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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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나라 안팍의 관심을 집중해서 받은 APEC의 뉴스를 보면서 결국 머리속에 남은 것은 '깐부치킨 그렇게 맛있나'하는 단순한 생각뿐인 것이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세상에. 읽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읽다가 덮어둔 것도 한심스러운데 이정도면 정신차리고 다시 제대로 읽어야 되는게 맞지 싶어 책을 잡았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까,를 깐부치킨 맛있나 대신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겨레출판의 신간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찾아보자. 

 트럼프의 재당선 이후 세상은 미국의 행보에 매번 놀라움을 경신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는 정세도 불안과 긴장을 유도하고 있지만, 급작스럽게 때려지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국제 기구 협약 탈퇴 움직임은 당장 발등앞에 놓인 불길이 되었다. 와중에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기술, 경제 격차를 좁혀나가며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홍콩에 가해진 무력 진압의 충격이 생생한데 여전히 주변국(161)과 내부에 대한 압박마저 거세다. 그냥 상대하기도 난감한 '양 국가가 '상대편에 배팅하지 말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160)'는 와중에, 우리나라 내부마저 미국이 우리나라를 구해주리라 기도하며 중국이 우리나라를 망치고있다는 음모론에 휩싸여 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 두 나라의 패권 경쟁 속에 끼여있는 한국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현상 진단과 생존 처방을 정치 외교 경제 기술 분야 전문가 4인의 대담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주제에 비해 읽기 편하다. 대담집을 접할 일이 많지 않은데 처음 읽고 결국 다 읽지 못한 '평행과 역설*'에 비하면 친절하기가 선녀와 다름없다. 그러니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포기하지 않고 흐름을 파악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독자라면 부담을 내려놓고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선택해도 좋겠다.    

 " 예전에는 그래도 선택의 여지를 줬다면, 이제는 '모 아니면 도'입니다. 우리가 구축한 생태계에 들어오든지 아니면 우리의 적이 되든지. 현재 미국의 동맹국인지 우방국인지, 지금까지 미국과 얼마나 친한 나라였는지는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4차 산업 혁명으로의 이행 단계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가르는 결정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판단에 기초하느냐가 앞으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135" 

 이번 APEC 이후로 조금 변화를 보이는 양국과의 관계를 보면서 민감한 시기에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결과를 만들어낸 회담이 오간듯해 APEC 개최를 두고 AI 기본원칙, 데이터 접근성, 기후위기, 국가안보 등(202)의 주제로 기대하는 바를 제시했던 대담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해졌다. 번쩍이는 금관을 선물로 준 일을 두고 미국 내에서 꽤 큰 조롱과 비난의 소리가 있었다. 그 힐난이 지금 미국의 행보를 결정짓는 사람에게 또다시 권력을 손에 쥐어준 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행보 앞에서 적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했는지 판별하는 자성의 소리보다 적다는 점이 씁쓸하다. 국가에 대해서는 오직 한가지 정답밖에 남지 않은 듯한 중국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 결국 인간의 욕망을 다룰 수 있는 산업이 바로 미래 산업 같아요. 성적인 욕망,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오래 살고 싶은 욕망,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 ...중략... 인간의 욕망과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미래를 발견하려는 노력, 이것이 훗날 한국의 저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156" 

 책에서는 국제 정세의 현상 분석과 문제 제기 뿐 아니라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미국보다 중국의 발빠른 선점을 크게 주목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어떤 산업에 투자하고 육성해야할지 깊이있는 모색과 장기적인 연계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 불안정한 정권이 끼어 낭비된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입이 바짝 마른다는 표현이 종종 나올 정도로 현 상황에 대해 큰 위기감을 가지고 토로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대처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공감하며 읽었다.  

 *평행과 역설 2003.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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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미래가 있다 - 10대를 위한 해양과학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45
이고은 외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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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흥미와 도전을 안겨 주는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해요. 바다와 기후, 자연을 연구하는 일은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큰 문제들 앞에서 꼭 필요한 기초가 될 겁니다. 220" 

친절한 어조의 자세한 설명을 눈으로 따르다보면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깊이 빠져들듯이 매료된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지만 바다에 대해 어떤 것을 알고 있느냐고 한다면 짜고 거센 파도와 발이 빠지는 모래 같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바다에 대한 이미지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요즘은 바닷물 온도가 달라지면서 포획되는 어종도 달라지고(106) 해초류의 양식도 피해를 입고 있다고 했던가, 해파리를 발견해서 국립수산과학원에 신고하면 무드등을 준다고 했던가, 어디까지나 바다를 이용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 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대상이자 지키고 싶은 대상(7)으로 바다를 깊이 탐구하는 시선을 공유해보니 새로운 재미가 느껴져 신선할 뿐 아니라 바다와 사람까지도 다르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깊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다 파헤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반대의 공간인 우주와 비슷하게 놓여진다. 그간 여러 영화에서 고립, 낯선 생명체, 기후위기(190) 같은 공포 요소로 심해를 사용해왔는데, 이런 심해에 대한 두려움을 묻는 질문에 "수심이 2m든 6,000m든, 어차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건 마찬가지(33)"라고 답하는 부분에서 웃음과 함께 깨달음이 솟았다. 이런 마음가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내려갈 용기가 생기는거구나. 더불어 공포로 연상된 심해와 우주의 연결고리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으로도 함께 이어져 '행성해양학' 분야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물고기가 생선이 되는 것은 아닌 이유를 쉽게 설명해준 '생선인가, 물고기인가? (74)'의 내용이 반가웠는데, 알 것 같기는 한데 설명하자니 난감했던 궁금증을 내심 품고있던 주제라 머리부터 꼬리까지 꼭꼭 씹어먹듯 읽어나갔다. 물고기를 두고 생선구이 순위표를 그려넣고 입맛만 다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진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남겨주었다. 어른이 보기에도 멋진데 만약 아이들이 '바다에 미래가 있다'를 읽게 된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미래도 바다에 심어두고 싶어져 해양과학과 관련된 꿈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졌다.  

" 사람들은 과학자라고 하면 늘 멋진 걸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실패'의 연속이에요. 예를 들어 바다 생물에서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해 수개월 동안 분석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발표한 물질이면? 그 시간은 그냥 '꽝'이에요. 실험실에서 몇 달 동안 분자 하나를 합성하다 마지막에 구조가 안 맞으면? 역시 '꽝'이죠. 
그래서 과학자에게 실패는 일상입니다. 처음엔 속상하고 자존감도 흔들리지만, 점점 '실패는 과학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게 돼요. 182" 

물론 책을 읽으며 솟아난 희망을 다시 잠재워줄만한 내용도 나온다. 바다를 연구하는 일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대로 보는 것만큼 모험과 도전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는 것, 심각한 기후위기가 바닷속에서도 유의미하게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특히 바다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를 전하는 내용들은 단순 식탁의 위기로 체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처음 책을 읽으며 이런 세상이 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눈을 떴다면, 책을 덮을 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까로 방향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펴보니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창비청소년문고의 45번째 출간도서였다.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10대를 위한 해양과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고 매력적이라 창비청소년문고에서 그간 펼쳐낸 다양한 교양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다른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들뿐을 위한 내용 뿐 아니라 노동인권, 경제기초, 화장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오랫동안 출간되어 온 시리즈였다. 특히 '똑같은 빨강은 없다(창비 청소년문고 32)' 같이 미술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책은 화장품 색조계의 기조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는 문구와 닮아 흥미로우면서, 어른이 보기에도 유익하다는 평이 함께 해 같이 추천할만 하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까지 넓게는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인 고등학생까지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어른의 마음에도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니 청소년들에겐 더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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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쓴 가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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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가을아. 너 말할 줄 아는 거 다 알아." (33)" 

'안경을 쓴 가을'은 묘하다. 그 안에서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빵을 굽고, 티타임을 가지며, 마치 사람처럼 거리를 산책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는 형을 대신해 안경을 쓰고 형인 척하는 강아지 '가을'이가 있다. 귀여운 상상의 세계가 재밌으면서도 대체 어떻게 된 세상일까 어리둥절해진다. 

동물들은 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가 드물게 찾아오는 가족들에게만은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안다.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나눠주는 연인이 때로 다툰다는 것을 안다. 가족들은 안경을 쓰고 옷을 입은 강아지 가을이가 형인 척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생일 축하를 하고 함께 시장을 가지만, 학교 친구들도 아무도 가을이와 형이 바뀐 것을 모르지만, 오직 동물들만이 가을이 강아지임을 알아본다. 

사람들에게 있는 여러 모습을, 오히려 사람들은 몰라주지만 동물들은 지켜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르는 사실을 지나치는 동물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 타인들은 눈치챈다. 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형인 척하는 가을이를 알아본 고양이, 겨울이가 누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온다. 가을이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겨울이가 불편하고 겨울이는 사람 행세를 하는 가을이가 수상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감하고, 가을이와 겨울이의 관계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보인다. 

같은 학교 여자아이가 귀엽다고 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되어보고 싶었던 형은 집을 떠나 놀이공원, 박물관, 뮤직바, 바닷가를 헤맨다. 길에 버려진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찾고, 길 위의 고양이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환상적인 세상답게 형의 여정도 무사히 흘러간다. 중학교 2학년인 형의 짧은 외출은 '집 떠나면 고생이라(186)'는 교훈과 함께 마침표를 찍는다. 형이 왜 집을 떠났을까 하는데에는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가까이, 내부에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떨어져, 외부로 떠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다는 거리감과 바라보기, 바로보기를 느낄 수 있다. 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형이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겨울이가 산책을 통해 보는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처럼, 산책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낙엽 가득한 가을을 배경으로 다가올 겨울까지 계절을 한껏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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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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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가깝고, 음식이 맛있고, 여행지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서 동선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사람들이 친절하다. 그래서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를 봤을 때 정말 대만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대만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자라고, 최근까지도 풋풋한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몇편 만날 수 있어서 일까, 대만하면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에 다정함과 친근함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동안 17번 대만을 여행했다고 하는데 책에는 여행과 함께 '사람 이야기'를 담아내 더 궁금하고 마음이 끌렸다.  

주로 대만하면 떠올릴 수 있는 예스진지를 방문하거나, 101타워, 중정기념관, 야시장 같은 곳을 구경하며 타이페이 안에서만 머물렀는데, 가장 최근의 여행에서 근처 온천 마을인 우라이에 다녀온 것을 빼면 단조로운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에필로그에도 짧게 언급된 우라이(250)는 가는 길이 구불구불해 험난하지만 그 풍경만큼은 감탄을 자아내는 온천 마을로 일정이 된다면 꼭 찾아가볼만한 곳이다. 내가 이렇게 재미없는 여행자였던가 싶어지도록 그동안 전형적인 여행지만을 다녔던 것에 아쉬움이 생겨날 정도로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장소들을 보며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대만이라는 나라에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다. 대만은 많이 가보았으니 한동안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보리라 생각했던 마음이 달라졌다. 특히 타이중이나 르웨탄의 풍경(127/133)의 여유로움이나 타이난의 월세계지경공원(215)의 독특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아름다운 사진 속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지금껏 대만으로 다섯번 이상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데, 갈 때마다 친절한 대만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어느 여행지보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다가와 먼저 도움을 주려고 해서 고마웠던 좋은 인상이 남아있다. 핸드폰을 들고 길을 찾을 때도 선뜻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와주고 목적지까지 같이 걸어주기도 하고, 코인로커 앞에서 사용법을 찾을 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먼저 다가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선의인지,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들을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서 마주할 때마다 새삼 느끼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의 이런 면모는 경험할 때마다 고맙고 배우고 싶은 점이라 여겨졌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친절하면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몇 배는 더 좋게 남는 법인데, 그래서 자꾸 대만을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대전에 갔을 때도 그랬는데, 큰 대자를 붙인 지역 사람들은 마음도 넓어서 그런가, 하는 한가로운 생각도 문득 들었다. 

대만에 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맛있는 음식을 꼽는데, 갈 때마다 반드시 딤섬과 곱창국수를 먹었다. 이 두 음식은 대체 할 수 없는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대만에 간다해도 반드시 다시 먹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꼭 추천해줄 대표적인 음식이다. 지난 번에는 여행 시기가 맞아서 석가를 먹어볼 수 있었는데 달콤함이 인상적이라 굳이 마트에 들러서 사먹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책에서도 석가 씨를 거르며 귀찮아도 사먹게 되는 매력(231)에 대해 토로하고 있어 공감하며 웃었다. 

물론 대만 여행에도 단점은 있다. 더운 시기에는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찜통에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오래되어 아름다운 골목과 거리 풍경엔 그만큼의 불편함도 있다. 게다가 날씨 탓에 모기도, 특히 바퀴벌레도 많다. 저녁과 오전에 길을 걷다보면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여행객들의 것임이 분명한 비명도 가끔 들려온다. 하지만 대만은 정말 매력이 넘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기분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를 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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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오딧세이 -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김태윤.장민영.황종욱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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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최현석 셰프가 한 "주방에서 셰프보다 더 높은 것이 재료다"라는 말이다. 제철의 좋은 재료가 음식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하고, 그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마저 셰프의 능력이기도 하다. 요리에 있어 그만큼 재료가 중요한데, '로컬 오딧세이'는 재료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계절과 지역을 뛰어넘는 접근성과 새로운 농법,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배양육, 고기를 대체하는 채식 재료,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환경이 우리의 식탁 앞에 다가오는 지금 그럼에도 근본이 되는 제철, 특산의 식재료가 우리 식탁과 사회, 삶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책이라 기대되었다.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이 식재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소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희망만 품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식재료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솎아내 버려지던 재료를 새롭게 활용하고, 소비함으로써 생태계 유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짚어주는 노력이 엿보여 특별했다. 그 중 하나로 '다 자란 생선 먹기(371)'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금어기를 정하거나 알을 밴 개체, 미성숙한 개체를 잡지 않도록 하여 자원을 보호하려는 노력에도 굳이 불법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홍게(93)를 소개하면서 어획금지 기간을 명시하고 있지만, '빵게'라는 표현을 처음 듣게 된 것도 불법 소비 문제 제기를 하는 기사 덕분이었다. 알을 밴 암컷 게를 뜻하는 빵게는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엄격히 소비, 유통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별미로 여겨 알음으로 몰래 거래를 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특별한 맛을 찾는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은 단순 수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홍게와 함께 칠게(168)를 소개했는데, 최근 들리는 말로는 동남아에서 많이 잡히는 블루크랩(청색꽃게)이 수온 변화로 제주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잡힌다고 한다. 땅 위에서도 사과, 배 등 오랜 시간 지역명과 함께 붙어오는 익숙했던 특산물 지도가 변화하고 있는 요즘, 책에서도 제주 바다의 변화(220)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처럼 바다 생태계의 변화도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체감된다.  
 게에 대한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일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가장 재밌게 들었던 메뉴 소개 중에 남발게가 있다. 오늘은 특별히 게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게를 준비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게요리를 내어주었는데, 처음 들어보길래 뭐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남이 발라준 게 아니겠냐며 답해와 웃었던 기억이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게는 역시 남발게가 최고라고 농담같은 진심으로 동의했다. 그 뒤로 게만은 제철이나 로컬보다 남이 발라준 것을 일등으로 치게 되었다. 

인상깊은 다른 재료 중 하나는 제주에서 발굴한 식재료로 나온 메밀(222)이었다. 메밀과 제주, 사실 메밀이라 하면 강원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어서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메밀 최대 생산지역이 제주도로 되어 있었다. 강원도의 메밀 생산량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제주도에서 생산한 메밀을 강원도에서 가공하기도 한단다. 한번 지역 특산품으로 깊게 인식이 된 탓에 제주도에 가서 넓은 메밀밭을 여러번 구경하기도 했음에도 고정관념이 되어 생각지 못했던 사실인데, 여기엔 [메밀꽃 필 무렵]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고급으로 여겨지는 귀하고 좋은 재료가 많지만 괜히 파인다이닝 같은 식당에서 계절별로 메뉴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마카세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계절별로 초밥의 재료가 다르게 나온다. 이는 메뉴 구성에 변화를 주어 방문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때에 따라 구해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굳이 비싼 값을 내야하는 식당들이 아니더라도, 제철의 음식을 챙겨먹는다고 하면 여름의 빙수, 겨울의 붕어빵 같은 간식거리들도 때에 맞춰 먹었을 때 가장 맛이 좋지 않은가. 미식은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 

 '로컬 오딧세이'는 이 가까움을 생생한 현장감으로 바꾸어 전달하고 있는데 재료와 지역, 생산자에 대한 풍부한 소개가 매력적이다. 기장의 말미잘(44)에 대해 소개할 때는 익숙하지만 낯선 재료에 대한 당황과 구도의 자세가 재밌었고, 의외성으로 이것도 먹나 싶었던 것은 말미잘보다 오히려 송순(128)이었다. 솔잎이나 송홧가루는 알려져있지만 송순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말피 레몬(194)에 대한 소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다양성과 변화를 통해 탄소발자국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식탁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를 마주해보면, 사실 여전히 회의적이긴 하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그보다 더 넓고 다양한 범위에서 우리의 예상보다 가파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고, 식탁의 변화는 그보다 더디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버티게하는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로컬 오딧세이'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한 식탁에 앉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식만이 아니라, 재료와 시대에  대한 인식과 연대가 함께 공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먹고 사는 일', 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예사로이 넘겼던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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