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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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서울’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구나 인정하듯이 서울은 정도(定都)된 이후 600년이 넘게 이 나라의 수도이며, 그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도시이다. 어떤 이들은 서울의 이러한 발전상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어떤 이들은 남한 면적의 0.6%에 불과한 서울시의 독점적 위치를 비판하기도 한다. 서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부정적 인식의 가장 큰 근거는 서울이 바로 ‘수도’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도시’로서의 서울은 ‘수도’로서의 서울과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한강 하류 지역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제의 초기 도읍이었던 ‘위례’시대를 빼고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서울은 ‘수도’가 아니었고, 그래서 정치적 중심지도, 경제적 중심지의 위치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서울이 가지는 현재의 독점적이고 절대적인 위치는 조선왕조 개창 이후 한 국가의 수도가 됨으로써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서울에서 ‘수도’라는 딱지를 떼어 버리고, 이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 아닌가 한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는 그런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관공서의 여행안내서가 가지는 딱딱한 공무원체를 싫어하고, 일부 여행기들이 가지는 과도한 감상의 남발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이 어떻게 ‘근대성’을 확보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하는 거대도시가 되어 왔는지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차분하게 반추한 이 책은 서울에 대한 관광 안내서로는 부족할지 모르나, 도시(서울)의 형성에 대한 뜻깊은 고찰이라고 평가한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압축적으로 표현된 근대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도시를 근대적 공간이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한다. 무엇보다 전통사회에 비교해 볼 때 도시는 근대적 특성,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적 특성’을 가진 공간이라는 의미이고, 둘째 이와 같은 근대적 특성은 그 상대 개념인 전근대적 농촌(산촌 및 어촌까지 포함한 개념)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확연한 차별성을 가지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도시에 ‘근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위해서는 도시 속에서 사회적 관계, 특히 위계적 질서라는 관계가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농촌과 달리 도시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벗어날 때에 비로소 형성된다. 도시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조건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보도록 하자. 여기에 ‘도시’라는 말 대신에 대한제국 선포를 즈음한 구한말의 ‘서울’이란 단어를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는 농촌과 외형적으로 아주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성벽(또는 목책, 울타리 등등)이라는 것으로 대표되는 공간적 경계선을 가진다는 점이다. 부르주아라는 말도 ‘성 안에 사는 사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서울을 생각해 보면 서울의 경계는 딱 사대문 안, 그러니까 성문을 열고 닫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성벽까지가 경계였다.
성벽은 도시를 농촌이라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공간으로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문제는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단순한 구분점에 불과했던 성벽이 그 안의 사람들과 밖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계선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농촌 사이의 섬’ 정도의 상대적으로 대등한 의미를 가지던 도시는 본격적으로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하는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의미를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도시의 성장사는 곧 농촌의 수탈사이기도 했다. 생산 보다는 소비를 그 특성으로 하는 도시는 농촌에 무언가를 ‘공급’해 주기 보다는 농촌으로부터 각종 생산물과 사람(인재)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태생적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근대사회 도시가 주위 농촌을 수탈하고 ‘문명’을 생산하여 집적하는 동안 농촌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도시는 이렇게 집적된 생산성을 바탕으로 주위로 확장된다. 바로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다는 의미인데, 이에 따라 과거에는 ‘농촌 사이의 섬’과 같았던 도시가 인구집중과 더불어 ‘메갈로폴리스’가 되어 간다. 이건 아마 누구나 경험적으로 느낄 것 같은데, 경부선 기차를 타고 부산 쪽으로 내려가면 천안 정도까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농촌이라기보다 오히려 도시의 연속에 가깝다. 인천 방면도 마찬가지로서, 서울지하철이 연결되는 곳은 어디든지 이제는 ‘도시’라고 보아야 할 정도이다.

도시 공간의 확장이 근대적 도시형성과 관련하여 가지는 의미는 사회적 권력관계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일개 도시 수준이 아니라 전체 사회구성원들에게 확장되어 간다는 점이다. 자연적 특성이 강한 농촌에 비해 도시 공간은 인위적으로 구성되는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도시 공간이 확장된다는 것은 도시가 가지는 인위적인 통제력이 확장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권력’이란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내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미한 권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 개조할 수 있는 공간은 내 책상 주변 정도이지만, 서울시장이라면 서울시를, 대통령이라면 한 국가 전체의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이나 지금 추진하는 ‘4대강 사업’도 공간에 대한 권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어쨌거나 도시는(엄밀히 말하자면 도시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권력자들은) 건물과 도로, 광장과 공원 등을 인위적으로 배치하고 개조함으로써 그 안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을 통제하고, 사고와 태도를 지배하는 효과를 노린다. 조선왕조가 서울로 천도하면서 남북 방향의 지금의 세종로를 중심대로로 삼고 그 주위에 관가와 육의전을 배치한 것이나, 아관파천 이후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경희궁을 육교로 연결하고 동서 방향의 종로를 중심대로로 인식한 것도 다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마포에서 동대문까지 종로를 관통하던 전차길이 그대로 지하철 1호선으로 계승된 것도 도시가 가지는 공간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도시에 근대적 공간이라는 특성을 부여하여 거주민들의 사고와 태도를 지배하는 효과를 노린다고 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통제이다. 사실 산업의 주된 형태가 농업이었던 전통 사회에서는 시간을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해가 뜰 때쯤 일어나 일을 나갔다가 해가 질 때쯤 하루를 마무리지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 사회의 시간 관념에서는 중요한 것은 대체적인 ‘절기’ 정도를 아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수공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도시 생활에서는 시간을 정확하게 준수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절약하는’ 양적인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서 현재의 시간을 도시민 모두가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였다. 주요 역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계탑이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했으며, <학교종이 땡땡땡>같은 노래들은 시간 관념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제 도시는 인위적인 구조물들을 통해 거주하는 사람들을 시선과 동선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미분화함으로써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시간을 두루뭉실하게 썼다간 무능력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우리 사회가 소위 Korean Time을 얼마나 창피하게 여겨 극복하려고 했던가!!) 시간이 양적인 개념으로 바뀌면서 그 동안 질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던 근무시간이나 근무량 등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생산성이 높다거나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물품을 생산한다는 바로 ‘시간당 ~’ 하는 개념이다. 이 양적인 개념이 우리들의 생활 형태와 근로 형태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크고,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왔는지는 아마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근대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대한제국 시기 서울시민들이 가장 경이롭게 받아들였던 변화가 무엇이었을까? 역시 전차가 아니었을까? 말과 소, 또는 인력으로 움직여야 했던 교통수단에서 벗어나 전에 보지 못했던 시커멓고 거대한 물체가 달려오는 모습은 당시에 경이로움 자체였을 것이다. 이렇게 전차는 ‘도시’가 가지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 넘도록 하였다. 마찬가지로 시계는 전통 사회가 가지고 있던 시간적 한계를 뛰어 넘도록 하였다. 이제 시간은 절약할 수도, 낭비할 수도, 더하고 빼고 나눌 수 있는 사물이 되었다. 이렇게 세분화되어 버린 시간은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동력과 어울려 도시생활 자체를 물질 중심적 공간으로 바꾸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현대 서울의 모습이 비로소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글을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서울이 가지는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현재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서울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은 오히려 결핍된 공간이다. 물품이야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신선한 음식물, 여유로운 생활에 언제나 목말라 한다. 여러 동물실험에서도 증명되지 않았는가. 생존에 필수적인 요인들이 제한된 상태에서 개체의 밀도가 높아질 때 그 생명체가 얼마나 폭력적이 되고, 얼마나 공격적이 되던가.
나는 서울의 절대성과 독점성을 이제 지방으로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도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가 아닐까 한다. 누구든 기회만 있으면 올라오려고 하는 서울, 지방경제가 질식하고 있다는 절박한 외침의 한가운데 있는 서울, 한국의 다른 도시나 농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특권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 계속 커지고 수탈하여 규모가 커져가는 것은 무엇이든 폭발하거나 블랙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세종시 논란이 서울시민의 삶의질을 위해서라도 서울의 권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뱀다리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가 있었다. 바로 <근대=자본주의>라는 다소 도식화된 논리가 과연 우리나라에도 적용 가능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시대구분은 서양사, 특히 유럽사적인 성격이 강한데,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를 어떻게 구분짓느냐의 문제와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종 연간을 중심으로 하는 구한말을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근대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물론 임진‧병자 양란 이후 생산성의 증대와 신분제도의 문란을 근대사회가 가지는 전형적인 특징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으나, 이 시기는 하나의 태동기 또는 발달기 정도로 보고 중세시대의 생산양식과 사회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근대’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대한제국 칭제를 중심으로 한 고종 연간으로 설정했다고 보면 되겠다.

대신 우리 사회의 근대성이 지금 극복되어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런 점에서 10여년 전에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포스트모던 열풍과 미셀 푸코는 그 의미와 아울러 비판점이 분명 존재한다. 나중에 ‘근대’라는 시대구분과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하게 내 입장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여전히 그 과정중에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모던’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다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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