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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금지 리스트
레이철 콘 외 지음, 황소연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어? 라는 질문에 책 제목을 말할 생각을 하면서 어쩐지 민망스런 느낌이 드는 제목의 책이다. 달달함이 저절로
느껴질 법한 제목과 표지의 색감,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낯선 외국인들의 사진. '키스 금지 리스트'라니, 굳이 그런 걸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이 가진 요망함- 혹은 잔망스러움은 인물과, 관계 설정에서 드러내놓고 나타난다.
나오미는 굉장히 매력적인 외모에 개성적인 성격을 가진 거칠면서도 여린,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더 주위의 시선을 끄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여자아이인데, 여성이라고 할 수도 소녀라고도 할 수도 없는 묘한 위치에 있다. 성숙의 과정에 들어서려 하는 미성숙한
여자아이. 그러나 매혹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 사실을 그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아무 물정도 모르는
여자아이처럼 보여진다.
일리 역시 매력이 넘치는, 넘치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한, 게이 남자아이로 그려진다. 마치 나오미가 남자로 그려진다면 일리와 같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둘은 비슷하게 보여진다. 정신적인 쌍둥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그리고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쌍둥이 이상으로 깊은 유대를
갖고 붙어 다닌다. 남자를 좋아하는 나오미와, 남자를 좋아하는 일리가 서로 남자를 두고 다투지 않기 위해 키스를 하면 안되는 사람들 목록을 만들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나오미의 남자친구인 두번째 브루스가, 일리와 키스를 했다는 것. 또 하나의 문제는 나오미의 남자친구인 두번째 브루스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그들의 키스 금지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 이 일로 인해 나오미와 일리의 단짝 사이는 금이 가 순식간에 벌어지고
만다. 두 사람이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어지는 과정을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옮겨가며 풀어낸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나오미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을 보면 사태가 점점 꼬여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만약 나오미가 죽는다면 나는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젖을 테고, 모두의 이해 속에서 결국은 시련을 극복하고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내가 뭘 어쩌고 할 것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오미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오미가 살아 있어서 기쁘다. 죽어 버린 것은 아름다웠던 우리의
추억들이다."
너무나도 예쁜 소녀와, 너무나도 멋진 게이 소년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과 마주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
가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단순히 로맨틱한 러브코미디나 그래서 결국 그녀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 행복해졌다는 로맨스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느껴지는 와중에 인물들이 어떤 단계를 넘어 성장을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때, 중간 중간 그림으로 간단한 단어나 표현들이 대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미국식 귀여니체의
등장인가 싶기도 하고, 언어의 파괴가 결국 이렇게 암호같은 그림 기호로까지 이어지는구나 하고 씁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려했던 문제점들로
인해 그림 기호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책의 거의 말미에 알고는 안도하기도 하고, 처음에 실망하고 어색하고 느꼈던 부분들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저 유명한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오래된 영향으로 게이인 단짝 친구를 갖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소망이 붐처럼 일어났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소망을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그려낸 부분이 있기도 하고, 미국 대도시 소녀의 쿨하고 근사한 생활
방식과 사고를 엿볼 수도 있는 책이라 10대 소녀들이 읽으면 훨씬 더 '멋지다'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런 리스트에 대해 읽기에 성인은
나이가 너무 많다.
어찌됐든, 막힘 없이 잘 읽히고 뒤끝없이 깔끔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전환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가볍고 쿨한
로맨스 소설이자, 귀엽고 발랄한 성장 소설, '키스 금지 리스트'였다.
"나는 아이에게 분명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인생은 단순히 작은 생명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각자
동시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을. 각각의 날들은 꽃과 시에서, 그리고 동물과의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꿈과 석양과
산뜻한 산들바람과 더불어 하루를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을. 하지만 무엇보다 손을 그녀 무릎 위에 얹고, 고대의 강이 흐르는 곳 옆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가끔은 사랑에 빠지는 좋은 시절도 있다는 것을.
니컬러스 스파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