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평소에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데,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하필이면 그 질문이 떨어졌다. 물론 질문을 한 쪽에서는 평소 사소하게 느꼈을 궁금증을 담아 가볍게 물었으리라. "요즘 뭐 해?" 그래서 즉답으로 "책 읽어."하고 대답을 했다. 역시나, "무슨 책?" 하고 물어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대답하고서도 스스로가 뜨악한 기분이었다. 시간 짬짬이 책을 읽는 것을 마치 업처럼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책을 읽는 일을 하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이 책을 정말 잘 읽으려면 책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멍하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작 상대방은 책 제목이 재미있네, 정도로만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책은 무조건 손놓고 가만히 있을 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이나 남들보다, 남들만큼 등등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앞뒤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만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서 '남을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밥상을 펴놓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만 먹으라는 책이지, 남들이 좋아한다는 반찬까지 억지로 꾸역꾸역 다 차려 먹으려고 하거나, 차려준 밥상에 밥까지 떠먹여달라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고 말하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이 이렇다보니 요즘 사람들이 압박을 받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나 젊은이들의 스펙쌓기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결론적으로는 다 그에 맞춰진, 비슷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중에서 기억남는 부분은 '신제품을 사지 않을 권리'와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였다.

 

'신제품을 사지 않을 권리'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구형 핸드폰을 쓰고 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변에서 팍팍 주는 통에 멀쩡히 잘 쓰고 있는 핸드폰도 어디가서 마음 편히 내놓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인물도 구형 핸드폰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웃지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 나온다. 정작 물건을 쓰는 사람은 아무 불편이 없고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데 주위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아직도 그걸 쓰냐'는 등의 말을 툭툭 던진다. 심지어 하루가 멀다하고 통신사에서 기기를 바꾸라고 전화도 온다. '어차피 바꿀 핸드폰 구형을 써서 뭐하냐'며 '바꾸세요'하고 강력하고 무례한 톤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풀어낸다. 망가지지도 않은 것을 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으로 휙휙 바꾸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전자제품들을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핸드폰에만 그렇게 함부로인지 모를 풍조다. 개인적 경험과 어우러져 깊은 공감이 됐다.

 

또 하나는 역시 개인적 한이 맺힌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인데, 사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처럼, 읽고 또 읽으면 못 읽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전들은. 다 소화하기에 버거운 책들도 많고, 말대로 유명해서 안읽어도 읽은 것처럼 넘어가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확실히 고전이라는 것은 읽고나면 오래도록 그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의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 같이. 하지만 역시, 뭔가를 읽어야한다는 그 필수적인, 고전,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단, 그 책들의 목록에 또 얽매이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인 것 같다. 독서는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도 그안에서 또 뭔가를 해야만한다고 스스로를 규정지어버리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부분에서 잠깐 언급된 다니엘 페낙의 "소설처럼"은 나도 추천하는 도서로 꼭 읽어보면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책이다.

 

약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지만, 읽으면서 자신과의 접점을 찾아가게 된다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책이다. 뭔가를 하라"고 강조하는 책들이 많은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만큼 이 책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내 중심을 잃고 어딘가로 무작정 쓸려만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