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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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죽음의 사막을 뚫은 것은 돈과 신앙이었다. (10) "

 

 작년에 창비에서 돈황 실크로드 원정대를 모집한 적이 있었다.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응모자를 뽑아 약 300만원에 해당하는 비용 지원을 해준다는 공고였는데, 능력이 안되어서 그렇지 한동안 너무 부러워서 공고 게시물을 찾아보고는 했다. 이때 돈황이라는 지명을 처음 유의미하게 인지했는데, 그동안 실크로드라고 하면 죽 이어진 길의 관념으로 생각했으나 도시 거점으로 이어진 것임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자세히 깨닫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중국편의 시작은 꽤 큰 프로젝트로 느껴져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저자의 문학적 소양과 어우러진 '누란'의 소개부터 시작되는 3편도 즐겁게 읽었다. 

 

 처음엔 답사기라기보다 역사서에 더 가까운 설명들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세한 설명으로 실크로드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할 독자들을 이끌어주고 있지만 현장감이 부족하다고 할까. 하지만 쿰타르 사막의 전경이 나오면서 확실히 동경하는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막의 모래언덕들이 겹겹이 솟아난 모습을 보니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커졌다. 이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모래산이 존재하고 있는 광활한 땅도, 또 그것을 사륜지프로 오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저런 곳에서 밤하늘을 본다면 어떨까, 불빛의 방해없이 보는 별길이 어떨까 궁금했다. 아주 짧게 등장했지만 저자도 쿰타르 사막에서의 풍광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72)으로 꼽았으니 언제고 사막에 가보리라 생각했다.

 

 읽다가 문득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전시실을 관람하기를 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141) 한국전쟁 때 소장하고 있던 벽화 파편들을 부산으로 피난시키며 보존하려고 노력한 일화가 나와 기록과 보존의 DNA를 가진 것이 분명한 한국인의 모습을 실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한동안 찾지 않았는데, 책을 읽은 김에 다녀와보고 싶어졌다. 이 유물들이 우리나라에 남겨지기까지의 과정이 참 씁쓸하지만 중국으로의 먼 길을 떠나지 않고 책에서 본 로프노르 호수와 소하 유적지, 누란왕국, 호탄, 쿠차 등 서역 각지의 유물들이 망라된 것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찾아가보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달걀 모래찜 구이는 못 먹겠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읽으면서도 넓은 땅덩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광활한 자연에 압도되는 순간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천산산맥의 모습이나, 키질석굴, 키질리아(천산신비대협곡), 사막과 들판이 광대하게 펼쳐진 끝없는 대자연의 모습은 경이와 매혹을 일으킨다. 우리나라를 좋아하지만 압도적인 자연경관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외국의 이런 장소를 향한 여행 욕구가 샘솟곤한다. 그래서 타클라마칸사막 여정이 나오는 부분은 특히 더 재밌게 읽었다. 3대가 공덕을 쌓아 사막의 비를 맞이한(310) 내용은 부럽기까지 했다. 언제고 어느 곳의 사막이든 한번쯤은 찾아가봐야지 마음먹었다.

 

 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화가(221)와 무용가(267) 지인들과의 후일담이나 망자의 치아를 살펴 생전의 나이나 건강상태를 짐작해 본 함께 간 치과의사(127) 분, 간간히 설명을 곁들여 준 최선아 교수(211),  만화가, 스님, 무엇보다 '답사학'으로서의 답사를 이끈 저자 등 함께 한 구성원들의 조화가 참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 삶의 궤적만큼 여행의 색이 풍부해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을 나누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오죽하면 여행사 단체 관광을 기피 1순위로 꼽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싶게, 언제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면 배우는 마음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9장에 이르면 위구르 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최근들어서도 그들이 심한 격리와 산아제한 같은 비인간적인 처우를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터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자 역시 위구르 민족에 대한 애정과 동정을 드러내었다.(388) 카슈가르로 향하는 길은 곤륜산과 향비묘라는 애칭을 가진 야르칸드한국의 '아바 호자' 가문의 공동능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둘 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들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중국보다는 이슬람 분위기가 강하게 엿보여 고성의 풍경을 그전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마침내 파미르고원 설산과 함께 펼쳐진 검은 호수의 풍경으로 답사가 마무리되었을때 깊은 몰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매력적인 답사였다.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기록이든 혹은 기념이 될만한 것들을 남겨두는 사람들을 아주 부러워한다. 언제는 일지처럼 꾸준한 일기를 써보려고 했으나 저녁만 되어도 기억이 가물했고, 좋은 장소에 가면 그림을 그려볼까 했는데 성미에 맞지 않았다. 지도며 영수증, 입장권 같은 것을 현지돈과 함께 모아둔 적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잉크가 이내 옅어져버렸다. 결국 전형적인 한국 여행자답게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기념품가게에 들러 작고 저렴한 기념품이나 하나씩 사오는 것에 머물렀다. 답사기를 읽고 있자니 문득 지난 여행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세상이 전과 같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좀더 그때 그 순간에 충실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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