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5
마이크 마퀴스 지음, 김백리 옮김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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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있을수도 있는데, 밥 딜런은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이다.
아직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전기가 나온다는 것은 사실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밥 딜런은 사회적 활동을 모두 마치고 은퇴한 상태의 사람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2006년 65세의 나이로 발표한 ‘모던 타임즈(modern time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의 활동영역은 포크라는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아서,
블루스, 컨트리, 가스펠, 재즈 등 다양한 형식으로의 끊임없는 변신을 가져왔던 사람이며,
뮤지션으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작가와 화가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는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 밥 딜런은 ‘현재 진행형’의 인물로서,
‘평전’이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평가가 가능한 시점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평전’이란 말 그대로 ‘개인의 일생 전반에 걸쳐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가 아닌가.
또한 지금까지 밥 딜런의 살아온 인생을 보건데,
그는 앞으로 더 변화하고, 더 새로워지며, 지금과 더욱 다른 삶을 살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딜런의 평전이 나왔고, 번역되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형인 사람의 전기는 왜 출판되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1960년대 전후의 시대상황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즉, 밥 딜런은 한 명의 뮤지션이나 포크 가수가 아니라 1960년대를 관통하던 시대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불의 시대’를 지나온 아이콘이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아온 밥 딜런을 통하여 주의하여 생각해 볼 점은
첫째는 ‘진정성’이며, 둘째는 ‘거대 담론 속의 개인’이라 측면이다.
밥 딜런을 비롯하여 저항을 노래한 수많은 뮤지션들을 추동한 동기는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포크 싱어들에게 있어 ‘진정성’은
역사와 전통, 포크와 민중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실존적인 요구였고, 그 기준은 바로 ‘정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발전의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는 자본주의는
이 시기에 산업적 생산물을 급격히 증가시켜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노동의 소외를 본격화시키기기 시작하였다.
광풍처럼 불어닥친 ‘매카시즘’이란 red complex는 어떤 종류의 비판적인 외침에도
‘반체제적’, ‘비애국적’, ‘빨갱이’란 딱지를 붙여가며 때론 목숨에 대한 탄압도 서슴치 않았다.
특히 미국 사회에 여전히 잔존해 있던 인종차별은 하나의 인습이 되어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들의 인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밥 딜런의 음악에 담긴 진정성이란
기본적으로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민중의식의 분출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자유와 평등을 억누르는 경제적 속박(자본주의)과 정치적 속박(반공주의, 매카시즘), 제도적 속박(온갖 인습과 구세대의 규제)을 끊고자 하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거대 담론 속의 개인’이란 측면에서 밥 딜런을 바라보는 것은
한 개인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구석이 남아 있는 지점이다.
더욱이 이런 밥 딜런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김지하, 박노해, 김광석, 안치환, 정태춘 등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은 감상을 준다.
밥 딜런은 1965년 전자기타를 들고 연주회에 나타나 ‘변절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그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의심받아야 했다.
생각해보면, 밥 딜런은 그 시대의 아이콘은 되었으되, 그가 스스로 원하여 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가 반대하고 거부한 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여러 가지 ‘거대 담론’들의 억압...
즉, 자본주의, 인종차별, 반공주의 등이었으되,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대가 다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 담론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란 느낌이 들 때에 밥 딜런은 또다시 그 틀을 벗어나 버렸다.
그는 한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그 상태를 싫어했던 것이다.

                    내가 대변자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은 커녕
                                    심지어 그들을 아는 바도 전혀 없었으며..... 
                반체제 문화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내가 쓴 가사들, 내 노래에 담긴 의미들이 
                             논쟁으로 인해 파멸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밥 딜런 평전]을 보면서 역시 우리나라의 ‘불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에 저항하는 아이콘이었던 김지하 시인.
사회주의 혁명에 기여하고자 분주했던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시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제도권으로 나와 여전히 활동하는 안치환... 그리고 김광석...
그리고 김남주, 정태춘 등등....
아직 본인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고,
이제는 다소 간의 방향전환을 통해 새로운 앞길로 진출하는 이도 있고,
또 이제 고인이 되어 더 이상 그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지만,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의 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불꽃과 같았던 저항의 역사와
이제 다소간 진정(?)되어 나름대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변화..
또 그 저항과 변화가 우리들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다시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nin' in the Wind)”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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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마녀 2008-09-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딜런 토마스'를 넘 좋아하여 이름을 '답 딜런'이라고 지었다던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로 시작하던 그 노래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네요~~