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위안 - 잠언 시집
유영일.이순임 지음 / 올리브나무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언 시집인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내가 꼽는 가장 좋은 시는 무얼까 궁리한다. 누군가의 것을 꼽는 것이지만, 사실은 나를 드러내는 일만 같아 염려된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어려운 것은 내가 부족한 반면, 그것을 감추고서 타인의 호의만 받고 싶은 욕망이 교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하나 부질없는 일인데도, 자꾸만.

 

사랑의 증거

-하늘의 연서 12

 

삶은

내가 그대에게 선물한

그대의 놀이터,

그대의 그대를 찾으면서 노는

숨바꼭질 게임장.

 

도저히 나뉠 수 없는

그대와 내가

떨어져 있는 양

가정을 하고

연기를 하는

이 놀이터에서

그대는 사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놀이터이므로.

 

불안한가? 두려운가?

그대의 불안과 두려움은

그대를

그대의 뜻대로

마음껏 뛰놀게 하겠다는

나의

큰 사랑의

증거.

 

 

첫번째로 꼽은 시는 '사랑의 증거'이다. 주어지는 자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속박되고 얽매이는 것보다 더 두렵고 불안해지는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한참을 보이지 않는 곳 끝까지 자유롭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너무 멀리 온 것 같으면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닌가, 날 기다리고 붙잡아 둘 곳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는 나의 어떤 점과 닮은 시라서 꼽았다.

욕심이 많아서 한 편 더 꼽았는데,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대는 이미 자유롭다

-하늘의 연서 48

 

가두는 이 아무도 없는데

갇혀 지내는 이

얼마나 많은가.

 

돈은 넘쳐나는데도

스스로 감옥에 갇혀 지내는 이

얼마나 많은가.

 

보이지 않은 밧줄로

스스로 얽어매지 마라.

 

그대 자신이 얽어매지만 않으면

그대는 이미 자유롭다.

 

 

자유와, 그 자유를 자유로 소화해내지 못함에 대한 어떤 갈망이나 고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런 시들이 더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이.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미지의 것에 한발 더 나아가는 일을 잘 못한다. 더 앞을 염려하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고 후회했던 적도 있다. 그럴 때, 내 한 걸음을 막아선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가두는 이 아무도 없는데 갇혀 지내는 이' 그게 바로 내 모습이다. 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남을 원망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을 수 있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음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