은 나에게 매혹적인 가르침을 선사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일지라도 그 권위와 아우라, 대중들의 굳건한 통념에 주눅들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테제가 작금의 현실과 부합하는지 꼼꼼히 따져볼 수 있는 비평의 자세 말이다.

때론 신중한 척 뜸을 들이며 안전한 다수론 내지는 절충론에 안착하는 것보다

날것 그대로의 내 생각을 개진해 나간다는 초심을 새롭게 실천해 볼일이다.

어차피 독서도, 삶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위한 여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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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7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8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오치즈누나 2020-01-22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

북프리쿠키 2020-01-22 23:25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님~
레오님 서재에도 놀러가께요^^ 좋은밤 되시길~~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서
타자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서문 6쪽

얄부리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도서관 까페에서 간만에 북프리님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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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인 2018-02-2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부리한데 잘 안 읽히는 책이지요 왜그리 철학 사상가들의 이름과 주장들을 다이제스트하게 전달하던지 아 너무하시네 했는데 강의한걸 책으로 만든거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한 학기 분량을 읽으려니 저는 힝들었던 사실은 짜증나고 지루했던 기억이 있네요ㅎ

북프리쿠키 2018-02-26 23:40   좋아요 0 | URL
2010년도 이 책이 나왔으니 그 당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서이기도 하네요.
전 임팩트해서 좋던데.. 유랑님은 별로였군요 ㅎㅎㅎ
문구하나하나가 톡톡 씹혔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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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론, 사랑, 자연, 돈, 정치 5가지 테마로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책.
이 책 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알랭드보통. 제대로 포텐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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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이란 뜻)>.
이 작품은 ‘펠리페 4세의 가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왜 피카소는 1957년(그가 75세이던 해)에 많은 시간을 들여 역사속의 이 위대한 작품을 자신만의 형태로 창조했을까?

‘우리의 틀에 박힌 일상은 대체로 우리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일깨우지 않으며, 예술계가 찌르고 치근대고 좋은 의미로 도발할때까지 내처 겨울잠을 잔다. 이질적인 예술 덕분에 나는 내 안의 종교적 충동, 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귀족적인 면, 통과의례를 경험해보고픈 욕구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런 발견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식을 확장시킨다‘-58쪽

미술관에서 느끼는 이질적인 느낌, 현실과 동떨어진 무용감, 수많은 반발심과 의혹감,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일부러 이해못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현대미술작품들을 볼때 느끼는 이중성..

일랭드보통은 말한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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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2-23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넘 좋죠?^^

북프리쿠키 2018-02-23 20:25   좋아요 0 | URL
영혼을 어루만져주는그림과 명문장들의 향연이네요^^
 

한일합방때 태어나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김해경.
표지그림은 그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의 <친구의초상>
이란 작품이다.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품번 300번으로
그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 일>
과 함께 12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날개>란 작품 외 모든 단편이 낯설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그의 천재적 글들을
소화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첫작품 첫문장부터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기인 동안 잠자고 짧은 동안 누웠던 것이 짪은 동안 잠자고 기인 동안 누웠었던 그이다.‘- 지도의암실 7쪽

이 책을 읽는 나의 심정, 말하자면 이렇다.
‘그도 모르는 채 밤은 밤을 밀고 밤에게 밀리우고 하여
그는 밤의 밀집부대의 속으로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는 모험을 모험인 줄도 모르고 모험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은 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그의 방정식 행동은 그로 말미암아 집행되어 나가고 있었다.- <지도의 암실> 중 21쪽

아~ ㅎㅎ 한글이 이렇게 어려웠나.
시달렸지만 도선생의 초기단편들이 그립다.
<백야>를 마저 읽고 시작할 껄. ~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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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2-23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이 좀 어렵긴하죠.
어떻게 뭐 이렇게 어려워 하다가도
뭔가 모를 동경이 가기도 해요.
그건 아마도 그가 요절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암튼 독특한 작가임엔 틀림없어요.ㅋ

북프리쿠키 2018-02-24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어려워서 잠시 책꽂이에 꽂아뒀어요..휴..
당시 종로에 ‘제비‘라는 다방을 낸 사장님이던데..
현재 그곳을 기념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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