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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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뮌히하우젠이라는 주인공의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이 많이 들어간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읽었다. 나는 아직도 달리는 말의 뒤를 따라온 늑대가 엉덩이부터 목까지 말을 파먹어 들어가 마침내 말의 껍데기를 둘러쓴 늑대가 마차를 끌게 된 에피소드의 그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 그림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밤에 화장실 가는 것도 겁이 났던 일을 기억한다(그 때만 해도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즐거운 독서시간을 보냈다. 주인공의 이름이 뮌히하우젠이라는 점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물론 나이를 먹고 세상을 경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릴 때와 같이 남작의 허풍에 개연성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기분 좋은 향수를 느꼈다. 왜 사람들이 추억을 사진에 담아 보관하려 하고, 지나간 물건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실감한 책읽기였다고 할까.

우리 주변에도 말과 행동에서 남들보다 과장이 심한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흔히 ‘허파에 바람들어갔다’거나 ‘오바한다’라고 하면서 어딘가 신뢰성이 부족하고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부지불식간에 내리게 된다. 그런데 뮌히하우젠 남작의 허풍은 단순한 ‘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백문이 불여일견. 남작이 말하는 에피소드 몇 가지를 보자.
 

                   
어느 날 밤에 말뚝에 말을 묶어놓고 잠이 든 뮌히하우젠 남작.
아침에 일어나니 말은 행방불명.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은 교회 지붕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알고 보니 폭설이 내린 줄 모르고 눈 위에서 잠든 것인데, 밤새 눈이 모두 녹아 버린 거다.

                       
전쟁중에 열심히 말 달리며 싸우던 남작.
잠시 숨을 돌리면서 말에게 물을 먹이는데... 이 놈의 말이 물을 먹어도 먹어도 멈추지 않는거다. 알고 봤더니 어느 틈엔지 몸통 반이 날아가 버린 말. 그러니 물을 아무리 마셔도 뒤로 다 빠져 나오고 계속 목마를 수밖에.

                              

해마를 타고 바다를 지나가는 뮌히하우젠 남작의 아버지.
뒤에 잘 보면 바닷가재가 매달려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게 바로 ‘바닷가재 나무’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을 발견한 남작. 하지만 총알은 다 떨어졌고....
임기응변으로 가지고 있던 버찌씨를 장전하여 사슴의 머리에 발사하였다.
몇 년 후 다시 마주친 사슴의 머리에는 버찌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자라 있었다.
 

                          

한 쪽 콧바람만으로도 풍차를 돌리고 배를 날려버리는 남작의 하인.
뮌히하우젠 남작은 이런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하인을 몇 명 더 두고 있었다. 빈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몇 시간만에 다녀오는 발빠른 하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밝은 하인, 세계 최고의 천하장사 등등.

                                         

뮌히하우젠 남작이 만난 달나라 거주민.
몸은 거대하고 머리는 신체와 분리해서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음식은 한 달에 한 번씩 배를 열고 집어 넣으며, 성기가 없어서 아기도 낳지 않고, 열매처럼 아기가 나무에 열린다.

뮌히하우젠 남작의 허풍은 믿을 수 없고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것들 뿐이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너스레를 떠는 남작의 모습이 그다지 밉게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허풍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달나라에 다녀온 자신의 말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직접 달에 가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사실임’을 확인해 보라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남작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럼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런 엄청난 허풍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작의 허풍에 끝까지 일관된 웃음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중후반 시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전 유럽으로 확대되면서 물적(物的) 지배의 관념이 팽배해지던 시기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절대왕정 체제가 서서히 몰락해 가면서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새로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던 부르조아들에게 부도덕한 왕과 귀족들, 성직자들은 비난의 대상이었고, 이들 구체제 지배계층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농민들은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편입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대상이었다.

그래서 뮌히하우젠 남작의 허풍에서는 쇠락해 가는 귀족중심 사회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그득히 담겨 있다. 하는 일 없이 사냥이나 다니고 모험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나 축내면서 ‘쓸데 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 귀족들, 걸핏하면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면서 안전한 곳에 앉아 승리의 명예만 얻고자 하는 귀족들. 바로 토스타인 베블렌이 지적한 바 ‘유한계급(有閑階級)’이 이 시대 대부분의 귀족들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귀족인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은 실상이 아닌 허풍의 수준에 머무른다. 밉게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허황되다.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하지도 못하고 전혀 적응하지도 못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조선 후기에 여러 문화적 형태(소설, 시조, 판소리, 가면극 등등)에서 양반의 무능함에 대해 신랄한 풍자와 비판이 이루어진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뮌히하우젠과 같이 허풍스럽게 ‘과거’라는 허상을 쫓던 인물을 또 한 사람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돈키호테’이다. 이 둘은 저물어가는 시대를 부여잡으려 했다. 하지만 한 개인의 힘으로는 무모하게 도전하여 몸만 축내거나(돈키호테) 술자리에서 허풍을 섞어가며 ‘그 땐 좋았지!’하면서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돌아볼 뿐(뮌히하우젠), 시대의 흐름을 돌려세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시대는 가고, 그와 함께 그 시대를 지배했던 계층도 사라지는 법이다. 그게 허풍이 아닌 실제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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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3-2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있었군요. 어렸을 때 어찌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정말 압권은 대포알을 타고 정찰을 나가는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도 끽끽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얄리얄리 2010-03-29 16: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어요.
근데 역시 나이들고 읽어보니 또 다른 '맛'이 있더라구요. ㅎㅎ

대포알 타고 정찰 나가는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 '이거 안되겠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적군이 쏜 대포알을 공중에서 갈아타고 돌아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