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라는 말은 전체적인 모습은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의 지식이 전부인 양 믿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실 이 행위는 생소한 세계를 인식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에 여러 장님들이 모여서 자신이 만진 모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그리고 코끼리를 만진 장님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체적인 코끼리의 모습에 가까운 형상을 복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것이 가능한가 하면 (좀 인식론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장님이 만진 코끼리의 각 부분인 코끼리 다리, 코끼리 코, 코끼리 귀 등도 전체 코끼리는 아니지만 엄연한 코끼리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작은 사람의 얼굴 모양을 모자이크로 하여 큰 사람의 얼굴을 만드는 것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하는 이유는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라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우리가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인식구조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이다. 왜?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인 로버트 단턴과 독자인 우리들 그 누구도 그 시대, 그 장소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의식구조를 재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목표로 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방법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을 모아서 모자이크화하는 것인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역사서술과 함께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해석해 보는 것이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수준은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며, 여러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완전한 상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서게 될 것이다. 

여기서 로버트 단턴의 역사서술이 우리가 익숙한 기존 역사서술과 무척이나 다르다는 점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국사책에서 보아 왔던 역사서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이질감 또는 신선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통적인 역사서술에 반하는 서술로 읽혔다. [고양이 대학살]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특징은 역사를 시간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수직적(longitudinal) 관점에서 벗어나 특정 시점을 칼로 잘라낸(cross-sectional)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단턴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역사는 흐름이라는 성격 뿐만 아니라 그 순간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고양이 대학살]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온다. 즉, 그 시점의 모든 형태의 자료가 ‘사료(史料)’가 된다는 점이다. 이건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랑케(Ranke)의 방법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야기다. 언제나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하고 보편타당한 자료만을 인정했던 랑케의 방법론과 달리 로버트 단턴은 주관적이고 특수하며 상대적인 자료들을 사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고양이 대학살]에서 활용한 자료만 해도 민담, 일상에서 일어난 이야기, 자신이 살던 도시에 대한 감상문, 지식인들을 감시하던 경찰의 보고서, 책주문서 등등이다. 랑케에게 역사는 ‘과학’이었다면 단턴에게 역사는 ‘민속’이다.

[고양이 대학살]에는 모두 6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은 모두 18세기 중후반기의 프랑스이다. 18세기 중후반, 그것도 프랑스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로버트 단턴은 다양한 사료들을 활용하여 당시 프랑스의 귀족, 부르주아, 도제 및 장인, 일반 농민들이 어떻게 자신 주위의 세계를 구성하였으며,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색한다. 결국 그는 사람들의 ‘기저의식’이나 ‘집단의식’을 의미하는 말인 망탈리테(mentalité)의 역사를 탐구한 셈인데, 책의 표제이기도 한 두 번째 논문, <고양이 대학살>에서 그의 논리전개를 짚어 보자.

<고양이 대학살>은 1730년대 파리의 생-세브랭 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파리의 가내 수공업장은 주인-장인-직인-견습공의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의 생활 여건은 무척이나 달랐다. 대부분 부르주아 계급이나 귀족 계급에 속했던 주인들은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이 기르던 고양이들마저 등따숩고 배부른 처지였는데 비해 최하층인 직인들과 견습공들은 온갖 차별과 비위생, 고양이보다 못한 영양상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어느 날 밤 한 견습공이 주인의 침실 위 지붕에서 고양이 울음을 흉내낸다. 놀란 주인은 이것이 악마의 출현이라고 믿고 직인과 견습공들을 동원하여 주위의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도록 한다. 단, 주인 마님이 애지중지 키우던 ‘그리스’라는 고양이는 학살에서 제외였다. 그렇지만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견습공들이 주인의 고양이를 그대로 둘 리가 있겠는가? 대대적인 고양이 대학살 속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죽인 후에 시체를 홈통 속에 숨긴다. 주인 마님은 ‘그리스’가 없어진 사실에 대경실색하며 견습공들을 추궁하지만, 이미 수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하여 시체들이 처리된 후라 ‘그리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인 마님의 비통함과 견습공들의 통쾌함 속에 대학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은 그냥 끝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복사(copie)’로 남게 된다. 고양이 대학살은 견습공들이 모인 곳에서 무언극으로 재연되었고, 이것은 주인들에 대한 조롱과 자신들의 단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로버트 단턴은 당시의 임금 장부와 길드의 서류를 검토하여 당시 견습공들과 직인(journeyman)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었는지를 보여준 후, 당시 이들이 구성하고 있었던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견습공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었던 셈인데, 지금처럼 경제적 동기가 강조된 조합이 아니라 특징적인 의례와 일종의 종교적 신념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내면화하면서 호의호식하던 다른 집단, 특히 주인인 부르주아(또는 귀족)에 대한 복수심을 보인다. 그렇다고 주인을 직접 잡아다 매질을 가하거나 목을 날릴 수는 없는 일. 따라서 견습공들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의례’ 속으로 주인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여기서는 고양이)을 끌어 들여 심판함으로써 울분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파리의 한 거리에서 발생한 해프닝으로 끝났다면 불쌍한 고양이들에게 추모비를 세워주는 것으로 충분했으리라. 그렇지만 로버트 단턴이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이런 학살이 ‘복사(copie)’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울분풀이 또는 주인 골탕먹이기로 시작했던 이런 행위들이 노동자들의 의식 속에서 확대재생산되면서 당시 경제제도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고, 종국적으로는 프랑스대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집단의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유죄 판결은 주인에서 주인집으로, 그리고 체제 전체로 확대되었다. 아마도 반쯤 죽은 고양이 한 무리를 재판하고 자백을 받고 목을 매닮으로써 노동자들은 법 질서와 사회 질서 전체를 조롱하려고 의도하였을 것이다. (중략) 반세기 후에 파리의 직공들은 같은 방식으로 폭동을 일으켜 무차별의 학살과 즉성의 인민재판을 결합시켰다. (p.143)

글의 첫 부분에 [고양이 대학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역사를 단면적(cross-sectional)으로 파악했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고양이 대학살]에 실린 6편의 논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계급과 서로 다른 상황을 그리면서 18세기 중후반 다양한 프랑스인들을 다룬다. 그리고 출발점이 다른 도로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듯이 각각의 논문들은 집단의식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책의 두 번째 논문인 <고양이 대학살>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던 노동자들(직인 및 견습공)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관에 체제에 대한 저항을 녹여내게 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19세기 프롤레타리아화하는 맥락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첫 번째 논문인 <마더구스 이야기>는 프랑스인의 인식구조가 영국이나 독일과 어떻게 다른지를 민담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은 왜 대혁명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는가에 대한 일종의 답변일 수도 있겠다. 로버트 단턴이 논하고 있는 유럽 각 국의 민담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프랑스 민담이 ‘교활’ 또는 ‘기지’라면 독일 민담은 ‘환상’ 또는 ‘경건’, 영국 민담은 ‘얌전’ 또는 ‘유머’라고 할 수 있다. 권선징악이라든가 ‘착한 사람은 언젠가 복을 받는다’라는 교훈은 프랑스 농민의 민담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프랑스 농민들은 사회적 약자가 착하고 도덕적으로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기지를 발휘하여 윗 계급을 속이거나 뒤통수를 치고, 교활함으로 위기를 벗어나야 함을 가르친다. 유명한 <빨간 모자>이야기의 프랑스 판본의 결말은 늑대가 빨간 모자를 삼켜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해피 엔딩은 후세 사람이 첨가한 것인데, 빨간 모자 소녀는 교활하거나 지혜롭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세 번째 논문인 <텍스트로서의 도시>는 1768년 몽펠리에 시에 거주하는 한 부르주아가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해 쓴 일종의 ‘도시 소개서’를 소재로 삼는다. 도시 소개서의 저자는 먼저 몽펠리에 시에서 벌어졌던 가두행진(퍼레이드)에서 각각의 사회적 계급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꼼꼼히 서술한다. 여기서 우리는 급부상하던 부르주아가 당시 시대를 어떤 시가에서 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혁명 이전 프랑스 사회는 3개의 신분으로 구성되었다. 즉,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 제3신분인 시민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몽펠리에 시를 소개하면서 제1신분인 성직자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는 성직자를 완전히 제외시켰다. (중략) 그런 뒤 그는 귀족을 ‘제1신분’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중략) 부르주아들은 비록 사법적으로는 ‘제1신분’ 내부의 두 번째 등급으로 분류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부유한 시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중략) 저자는 전통적으로 귀족들이 위치하였던 ‘제2신분’에 부르주아를 위치시켰다. (p.180)

그럼 제3신분은 누가 되는가? 노동자들인가? 도시의 설명서를 작성한 부르주아는 그냥 제3신분을 ‘장인(artisan)’과 ‘평민’이라고만 서술한다. 이것은 당시 부르주아들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즉,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귀족에까지 격상시키는 것에는 관대하였던 반면, 노동자들의 성장과 시민으로의 편입에 대해서는 극도의 반감을 가졌던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역사적 가치에 비해, 그 열매가 부르주아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돌아갔다는 일부의 평가의 근저에는 어쩌면 이러한 의식적 차별화가 내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논문인 <문필공화국의 해부>는 혁명 직전에 파리의 문필가들의 동향을 감시하였던 한 경찰관의 보고서를 분석한다. 이 경찰관의 목표는 프랑스 왕정을 위협할 수 있는 문필가들을 감시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것이었다. 이 감시 목록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루소,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가들과 달랑베르, 디드로 등 소위 ‘백과전서파’가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록 한 경찰관의 눈이었을망정 국가라는 최고 권력기관의 눈에 이들이 ‘현실의 존재’로 포착되었다는 점이다. 계몽사상가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는데(물론 그들의 재능은 경찰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그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다. 이전까지 생산과 변화는 거의 대부분 ‘육체노동’을 통한 것이었고 ‘지식’은 수도원 또는 일부 귀족계급에 한정되어 향유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계몽사상의 등장은 지식을 시민계급에까지 확장시켰고, 희미하기만 하던 지식인이란 계층을 실재로 만들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였다. 당시 지배층들은 사람들이 계몽사상에 ‘오염’될 경우 자신의 기득권이 사라져 버릴 것이란 점을 직감적으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문필가들에 대한 경찰관의 감시 기록은 대격변을 앞둔 시기의 새로운 사상계층의 등장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논문인 <‘백과전서’의 인식론적 전략>은 달랑베르와 디드로가 주도하여 만들어진 계몽사상의 대표적인 작품인 [백과전서]의 서문을 분석한다. 이 논문은 계몽사상가들을 외부의 눈으로 관찰했던 앞의 논문과 반대로 계몽사상가들 본인이 프랑스 사회속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있던 사명감과 역할을 보여준다. [백과전서]의 항목들은 단순히 알파벳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원칙 속에서 작성된 것인데, 그 원칙이 바로 ‘지식의 나무’였다. 주목할 점은 지식의 나무에서는 이전 시기까지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던 ‘신성의 영역’이 학문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한 편집 상의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혁신이었다. 왜냐하면, 항목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것을 넣고 빼느냐는 결국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식의 영역을 이성을 통해 증명가능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현실로 제한하였고, 예술과 과학 등의 영역이 신의 섭리나 비과학적인 재능이 아니라 인식과 추론과 같은 정신적 능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 주역은 바로 자신들, 즉 백과전서파였다.

(백과전서파인)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세계 속에 작용하는 신의 손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가며 일하던 사람들을 연구하였던 것이다. (중략) 백과전서파는 그 세계의 발전이 전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지식인들의 영향력 덕분이라고 주장하였다. (p.281)

마지막 논문인 <낭만적 감수성 만들기>에서 활용된 자료는 한 시민의 도서주문서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당시 독자들이 가졌던 루소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루소에게 보낸 당시 독자들의 팬레터를 보면 그야말로 노골적이 애정공세도 무척 많았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느냐를 짐작해 볼 수 있듯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그들의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루소의 책은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로버트 단턴은 그 비결은 루소의 책이 독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완전히 ‘소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18세기 중반까지 독서가 ‘집중적(intensively)'이었다고 하였다. 성경이나 신앙서적, 싸구려 이야기 책 등 극소수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명상하거나 친목모임에서 크게 낭송하였던 것이 독서행태였다. 그에 비해 18세기 후반부터 독서는 ’광범위(extensively)'해졌다. 인쇄물도 광범위해지고, 소설과 저익 간행물이 생겼으며, 한 번의 독서에 흠뻑 빠지고 난 후 곧 다른 책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런 독서행태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이것이다.

텍스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에 책 속에 자신을 던져넣고 그 의미를 포착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p.355)

대혁명 이전에 루소에게 열광했던 독자들은 이전의 ‘점잖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자와 지식의 독점을 해체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세계에 대한 인식틀을 제공해 준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공헌이었다면, 텍스트에 몰입하고 현세계에서의 적용 가능성까지 나아가도록 한 것은 루소와 새로운 풍토를 담은 책의 공헌이었던 셈이다.

마무리하며....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어렵다는 평가도 많지만 음식을 꼭꼭 씹듯이 찬찬히 보면 그 논리전개에 신선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단턴의 책이 일종의 ‘결과론적 추론’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별적인 사실들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인 사건에 개별적인 사실들을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건 거의 무한대로 존재하는 과거의 사실 가운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상대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프랑스대혁명 과정에서 왕족(귀족)-시민(부르주아)-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대립구도를 알고 있다. 단턴의 작업을 조금 폄하하여 말하자면, 이런 대립구도를 보여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들을 찾은 것이다. 고양이 학살 사건에서 대립구도의 단초를 본 것인데, 만약 다른 역사가가 18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주인과 견습공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발굴하여 제시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람들의 일상사는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랑케가 주장한 바 사료의 객관성과 보편타당성 역시 무시해 버리기에는 어려운 가치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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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2011-08-1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정말 공들여 쓰셨네요. 책을 아니 볼 수 없게 만드시는데요?
추천 하나 꾹 누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