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아이들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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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결국은 혼자서 가야 하는 길. 누구도 대신 죽어 줄 수 없듯이 누구도 대신 저 강을 건너 줄 수 없다. 친구들은 이 땅에 남을 것이고, 나는 새로운 땅으로 떠나야 한다. 외롭고, 무섭지만, 그래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p 87 "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말이 좀 생소해서 찾아보았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원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한다.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문득 자연스럽게 실향민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낯설게 생각했는데 전부터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의식과 다름 없었구나 싶었다.


 소설은 머리를 땋듯 세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처음엔 좀 헷갈려서 여름과 설이의 이야기를 여러번 다시 읽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합쳐지게 될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낯선 북한식 표현들도 많아 아래 달려있는 주석을 참고하며 읽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표현들이 의미를 어림짐작으로 알 것 같은데 우리가 쓰는 말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많았다.  


 " 아니, 아랫동네 여성분들은 이렇게 혁명적으로 사람을 사귀시나. p137 "


 2023년 6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 북 영사관 가족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이 영사관 가족의 실종 사건을 다루며 그들이 한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러시아 공안 당국이 이들 모자를 체포하기 위해 모스크바 행 항공기를 강제로 회항시켜 공항에서 이들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축구선수가 꿈이고 손흥민을 좋아하는 '한광민'의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보았던 이 사건이 떠올랐다. 


 " 지우자. 비우자. 그리고 한 마리 물고기가 되자. 내게도 분명, 태어난 이유가 있을거야...... p154 "


 '민설'이 돼지우리에서 숨어지내다 가족들도 등지고 고향을 떠나와 갖은 고생 끝에 브로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여자가 부족해 돈을 주고 신부를 사오는 낯선 몽골 남자의 집이었다. 여성들은 탈북을 시도하며 브로커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한다는 기사를 흔히 본 기억이 떠올랐다. 설이 강제로 남자에게 보내졌을때는 소름이 끼쳤는데, 죽을 각오로 저항해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을땐 우유를 먹이고 먹을 것을 싸서 보내준 할머니의 마음은 또 어떤지 사람이 가진 복잡한 면면들을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 "대가로 뭘 원하죠?" 미카엘인가 하는 작자가 달짝지근한 미소를 보냈다. 실없이 왜 자꾸 웃는거야. 흥, 저런 달콤함에 속을 만큼 바보가 아니야, 난. "원하는 거 없어." "거짓말하지 말아요." 나는 다시 섬으로 눈길을 주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인간들이 저 섬만큼이라도 솔직해지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게, 딱 하나 있기는 있어." 거봐, 내가 뭐랬어. "로즈(여름)의 행복." p142 "


 사람이 가장 무섭고, 또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파도의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며 마음을 저미고 감동을 준다. 여름이 미카엘을 만나 그의 선의를 믿기로 한 것, 광민이 배낭여행을 온 일행들과 우연히 만나 남한 대사관으로 가는 법을 전달받게 된 것, 설이를 팔아넘겼던 브로커 부녀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와 함께 떠나기로 한 것이 그렇다. 결국 이들이 만나 함께 파도치는 바다에 서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전부를 버리고, 걸어서 가까스로 닿게 되는 생에 대한 도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고위층의 잇단 망명으로 혼란해진 북한 체제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고발'이라는 책을 낸 반디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재조명 되기도 했는데 '파도의 아이들'도 함께 관심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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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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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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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꽤 나쁘지 않았어 - 정신과 의사 캘선생의 하루 한 장 상담
유영서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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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이 요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독서를 하고 있는데 꽤 좋더라고 하며 연락을 했다. 그러냐며 반색을 했지만 내심 찔렸다. 언젠가부터 독서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시간에 독서만이 올바르고 내세울만한 취미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독서를 멀리하고 무엇을 했냐하면 또 그만 못한 것들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찜찜함이 남는다. 지인이 읽고 있는 책이라며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라는 책 제목을 알려주었는데 책 제목을 보고 요즘 심리적 압박을 받거나 분노 조절이 잘 안되십니까 농담을 하다 그때 마침 책방에 놓아두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 p.233 [이유 없이 화나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감정의 브레이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밟아봅시다. 살짝씩 밟다 보면 속도가 줄어들 거예요.] "


 사실 파란대머리 캐릭터인 정신과 의사 캘선생과는 구면이다. 2023년 제목을 떠올리면 햄버거를 먹고 싶어지는 책 1위로 선정된(내가) '나는 왜 내 마음이 버거울까?'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묘하게 킹받는 그림이면서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답변해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돌아온 캘선생은 여전히 킹받는 그림이면서 전보다 더 가벼워졌다. 가벼워졌다는 것이 얄팍해졌다는 게 아니라, 마치 요즘 저당, 제로 식품이 유행하는 것처럼 맛은 그대로 살리고 20% 더 가벼워졌어요! 하는 느낌이다. 


 "하루 한 장 상담"이라는 형식에 맞게 한 쪽에 질문 하나와 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어찌보면 인스타그램 무물을 책으로 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p.88 [입사 이틀 차,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하고 상담 내용과 함께 답변으로 [이틀... 아직 매우 부족...] 같은 내용이 그림과 함께 있는 것이 전부다. 짧게 다양한 내용을 답변하는 데다가 분량도 약 350 쪽에 달하는 책이라 순식간에 술술 읽히게 되다보니 읽다가 약간의 정신없음을 느꼈다. 말을 줄였는데도 말이 많다고 느껴진다. 텍스트가 수다스러워보일때 쯤 짤막하다고 한꺼번에 다 읽지 않고 하루에 조금씩 분량을 나눠서 읽기로 했더니 훨씬 나았다.  


 지인이 읽고 있던 책을 다 읽고나서도 다스려지지 않은 분노가 남아있다면 재미와 가벼움으로 남은 잔여물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꽤 나쁘지 않았어'를 추천해줄 생각이다. 지난 제목도 참 마음에 들지만 이번 제목도 잘 지었다고 생각이 드는 게, 매일 하루를 정리하면서 좋았던 날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지쳤더라도 무사히 오늘이 어땠었는지 되새겨볼 여유가 남았다면 '꽤 나쁘지 않았'던 날로 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센스있는 변신이 반가웠던 캘선생과는 다음 책으로 또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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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배달부 모몽 씨와 꼬마 쥐의 선물 웅진 세계그림책 261
후쿠자와 유미코 지음, 강방화 옮김 / 웅진주니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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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책이나 청소년 도서를 종종 읽는다. 어렸을 적에도 좋아했긴 하지만 지금껏 종종 읽는 이유는 분량이 짧아서 가볍게 읽으며 생각이나 기분을 전환하기 좋고 내가 내도록 고민하거나 굳어서 돌아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기에도 좋다. 이 책은 몇 살 정도가 대상이고 어떤 식으로 독후활동을 유도하면 좋을지 진단내리는 버릇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내 마음에 들고 재밌고 좋아서 읽는다.


 제목이 참 긴데 '하늘 배달부 모몽 씨와 꼬마 쥐의 선물'을 처음 보고 그림이 아주 귀엽고 동화적이라 한눈에 반했었다. 책이 도착했을때 같이 온 부채마저 귀여워서 책장에 올려두고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한동안 밖을 나설 일이 없어 바람 한 번 내본적 없이 그대로 잠들어 있게 되었다. 상황이 좀 나아지고 나서 찬찬히 책을 읽으니 귀여운 그림과 약간의 반전으로 글밥이 좀 되었다. 


 '하늘 배달부 모몽 씨와 꼬마 쥐의 선물'은 동물들이 사는 숲에서도 우리의 택배처럼 서로 물건을 주고받고, 물건을 전달해주는 배달부 동물들이 있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포를 보낼 때 나뭇잎에 주소를 적는데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바람에 주소를 찾기 어려워진 배달부 해오라기 씨가 도토리 마을 녹나무에 사는 꼬마 쥐 미이에게 전나무 숲 그루터기 집 뾰족 할아버지의 소포를 잘못 전달해준다. 이 잘못된 배송으로 닿은 미이와 뾰족 할아버지의 우연은,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보낸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과 미이의 엉뚱함으로 따뜻한 인연이 되어 이어지게 된다. 


 어른의 시선으로는 긴 한숨과 함께 이마부터 짚을 택배 오배송 사건이지만 동화로 보면 그저 귀엽기만 하다. 처음 봤을때는 미취학 어린이 대상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초등 1학년 독후활동을 겸하기에 적당한 내용이다. 아이들과 책을 읽었을 때 뾰족 할아버지에게 답장 써보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습득했을때, 잘못 온 물건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활동을 곁들이기 좋겠다. 


 요즘 동화들의 세련되고 개성적인 그림들도 좋지만 이런 부드러운 색감의 귀여운 그림들이 더 익숙한 느낌이라 반갑고 기쁘게 읽었다. 연작으로 다른 책들도 있어 하나씩 모아보고 싶은 예쁜 동화다. 날은 꿉꿉하고 건강의 문제가 생겨 한동안 거동이 어려운 중에 책방에 올려두었던 책들을 다시 펼치게 된 것만으로 한결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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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한 시선 - 13개국 31개 도시 여행에서 만난 일상의 장면들
이지은 지음 / 꾸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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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나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책 때문은 아니고 전부터 계획된 일정이 있었다. 여행이 이미 정해진 시간에 갑작스럽게 책이 끼어들었다. 책을 가져가도 될까 망설인 것이 무색하게 손바닥만한 그보다 조금 작고 더 얇아 가방의 어느 주머니 하나에 넣어도 괜찮을 크기의 책이 도착했다. 예전에는 가끔 여행가방에 책을 몇 권 챙겨가곤 했는데 책이 상하는게 싫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낭만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오늘처럼 현실이 싫었던 날은, 낭만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 세사르 바예호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

어느새 중년인의 시간을 걷고 있는 나는 서울의 풍경을 떠올릴 때 남산타워와 63빌딩 그리고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을 꼽는다. 책에서는 'N서울타워(p11)'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아직 외우지 못한 낯선 이름을 마주할 때면 어색해지곤 한다. 차를 타고 서울 어딘가를 지나다 멀리서도 보이는 롯데타워를 보면서 미세먼지를 가늠할 때도 있지만 그 풍경은 어딘가 신기할 뿐, 내가 여기에 있다는 실존 증명같은 안심이 되어주진 않는다. 저자도 같은 지점을 짚고 있어 매우 공감했다. 책은 짧지만 내 안에 넘쳐나는 것들이 있었다. 감성적인 사진과 글귀가 판에 박힌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오히려 빠져들었다. 좋았다.

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던 옛 집 근처에 갈 때면 매번 바뀌는 풍경에 섭섭했다. 내가 이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낡아만 가던 오랜 풍경이 어느날부터 갑자기 한뭉텅이씩 지워지고 새로 채워져갔다. 이십년이 넘게 늘 같은 풍경을 봐오면서 평생 그 동네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져 매번 졸업하는 기분으로 먹먹했다. 한때는 그 안에서 모든 것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 무거웠는데 내가 도망치듯 떠난 자리에서 그대로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걸 보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으며 '사라지지마'하고.

" 여행의 순간, 셔터를 누른 이유가 있었겠지요. (p106) "
어떤 시간은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지 혹은 그저 눈으로 바라볼 것인지 갈등하게 만든다. 그 위화감은 한강으로 불꽃놀이를 보러갔을때 솟아났다. 불꽃을 찍으려는 핸드폰 카메라에 수많은 사람들의 화면이 담겼다. 불꽃은 눈 앞에서 터지고 있는데 시선은 핸드폰 화면에 두고 있다니.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그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렌즈를 통해 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냥 지금은 찍지말자, 생각했었다. 왜 과거형이 되었냐면 이제는 사진을 남기지 않는 순간들은 금새 잊혀진다. 찍어야 기록이 되고 기록은 추억이 되는 중년의 시간 덕분이다. 이제는 다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싶을만큼 달콤한 시간들이 그렇게 남겨지는 이유도 있어야 하니까.

책을 읽으며 그 너머에 있는 저자와 좀 더 뭔가를 나누고 싶단 생각을 했다.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네요,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지 안부를 묻고 싶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뭘 해도 아까운 비일상의 시간을 독서로 보내며 한껏 쉬어가려 했는데 책을 읽는 건 순식간이었다. 기록을 남기며 어떤 부분이 좋았더라 다시 뒤적이는 시간이 그 배로 길어졌다. 그때 읽은 것과 지금 읽은 것 또한 '느껴지는 정취가 사뭇 달랐다'. 일상에 여백이 필요한 순간 가볍게 들어 읽기 좋겠다. 생각이 많은 일상에 어울리는 책이었다.

" 같은 장소에 와도
누군가와 함께인지, 혼자 걷는지에 따라
보이는 정취가 사뭇 달라진다. (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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