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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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ough no one can go back and make a brand new start, anyone can start from now and make a brand new ending.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 카를 바르트 "

 인상깊은 구절이 몇가지 있어 적어두었지만, 가장 인상깊게 본 구절은 책의 표지에 써있는 문구였습니다.


 책을 읽기 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트라우마들에 대해 하나씩 끄집어내기 전, 저어하는 나를 달래주었던 문구였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여러 생각을 하곤 합니다. 대체로 내일 할 일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가끔 '과거로 돌아가서 가장 없애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회되는 지난 일들이 떠올라 도리어 잠이 깨거나 이불을 발로 차기도 합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마음에 짐처럼 남아있는 과거의 일들을 되살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 문구가 책장을 넘기기 전 마음을 한 번 다잡아 주었습니다. "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


 우선 리뷰에 들어가면서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심리학적 문제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트라우마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수많은 사고나 개인과의 마찰등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상처가 되어 그것이 오랫동안 남아 행동과 심리, 성격에 영향을 주는 일 등을 말합니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렸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 개를 무서워한다던가, 교통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자동차 타는 것을 꺼려하는 등의 일등을 쉽게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것은 매우 특수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 한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보다는 그 취약성을 뒤흔들어 놓은 트라우마를 더 많이 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치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이야기에서, 갈등이 심한 부부들의 양보할 수 없는 다툼 속에서, 그리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의 삶에서, 아주 흔하게 트라우마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저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개인의 삶에서 트라우마라는 것이 이렇게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임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속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트라우마에 대해 재조명합니다. 이 책에서는 개인이, 그리고 개인을 넘어 사회가 품고 있는 상처를, 그러한 상처들을 영화로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비추어보고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의 구조는 상당히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트라우마의 원인/ 트라우마의 증상/ 트라우마 공화국, 대한민국/ 트라우마의 치료] 다섯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단계별로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심리학과 트라우마라는 것에 대해 모르는 독자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요. 또 각 단락별로 말하고 싶은 주제에 맞는 영화들이 몇편씩 소개됩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쉽게 풀어쓴 이론적인 설명이나, 개인의 경험, 혹은 주변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내용을 풀어가기 때문에 독자는 흥미를 갖고 쉽게 심리학에 접근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의 내용들도 매우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소개된 영화를 통해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심리학의 내용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심리, 행동패턴을 좀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소개된 영화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삶을 말하는 상당히 괜찮은 영화들이 이야기 되고 있고, 자신이 보았던 영화가 있다면 한층 더 깊이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영화와 책이라는 두 콘텐츠가 '심리학'이라는 코드와 만나 상승효과를 이뤄내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특히 더 읽고 싶었던 이유는,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근래 들어 내면에만 치중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던 중 "내가 가진 상처를 혼자서 끌어안고 고민하고 반성해봤자 남는 것은 자책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그 문제에 대응하는 나 자신에 어떤 한계점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은 그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책으로 위안을 받는 일은 타인과 소통하여 치유하는 일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아주 사소한 일상사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별거 아닌 사건이지만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사건들이 목숨을 위협받을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사건들이 평생에 걸쳐 자아 존재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당시 그 사건을 당할 때 아이였던 당신은 무척 당황해했고, 무서워했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당황스러움, 수치심의 기억이 점점 옅어져가고 다른 좋은 기억도 많이 남게 되어 이런 사건의 기억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몇몇 기억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사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경 회로 깊숙한 어딘가에 그 기억이 그대로 남아 별 것도 아닌 일에 두려움이나 수치심, 분노감 같은 감정이 갑자기 재현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죠. p51 파트2 트라우마의 원인 "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이지만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사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말은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잘 알려진 비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알려진 이 속담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단락을 읽으며 누군가로부터 어린 시절 어떤 사건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때 그랬구나.' 하는 듯한 위안을 받았지요. 정말 간단한 말이고, 어찌보면 누구나 아는 것들을 적어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을 통해 차근히 조리있게 새겨진 문장을 바라보면서 지나치는 말들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위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시계는 움직였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해는 뜨고 졌지만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소리가 있었다면 이제는 침묵뿐이다. 한때 완전했던 것이 이제는 산산이 부서졌다. - p87 영화 '위 아 마셜' "


 그리고 이처럼 저 역시도 지난 과거에 대해 아직 집착하고 있던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계는 움직였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일들만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장을 넘기게 되었을 때 내용은 개인에서 사회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는 내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일부분만큼도 사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그건 또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무관심이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책은 이제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를 말합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이것입니다.


 "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고의 전환'이었습니다. 즉 매사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임한 결과 인생의 장애물을 인생 도약의 뜀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쓰시타는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발전 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지요. 긍정적 사고와 희망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인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도 긍정적 사고와 희망 이상의 치유책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36 "


 이 부분을 읽으며 '원영적 사고'라는 밈을 떠올렸습니다. 실패와 거절의 경험을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꾸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그런 예가 아닐까요. 갈수록 흉악한 범죄 소식이 많이 들려오고, 상식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구성원들의 다툼이 공론화되는 일이 잦아지며 이해와 용서가 부족한 사회풍조가 불안과 스트레스를 줍니다. 더불어 과도한 경쟁, 성장과 성공에 대한 압박과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책과 우울에 빠지게 되는 개인들이 고립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부정적인 사건들에 피로감을 느낄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사고의 표현이 좋은 반발을 일으킨 예입니다. 


 " 처음에 그들은 상대방의 의도부터 의심합니다. "정말 날 선의로 도우려 하는 것인가? 나에게 뭘 바라는 것은 아닌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상대방의 의도가 진실이란 걸 알게 되어도 그들은 그 선의의 의도를 비웃습니다. "당신은 운이 좋아서 나같은 상처를 경험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당신 같은 평범한 사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눈곱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어?",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어, 당신은 날 도울 수가 없다고." -p252 "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을 털어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저 역시도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아직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좁혀진 시야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들도 있지요. 그래도 이 책에서는 '희망'을 말합니다. 외부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자를 만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혹은 세상을 향해 개인이 맞서 상처를 딛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라나는 나무는 없듯이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자라나는 희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상당히 많은 부분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보듬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화와 책과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개인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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