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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 ㅣ Picture Life Classic 4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진근 옮김 / 봄풀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력 확장의 자신감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략하던 제국주의 시대, 유럽과 미국의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침략과 수탈의 대상, 왜소하고 미개한(!) 인종으로 파악했으리라. 그런데 그렇게 무시하던 동양의 섬나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의 태평양 함대에 제대로 한 방 먹인다.
충격을 받은 미국 정부는 선전포고와 더불어 루스 베네딕트 교수에게 일본 분석을 의뢰하게 되고 그녀는 일본 이해의 기념비적 저작인 [국화와 칼]을 내놓는다. 전쟁은 새로운 군사기술이나 새로운 정치체제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상대편에 대한 세밀한 분석도 가능하게 하는 모양이다.
루스 베네딕트 여사는 우선 일본사회, 일본국민이 가진 이중성을 고찰한다. 일본문화란 세련됨과 고요함, 온순함과 예의의 상징인 국화와 거칠고 야만스러우며 잔혹함과 무사도의 상징인 칼이 공존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대립하는 특성을 가진 국화와 칼이 공존하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화가 있어야만 하는데, 이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똑같이 생긴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울퉁불퉁 멋대로 생긴 벽돌로는 결코 집을 짓지 못한다. 큰 벽돌은 주춧돌이 되어 기단을 받쳐야 하고, 작은 벽돌 하나하나는 모여 벽을 이룬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는 개성의 발현이 억제되며,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중시된다. 튀는 사람은 왕따와 이지메의 대상일 뿐이다.
조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규격화 못지않게 강조되는 것이 ‘질서’의 유지이다. 여기서 질서는 상호평등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때 질서란 상명하복, 상의하달 식의 위계적이고 서열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내적으로는 최고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천황에 대한 충(忠)이 그 어떤 덕목이나 미덕보다 우선시되며, 국제적으로는 힘있는 국가의 리더십에 다른 국가들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적인 사실로 말하자면, ‘대일본제국’은 아버지, 또는 맏형의 역할이고, 다른 아시아 민족들은 대일본제국의 뜻을 잘 받들어 ‘구미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보호할 ‘대동아공영권’에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네딕트 여사가 일본문화를 분석하는 키워드로 삼은 것, 그러니까 온(恩)을 갚기 위한 의무, 기리(義理)에 대한 집착 등은 결국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인이 감수해야 할 희생이자 의무를 표현한 셈이다. 천황으로 대표되는 상층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그나마 다 갚지도 못하는) 의무가 되는 셈이고, 주군, 동료, 나 자신을 향한 의리는 사회유지를 위한 희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확대재생산된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자기수양과 후세 세대에 대한 교육은 조화를 위한 규격화와 위계적 질서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의무와 본분을 달성하기 위해 나의 존재를 잊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반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파렴치한 것인지를 교육에서 가르쳤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가미가제 특공대’는 이러한 일본인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천황의 은혜에 죽음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미학, 일본에 수모를 안겨주는 연합군(미군)에 대한 국가를 대신한 의리의 실현, 자신을 잊고 오로지 국가의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무념무상, 무아의 경지...
그렇다면 [국화와 칼]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과연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서 전체주의적 시각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런 게 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편리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인식이란 것은, 특히 사회 전체가 마치 전염병처럼 앓게 되는 ‘사회적 인성’이란 것은 어떤 계기와 정치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이용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순신에 대한 한민족의 존경과 자긍심은 예로부터 있었던 것이겠으나, 그것을 성역화하고 민족적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또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일본인들에게 조화와 위계의 관념을 확실하게 내면화시킨 것은 역시 메이지 유신이 아니었나 싶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 주군이 베푼 은혜에 대한 갚을 수 없는 의무(‘나는 저 분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다’라는 관념), 주군에 대한 의리, 불명예를 갚기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죽음의 미학.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무라이’의 도덕이었고, 사무라이의 미학이었다. 따라서 하급 사무라이들이 주축이 되어 에도 막부를 붕괴시키고 천황 중심의 정치적 혁명을 일으킨 메이지 유신이 이후 일본 정치와 일본국민의 정신형성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역할한 것은 사무라이의 미학체계를 전일본인들에게 각인시키고 그것을 내면화시켜 군국주의 일본으로 나아가게 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주군에 대한 절대적 충성은 개인, 즉,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대치되며, 천황이 곧 국가를 상징한다고 할 때 절대적 국가주의로 넘어오게 된다.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은 이제 국내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따라야 하는 원칙으로 확장된다. 물론 그 속에서 일본은 최상위층에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분수에 맞지 않게 튀는 사람은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범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체제적 인물로 낙인찍히고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다. 이지메로 대표되는 일본의 배타적 문화는 바로 이 시기에 본격화 될 뿐만 아니라,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는 개성을 안으로만 파고들어 가는 소위 ‘오타쿠’ 문화 역시 메이지 유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최근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일본항공(JAL)의 파산과 도요타 자동차의 위기, 몰락해 가는 1억 중산층의 신화는 결국 메이지 유신으로 구축해 온 일본의 발전모형이 파산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상명하복식 조직문화의 경직성과 비창의성, 엘리트주의와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부패,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모나지 않은’ 인간형이 가져온 한계와 규격을 벗어난 인간에 대한 이지메... 이런 것들이 성장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일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도덕은 우리 역시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는 말이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근대화와 서구화를 추진했던 유신지사들의 모습은 1960년대 ‘조국근대화’를 부르짖던 우리 군사정부와 오버랩된다. 나 역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몇 차례씩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다짐해야 했고,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이른바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다. 도덕과 사회 시간은 어떤 주제든 결국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 부모와 교사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가르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우리가 나라에 충성하는 길은 학생으로서 지금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는 ‘자기 자리 지키기’를 반복하여 주입당했다.
사상과 생각은 통제되었고, 일치단결 이외에 다른 것은 이단시되었던, 국가와 민족은 절대 비판할 수 없는 성역의 위치였으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는 추앙받아 마땅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다. 이 모습, [국화와 칼]이 그리고 있는 메이지 유신시기와, 또는 세계대전 시기 일본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시간적 편차만 있고 공간의 다름만 있을 뿐이지 똑같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이제 시간은 많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으며, 국가와 민족의 절대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터부시된다. 최근에는 그나마 힘들게 쌓아왔던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침해받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법치와 질서, 사회적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다.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세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와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란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와 관념들이 근거하고 있는 물적 토대는 일본식 근대화 모델을 따라 추진했던 ‘조국근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일본 못지않게 개인보다 전체를, 개성보다 분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을 이어 왔으며, 체면을 중시하고 ‘죄보다 수치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화와 칼]은 대단히 유용하면서 흥미로운 책이다. 일본에 대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숙명적으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국화와 칼]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식의 근대화 모델을 따라 지금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 사회에서 일본문화가 드리운 그림자를 고찰해 보는 데에 대단히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2010년 현재 우리가 [국화와 칼]을 새롭게 읽어내야 할 이유이다.
대다수 서양인은 낡은 규칙과 관습에 반기를 들고 행복을 얻으려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강자의 면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의무를 이행하고자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이야말로 강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강인한 성격이란 반항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것이라고 믿는다.(p.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