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 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5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1.
1980년대 후반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였지만 개인적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시기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 아직도 귀에 선한 소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던 학교 앞 대학교에서 울려퍼지던 구호와 노래 소리, 그리고 뒤이어 터지는 최루탄 소리였다.
TV를 보면 가끔 연예인들이 군대내 화생방 훈련장에서 눈물 콧물 쏟아내는 장면을 볼 때가 있는데, 난 그걸 중학생 때부터 해왔다. 최루가스가 스며든 교실 안에서 울며 짜며 수업을 받다가 결국에는 그 날 수업을 마치지 못하고 또다시 최루가스 범벅인 채로 집에 돌아와야 했던 경험은 이제 그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되었다.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가투(街鬪)가 상징하듯이 최소한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 사회는 대립하는 두 집단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불’의 시대였고, 날카로운 예각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집단’의 시기였고, ‘조직’의 시기였다.
정권은 정권대로 ‘사회질서’와 ‘총화단결’을 모토로 사회불순분자들에 대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그 반대편은 조직의 힘, 단결의 힘, 대오의 힘으로 거기에 맞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두 집단이 지향하는 바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수단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조직화와 집단 속에서 하나의 힘으로 뭉치는 것을 강조했고, 그 속에서 개인적 삶과 가치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집단이 강조되려면, 집단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작동된다.
모든 것이 이데올로기로 환원되던 시기였다. 사회변동도, 전세계적인 혁명도, 그리고 심지어 개인의 사생활 하나하나까지도 변화를 추동하던 동력을 이데올로기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길이라고 여겼던 시대였다.

2.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은 묘하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시대가 가면 그와 더불어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 역시 종언을 고한다는 사실이 경험으로 다가왔다.

[경마장 가는 길]은 5년 반 동안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R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귀국 후 R은 프랑스 유학 도중 3년동안 동거하던 J와 해후한다.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 생각했던 R과 달리 J는 둘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때론 낙담하고 때론 화내면서 한국생활에 회의감이 드는 R.
여기에 R의 가족생활이 겹쳐진다. 그의 부모와 여동생은 질병과 가난 가운데도 유학비를 보태 주었고(이런 행동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그의 아내는 이혼하자는 R의 제안을 거부한다.

[경마장 가는 길]이 놀라운 점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R과 주위 인물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따위는 없다. 특별히 독자들의 눈을 확 잡아 끌만한 임팩트 있는 사건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R의 일상은 먹고 잠자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고 다방에 들어가고 여관이나 집에서 잠자다가 가끔 대학에서 강의해 주는 것이 전부이다. 이런 일상을 마치 작가가 R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끈질기고 세세하게 하나하나 묘사한다. 무엇보다 그 철저하게 객관적인 ‘묘사’에 기가 질린다.

그래서 R과 J의 삶에서 사회 변혁이라든가 가난한 민중의 삶과 같은 거대담론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어떠한 문학이론도 이들의 일상을 설명하는 데에 이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들의 삶, 오직 그들의 일상, 오직 그들의 존재 뿐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일상만을 메마르게 묘사한 [경마장 가는 길]이 사회의 변화를 아주 예리하게 지적해 낸 작품이 되었다. R과 J의 일상양식 자체가 그 이전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종언한 새로운 형태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3.
나한테 1992년과 1993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고 말하겠다. 소위 X세대는 이전 부모 세대와 질적으로 달랐다. 공동체의 가치 대신에 개인의 가치를 우선에 두었고, 합리적인 이성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길보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성과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해체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 가장 웃긴 장면은 잠자리 요구를 거부하는 J에게 R이 내뱉는 말이다.
                      “네가 그렇게 (나와의 잠자리를) 거절하는 이데올로기가 뭐니?”

처음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여자에게 저렇게 말한단 말인가.
그럼 매일 같이 화장실에 가는 이데올로기는 뭐고, 오늘 점심에 된장찌개 백반을 먹은 이데올로기는 뭐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저렇게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고, 그 속에서 정당성을 찾아온 것이 현실이었다. 믿기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가치가 충돌하고, 과거와 현재가 짬뽕된 시기에는 부조화와 괴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난다. [경마장 가는 길]의 주인공 R이 바로 그랬다.
그의 5년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였다. 그가 귀국하여 다시 경험한 한국문단, 한국학계의 현실은 학벌과 인맥이 지배하고 대필과 표절이 난무하며 이름값으로 자리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가정생활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인과의 갈등만 깊어질 따름이다.
‘별 것 아니던’ 동료들이 모두 교수가 되었으나, 정작 그는 겨우 시간강사 자리나 알아보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어 겉돈다.

이러한 부조화와 배회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수단이 J와의 잠자리였다. 따라서 R의 일상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 일이 J와의 만남이었고, 그의 현실과의 괴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혀줄 수 있는 행동이 J와의 잠자리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건 그의 마음의 안정뿐만 아니라 일종의 보상심리, 또는 자존심 회복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경마장 가는 길]을 읽으면서 나는 이게 바로 1990년대 초반을 헤쳐온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심리가 아닌가 한다.
386세대는 사회의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능숙했다. 그리고 하나의 정치세력을 이루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이제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학연수니, 배낭여행이니 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버린 세대들, 변화의 접점에 놓인 세대들이었는데,
그들은 정치세력화할 준비도,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폭탄처럼 맞은 1998년의 IMF 외환위기.
이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안정과 보상의 기제가 필요했다. J의 몸에 집착하는 R처럼.

4.
생각해 보니, 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다. 대학을 나올 때 IMF를 겪었고, 결혼하고 안정을 찾아야 할 시기에 금융위기를 겪었다.
앞당겨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떨어야 하며, 비정규직‧계약직의 차별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꽤 된다.
변화의 시기, 그 접점에 서 있던 이들이 찾아내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
R이 찾아 헤매던, 그러나 한 번도 가 본 경험이 없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경마장’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 한번도 경마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경마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래 전에 언젠가 한번은 누가 나에게 경마장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누구였는지 지금 알 수 없다. 그가 말한 경마장은 어쩌면 이 도시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에 있는 경마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 오후에 하늘 아득히 떠가고 있는 신문지처럼 경마장은 지금 공중에 아득히 흐르고 있다. (p5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