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인문학 - 조선 최고 지성에게 사람다움의 길을 묻다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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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풀어진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긴 연휴가 일상을 잠깐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도 아닌 것만 같다. 그동안 버릇처럼 해오던 일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한껏 풀어짐에 기대어 얼마간을 지나보내고 나니 이제서야 퍼뜩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아침에 본 일기예보에서 주말 즈음 눈이나 비가 올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짧고도 어설프게 한 계절을 지나왔구나 싶어졌다. 어쩌면 가을을 탔으리라.  

 

 역사평론가 겸 고전연구가인 저자 한정주의 신간 '율곡 인문학'은 율곡의 "자경문"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고 있다. 각 장은 입지, 치언, 정심, 근독, 공부, 진성 그리고 정의로 구분되는 7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 안에서도 소주제들이 나뉘어져 있어 설명이 지리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자칫 생몰을 늘어놓는 위인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화들은 그의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는 정도의 에피소드로 기능해서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다.

 

 전에 유시민 선생이 방송의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강릉의 오죽헌을 찾아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부각되어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마침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두 인물이 3장 정심의 구방심공 [어지러이 흩어진 마음을 다잡아라] 부분에서 나왔을 때 주의깊게 읽었다. 특히 이이가 자경문을 쓰게 된 배경 중에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정신적인 방황을 한 4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이이의 생에서 신사임당이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음을 짐작하게 했다.

 

 특히 이와 비교되는 일화로 6장 진성의 전력어인 [사람을 정성껏 대하라] 부분에 그의 서모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위인전을 읽으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내용만 알았지, 서모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이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사임당에 비해 부족한 롤모델이었다면 그는 어디에서 빈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인물을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율곡의 삶을 위인전으로 읽던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이제 다시 살펴보니 그가 가진 기량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자경문"은 그가 20세 때 지었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성숙도가 과거와 지금이 다르다고는 하나, 그 나이에 이미 스스로의 삶에 있어 그 방향을 정하여 세울 수 있었다니 뛰어난 인재로 평가될 만하였다. 또한 퇴계와의 접점이 짧아 두 학자가 동시대에 활동할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은 책을 읽으면 2-3일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긴 시간을 더디게 보내면서 '율곡 인문학' 역시 더디게 읽었다. 그동안 항상 인문학이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사전에 정의된 말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나름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과 기대했던 인문학의 범위를 '사람다움의 길'로 끝맺기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배움을 확장시키지 못한 자신의 소양탓으로,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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