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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라울 뒤피 그림, 위효정 옮김, 이소영 해설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창을 가려둔 블라인드를 걷어 바깥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봄의 이름으로'를 읽었다. 한참을 책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함께 공유하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로 계절은 푸르르다. 빗방울이 떨어져 한층 짙어진 녹음 사이로 바쁘게 오가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페이지가 멈춰진 채로 시간이 오래도 지났다. 라울 뒤피의 그림과 함께하는 '봄의 이름으로'의 아름다운 표지 그 자체가 서재 책장에 놓여져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었는데, 그보다 더 자연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도록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콜레르의 문장 안에서 꽃은 그가 그리는 관념으로 피어난다. 어떨 때는 이름만 같은 다른 꽃을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라일락이 우리 침실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무례하게 청산가리 냄새를 풍기는 연인이 된다? (66)" 특히 향과 라일락에 대한 표현은 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멈추게 만드는 라일락 향에 대한 평이 너무 잔인하다. '자투리(104)'의 내용에선 한국인의 나물 사랑에 대해 알았더라면 얼마나 놀랐을까,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쓰레기통'의 "무청을 무와 함께 생으로 씹어 먹기(105)"는 좀 잘못된 시도였던게 맞긴하다.
그동안 팬지를 너무나 과소평가 했던 것은 아니었나, '파우스트(54)' 검은 팬지의 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비교적 흔한 꽃인 팬지는 작고 노란꽃의 모양이나 색감이 나비같기도 하고, 안에서 밖으로 퍼지는 무늬가 야생동물의 얼굴을 닮은 듯한 귀여운 꽃이지만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질 듯한 꽃잎의 아름다움도 인정하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는데, 팬지에 대해 찾아보다 식용꽃으로 자주 사용되는 종이라 그 이미지 때문이었던 듯 하다. 책에 나오는 검은 팬지는 처음 들어보기에 찾아봤더니 색이 다양하고 화려한 팬지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화려함으로 돋보이는 꽃이었다. "오! 이 벨벳!"
책을 읽는 동안 낯선 꽃들의 이름을 찾아보느라 읽는 동안 바빴다. 몇 해 전부터 자꾸만 식물과 새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누구는 이런 변화가 나이듦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볼수록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 전에는 왜 자연에 무심했을까 싶게 좋고 귀해진다. 그러니 그동안 몰랐던 식물과 자연에 대한 책이 보이면 항상 반갑고, 궁금해진다. '봄의 이름으로'를 읽으며 정원과 들판으로 늘 자연과 가까이하며 지냈던 콜레트의 환경이 이런 독특한 에세이를 탄생시킨 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부러워다. 그는 이 모든 식물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박완서 작가가 이름 모를 꽃이란 것은 없다며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키워낼만큼의 책임이 없기에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아, 사랑한다는 것에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꽃에 대한 에세이를 앞에 두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곱씹다니. 마침 유투브에서 찾아낸 '아침 봄 재즈' 플레이 리스트도 마음에 들던 비오는 날에,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울 뒤피의 흐드러지는 꽃들을 함께 감상하며 콜레트가 전하는 꽃다발을 가슴으로 안아보자.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여름의 푸르름 속에 향기보다 오래도록 남는 감성을 선사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