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재수.오은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의 일'은 독특하다. 요즘 시와 그림이 접목된 책들을 종종 만나곤 하지만, 그게 그림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가 연결되는 모습이 대부분인데 '마음의 일'은 그림이 시고 시가 그림이다. 그래서 시툰이 아니라 그림시집이라고 되어 있다. '마음의 일'을 읽으면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시를 읽으면서 영상을 보게 되고, 그림을 보면서 어느새 시를 읽어낸다. 이 느낌은 영화 '러빙 빈센트'와 비슷했다. 그림을 보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간들. 종이 위에서 공감각적 체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일'이 독특한 것은 이 책을 내기 위해 협업한 두 작가가 친구사이라는 점이다. 오은 작가의 에필로그에 "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란 뜻인데, 친구라고 칭하기에는 거리와 시간 모두 한참 모자란 상황이었다. 어느 날, 그것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함께 책을 내는 것.(234) "란 내용이 있었다. 오은 작가는 학교 다닐 때 조별과제를 해본 적이 없었던걸까 먼저 궁금해졌다. 재밌자고 떠나는 여행도 친구사이를 갈라놓을지 모르는데 하물며 협업이라니. 어쩌면 본심은 재수 작가와 한번 찐하게 얽혔다 끊어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는 조별과제 용 명언도 있는데, 친구가 되기 위해 협업을 꾀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둘의 협업은 의미있는 결과물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오은 작가의 감성적인 문장과 재수 작가의 섬세한 그림이 괜찮은 조화를 이룬 한권의 책을 만났다. 책 안에서 책을 펼치는 느낌(22)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가끔 그렇게 그 면을 온전히 들여 표현한 장면들에 마음을 뺏기곤 한다. 어린시절 읽었던 만화책 중 하나에도 펼쳐진 두 면이 그저 까만색으로만 표현된 장면이 있었는데, 온 페이지를 할애해 비중있게 표현하는 인상깊은 구성이라 이번 장면도 마음에 들었었다. 특히나 책의 초반부에서 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책 안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어서 좋았다.
 
 시와 그림으로 구성된 내용이니 금방 읽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한 부분 한 부분 그냥 넘어가는 책이 아니었다. 한참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예민한 시기에 '마음의 일'을 읽는다면 아마 더욱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인 독자들도 충분히 몰입할만한 섬세한 감성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나 청소년기의 독자들이 많이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에 이 그림시집을 접했다면 이 겨울밤 동안 책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싶은 아련함이 더 컸다. 평생 그 감성 그대로 안고 살까봐 걱정했었는데, 지나고보니 그럴수가 없었더라. 아직 감성의 여운이 남았나보다.
 
 이 두 작가가 다시 또 찐하게 얽히려들지 모르겠지만, 연령대별로 그림시집을 더 내줘도 좋을 것 같다. 마음의 이, 마음의 삼, 사... 이렇게. 요새는 자꾸 중장년-노년층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들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한 작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낮부터 저녁까지 한바탕 눈이 펑펑 내렸고, '마음의 일'을 읽으며 감성을 마저 채웠다.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