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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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서라 반가웠다. 목마르고 가난한 분야에 도움의 손길이 내려온듯한, 느낌. 문제는 너무나 목마르고 가난하여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조차 없었던 자신에게 있었지만. 저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된 탓에 책 안에서 언급되는 전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고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겨둘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전작부터 읽었어야 이 책에 대한 기록이 기록다워지는 그런 역할이 있다. 두 책 사이에. 그래서 약소하나마 작가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사사키 아타루는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으로 꼽히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여러모로 알아보았는데, 작가의 전작보다는 그 외에 다른 두명의 작가가 더 공저한 '사상으로서의 3.11 (대지진과 원전 사태 이후의 일본과 세계를 사유한다)'라는 책이 더 궁금하긴 했다.

 

책은 거의 대담과 작가의 기고를 새로 옮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화 흐름을 열심히 좇다보면 어느 순간 지식인이란 이런 사람들이로구나. 싶은 때가 확 온다. 사유의 확장이나 문제에 대한 접근법, 인용하는 사상의 범위가 벌써부터 범위를 넘어서 있다. 이런 것이 지식인의 사유이고, 역할이라면 나라는 사람은 정말로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바로 그 때 제목이 내 살갗에 와서 옮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목차를 살펴보거나, 약간의 힘을 뺀- 농담이 섞인 대담들을 보고 있을 때면, 현장의 생생함이 느껴지면서 그리고, 아 이런 얘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거구나. 하고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아마 사사키 아타루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일반 독자들을 떨쳐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전하려고 하는 것이 나에게 전달되어 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여러분, 철학을 공부하십시오. 하지만 창작 활동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한순간 불꽃 속에 태워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아까워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뭐였지?’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게, 완전히 잊을 정도로 그것을 제로로 해버려야 합니다. 지식은 은행의 예금 계좌가 아닙니다. 몇 백 포인트 쌓았으니까 더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얼마나 성대하게 불태우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

 

인상적이었던 부분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이 철학과 문학에 대한 내용이었고, 많은 대담에선 소설에 대한 집중적인 탐색이 있었다. 소설가와 소설의 기원부터 소설을 쓴다는 것과 문체에 대한 부분까지 글쓰는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고려하고 느끼는 바를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철학을 공부하'라고 운을 뗀 저 부분은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식은 고여 쌓이는 것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다독의 목표를 권수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독서의 양을 늘려야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서를 그저 오락의 한 형태로만 너무 오랫동안 본 것을 아닌가하는 반성이 된다. 그 마지막까지 알게 되었다는 즐거움만으로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마지막까지 안 것을 얼마나 남김없이 쓰는가가 더 중요한 목표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후루이 : 이재민 중에는 지금 어느 누구보다 세상이 잘 보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사사키 : 있겠죠. 아직은 말로 표현이 안 될 뿐이지만 말입니다.

후루이 : 저한테도 조금은 감염될까요? 세상이 보인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무서운 일이죠. 뒤돌아 쓰나미가 덮쳐오는 것을 본 인간이 있어요. 뒤돌아보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가여운 동물인가'하고 느꼈을 겁니다. 못 걷게 되고 맙니다. 주저앉는 바람에. 동물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직립 동물은 직립이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사사키 : 하지만 그 연약함으로 손이 자유로워졌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바퀴 정도 뒤쳐진 말馬이나 하는 말이지만, 또 골이 멀어졌으니까요. 훨씬 앞서 달리고 있는 준마의 갈기를, 뒷모습을 앞으로도 보여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과 철학 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며 대담을 이끌어나갔는데, 현재 일본 사회 뿐 아니라 넘어선 많은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인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시선이나 자세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 따로 옮겼다. 주저앉은 인간이 꺾이지 않고 써내려가는 글. 인간도 그렇지만, 글이란 바로 그런 것이겠단 공감을 많이 했다. 우리는 어떤 때이든, 무언가를 쓰려고 하니까. 정해진 몇 자 안에서든, 누군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오가는 인터넷의 단 몇 페이지 안에서든 나로 인해 만들어지는 어떤 신호를 보내려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다. 무릎꿇을지언정, 무언가는 붙들려고. 대부분의 독자가 이 책을 통해서 얼만큼의 이해를 '챙길'지 모르겠다. 가장 필수적인 한마디는, 전작,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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